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실패…'1등 도그마' 드러난 MBK파트너스
입력 2023.12.27 07:00|수정 2023.12.27 08:50
    최소 기준 '배수의 진' 쳤지만 목표 절반 못채워
    아쉬운 공개매수가에 빛바랜 지배구조 개선 명분
    효율적인 의사결정 체제, 시장 우려 반영엔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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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연말 자본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MBK파트너스 스페셜시츄에이션스(MBKP SS) 펀드의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가 실패로 끝났다. 돈이든 명분이든 투자자들을 움직이기엔 부족했고, 1등 사모펀드(PEF)의 전략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대형 PEF가 재벌과 대등하게 다툴 수 있다는 점을 보인 것은 성과지만 규모나 이름값보다는 치밀한 전략이 우선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애당초 어려운 거래, MBK만의 '묘책' 있을 줄 알았더니…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는 처음부터 쉽지 않은 거래로 분류됐다. 지분구조상 수비 측의 성벽이 너무 높았다. 표면적으론 지분율 42%(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 대 30%(조현식 고문 등)의 경쟁이지만 결국 본질은 "누가 50%를 달성하느냐"였다. 불편한 결정을 피하는 국민연금(지분율 3.8%)을 제외한 거의 모든 주주들을 포섭해야 하는 MBK파트너스의 묘책이 무엇이냐에 시선이 모였다.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가로 주당 2만원을 제시했다. 직전 거래일보다 20% 가까이 높은 가격이었지만 직후 한국앤컴퍼니 주가가 2만원을 넘어 고공행진하며 부담이 커졌다. 이후 조양래 한국타이어 명예회장이 등판하고 ‘경영권 방어’를 끝냈다는 호언이 나오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가를 2만4000원으로 올려 반격에 나섰지만 흐름을 돌리지 못했다.

      결국 공개매수에는 지분 8.83%만 응해, 인수 목표(20.35∼27.32%)의 절반에 미치지 않았다. 올해 초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 때와 달리, 최소 인수 물량에 미치지 못하면 한 주도 인수하지 않겠다는 결의 혹은 엄포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명분 싸움'이라도 이겼어야…시장에선 '그 아들이 그 아들' 

      MBK파트너스가 '도덕적 당위성'이나 '명분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점도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한국앤컴퍼니의 상황을 보면 ‘기업지배구조를 다시 세우고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명분은 당위성이 있다. 다만 오너 일가의 비위와 갈등이 문제된 지는 오래고, 시장에서도 큰 관심이 없었다. 그간 여러 PEF가 한국앤컴퍼니를 오가면서도 움직이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차라리 회사의 불합리함을 제거하면 기업가치를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며 파격적인 매수가를 제시했다면 나았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MBK파트너스는 지금의 오너를 축출 하기 위해 다른 오너 일가와 손을 잡은 모양새를 취했다. 시작 전에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둘 필요가 있었고, 주주간계약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장치도 마련해뒀다. 

      그러나 외부에선 '그 아들이 그 아들'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형제 다툼에서는 누구의 편에 서든 당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워홈도 ‘남매의 난’ 당시 대형 PEF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갈등의 불씨를 남긴 상태에선 움직이기 어렵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는 아버지의 선택을 받지 못한 큰아들이 PEF를 등에 업고 동생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며 “MBK파트너스에 그렇게 확고한 명분이 있다면 조현식 고문과 연합 없이 시장에 뛰어든 후 소액주주를 설득하는 전략을 짜는 편이 나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너 ' 이기기 쉽지 않다 선례만…시장 의견 귀 기울여야

      게다가 MBK파트너스가 쓸 수 있는 무기는 한정적이었다. 재벌 대기업, 특히 한국앤컴퍼니처럼 오너의 지배력이 공고한 곳은 기업 전체가 ‘오너’ 위주로 돌아간다. 오너는 ‘명성있는 사모펀드의 무리한 시도’라고 했고, 회사는 전사적으로 경영권 방어 모드에 돌입했다. MBK파트너스도 금융감독원에 ‘선행매매’ 의혹을 조사해달라 요청하는 등 공세를 폈다. 그러나 국내 PEF 선두 주자로서 각종 규제와 평판 위험을 철저하게 신경을 쓰는 입장에선 진흙탕 싸움으로 뛰어들기 쉽지 않았다.

      결국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에서 내걸었던 것은 다소 진부해보이는 명분과 얼마간의 웃돈 정도였다. 새로운 시도와 꾸준한 성취로 시장을 이끌어 온 MBK파트너스니 이번에도 길을 찾아낼 것이란 기대가 없지 않았는데, 숨겨둔 묘수는 없다는 점만 확인됐다. 

      MBKP SS를 이끄는 부재훈 대표와 투심위원회를 총괄하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혜안도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김 회장 중심의 간결한 의사 결정 체계는 거래에서 이기는 데는 특화돼 있지만, 시장 의견을 듣는 데는 허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로 PEF가 대기업과 대등하게 의견을 개진할 위치가 됐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그나마 소득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만큼 대기업과 오너일가의 경계심은 높아지고, PEF의 주요 거래 파이프라인은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름값에 흠집이 생긴 MBK파트너스도 다음 거래를 무조건 성사 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