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한마디에 '부회장'이 사라졌다...후진적 지배구조, 피해는 결국 주주 몫
입력 2023.12.29 09:57
    취재노트
    하나금융에 이어 KB금융도 부회장직제 없애
    당국 눈치보기 비판 속
    불확실한 지배구조 금융지주 가치절하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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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회장 제도를 마련해 운영하는 금융지주가 있는데, 과거 특정 회장이 셀프 연임하는 것보다 훨씬 진일보한 건 맞는다는 점에서 존중한다. 다만 그 제도가 내부에서 폐쇄적으로 운영돼 시대정신에 필요한 신임 발탁과 외부 경쟁자 물색을 차단한다는 부작용도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지난 12월12일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 직후)

      금감원장이 작심해 던진 한 마디에 국내 주요 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가 바뀌었다. 부회장직이 사라진 것이다. 안정적인 승계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주문에 부회장제를 만들던 금융지주들은, 금감원장의 달라진 모습에 바로 꼬리를 내린 모양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금융업 관치(官治)의 증거이자,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핵심으로 꼽히는 후진적 지배구조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금융지주는 올해 조직개편에서 부회장 직제를 3년만에 폐기했다. 금감원장의 발언을 의식해 부회장직을 없애고, ‘부문 임원’ 체제를 도입했다. 이로써 박성호, 강성묵, 이은형 부회장 체제가 막을 내라게 됐다. 

      부문장에는 상무급도 배치했다. 이전보다 수평적인 조직체제로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직제상 부회장직은 사라지고 부문장이 이를 대체했지만, 연임된 강성묵, 이은형 부회장의 호칭은 부회장으로 유지키로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회장들 중에서 이전과 동일한 역할을 맡은 부회장들이 있기 때문에, 상무급 부문장을 배출해서 기존 부회장 체제와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KB금융도 부회장 제도를 없앴다. 양종희 부회장이 회장으로 올라가면서 나머지 허인 부회장, 이동철 부회장이 사임했다. KB금융의 지배구조를 칭찬했던 금감원장마저 부회장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면서 부회장제를 없앤 것으로 보인다. 

      금융지주가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마다 부회장제도를 만들었다가 없애긴 했지만, 이번 사태에선 금감원장의 발언이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금감원장의 말한마디에 부회장직제가 사라지는 점이 국내 금융지주의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금융사 지배구조와 관련한 부분은 해외투자자들도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금감원장 말 한마디에 후계 프로그램에 핵심인 부회장직이 없어지면 투자자들 입장에선 금융사 경영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키우기만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나 해당 발언은 ▲지배구조와 관련해 금감원장이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를 가진 직후 나온 것이라는 점 ▲이후 외부 인사를 비상임임원으로 임명해 승계 과정에서 차별을 줄이라는 등의 지침이 나왔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지배구조 개입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결국 투자자들의 외면과 금융지주 가치 절하로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국내 금융지주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배에 불과하다. 미국은행들은 차치하더라도 비슷한 규모의 싱가폴 DBS은행의 PBR은 1.5배에 이른다. 특히 DBS은행의 경우 국내은행과 비슷한 시기 해외진출 하는 등 국내 금융지주와 비교대상으로 종종  꼽힌다. 다만 국내 금융지주와 DBS를 가른 것은 무엇보다 규제 당국의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금융지주 저평가는 위기 상황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은행들이 휘청 거릴 경우 증자 등에 나선다면 현재의 PBR에선 들어올 외국 투자자들이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금융당국에선 은행의 건전성이 우수하다고 자평하지만, 은행은 금융시스템의 최후의 보루란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급격한 경기하강이 일어날 경우 은행이 흔들리면 증자에 어려움이 불가피하다“라며 “이번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을 두고 정부에서 '은행에 돈이 많기 때문에 괜찮다'는 발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