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중앙·할리스커피 IPO 주관사 선정 '차일피일'...'컨설팅 의뢰서' 된 RFP
입력 2024.01.02 07:00
    취재노트
    SLL중앙·할리스커피, 상장 주관사 선정 깜깜무소식
    외국계IB 영입으로 기업들 진화…용역보수는 그닥
    •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기업공개를 계획했던 회사들이 주관사 선정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선정 과정이 '컨설팅 의뢰'로 변질됐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입찰제안요청서(RFP)를 통해 업황에 대한 분석은 물론 향후 사업방향과 예상 실적 등 전방위로 '전략적 정보'를 요구한 후, 막상 주관사 선정 등 본격적인 상장 채비엔 주저한다는 것이다.  

      IPO 주관사들은 통상 상장 성공을 전제로 수수료를 받는 만큼 상장하기 전까지 진행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는 사실상 무료나 다름없다. 주관사 선정이 갈수록 치열해지며 증권사들이 업무부담은 커졌지만 이에 따른 성과는 예전만 못해 실무진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8일 증권가에 따르면 최근 모바일 운영 플랫폼 토스의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가 국내 증권사에 돌린 RFP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핀테크 산업에 대한 이해, 토스와 관련한 미래 사업전략 등 마치 컨설팅 회사에 요청할 만한 내용을 담은 것은 물론, 향후 마케팅 전략도 빼곡히 담았다는 후문이다. 

      통상 증권사가 특정 사업전략을 고민하는 기업보다 해당 부문에 정통하기는 어려운 만큼 잠재 주관사들도 저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전언이다. 

      오래 전 주관사 선정 절차에 나섰지만, 막상 선정 결과 발표는 수개월이 지나도록 미루고 있는 회사도 있다. 커피 전문점 할리스커피는 지난 9월 주요 증권사에 RFP를 돌렸지만 주관사 선정은 여전히 미정이다. RFP가 돌 때부터 증권사들 사이에서 ‘실제 상장 가능성이 낮은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는 후문이다.

      콘텐츠 제작사 SLL중앙 역시 주관사 선정 프레젠테이션(PT)를 연지 두달 가까이 지났지만 주관사가 결정됐다는 소식은 아직이다. 통상 PT 진행 후 주관사 통보까지 빠르면 일주일 안에 결론이 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늦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비바리퍼블리카도 속전속결로 상장을 할 계획을 잡아뒀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적으로 밸류에이션(Valuation) 등 여러 방면에서 주관사 입찰에 참여할 증권사의 의견을 취합한 뒤 상장 일정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지난 수 년간 발행사들의 RFP는 점점 복잡하고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출신의 임원들이 다수 발행사의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이동하며 IB에 대한 전문 지식이 많아진 데다, 최근 상장 자체가 어려워지며 전략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진 점이 맞아떨어진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과거 국내 게임사 크래프톤이 상장할 당시 외국계 IB JP모간 출신 배동근 CFO가 제반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증권사들을 긴장케 한 게 대표적 사례다. 현재 토스 IR팀에도 JP모간 VP(Vice President) 출신 김민우 팀장이 재직중이다. 이외에 네이버의 메타버스 계열사 네이버제트에 김영기 전 JP모간 IB부문 대표가 CFO를 맡고 있으며 최근 카카오로 이직한 최혜령 전 크레디트스위스(CS) 상무 역시 IPO 중책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잠재적 주관사들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이에 따른 성과가 주어지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상장 주관사의 보수는 IPO 성공을 담보로 책정되는 만큼 상장 직전까지 주관사 업무를 하다가 엎어질 경우 적자를 보는 구조다. 실사나 법률자문 등 비용은 나가면서도 수수료는 받기 어려운 탓이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주관사로 선정받기 위해 무료로 자문서비스를 지속하다가 상장이 엎어져 용역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포트폴리오 엑시트(투자금 회수)시 내부수익률(IRR)에 민감한 PE(사모펀드)들은 애초부터 매각과 상장을 동시에 진행하다 매각으로 선회하는 경우가 많다는 전언이다. 각종 증권사들이 정성스레 써낸 전략들을 참고해 경영전략 수립에 참고하고 정작 IPO 수수료는 지불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상장까지 1~2년 정도 기간을 잡고 지배구조나 지분구조 조정 등 주관사가 할 역할들이 있다는 점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워낙 상장 준비기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그 사이에 시장상황이나 기업내부 사정이 변하는 점은 발행사나 주관사들도 통제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기업이 상장을 준비하다 외부 요인들로 어쩔수 없이 불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라면서도 “다만 최근에는 본격적인 상장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일단 RFP를 돌리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는 점은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