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오너일가는 알고 있다…절대 망하게 두진 않을거란걸
입력 2024.01.05 07:00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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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세인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5년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추진하면서다. 윤 창업회장은 지난해말 그룹의 지주사인 TY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그룹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윤 창업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거쳐 민주공화당의 이동녕 국회의원의 보좌관 역할을 했다. 이후 1973년 태영건설을 창업하고 각종 관급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내 회사를 키웠다. 그리곤 1990년 민영방송사인 SBS를 창립하고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아들인 윤석민 회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휘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마치고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 그룹에서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1998년을 시작으로 SBS에서의 경력이 더 두드러진다.

      이들의 커리어를 보면 일반적인 건설사 오너들과 차별점이 보인다. 정치인 또는 언론인으로 보는 게 더 맞아 보인다. 이렇다보니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그저 일반적인 상황으로 해석하기가 참 어렵다.

      TY홀딩스는 현금화할 수 있는 수단 중 태영인더스트리, 에코비트, 블루원의 지분 매각과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등을 계획하고 있다. 다른 매각 카드는 다 꺼내들면서 SBS는 절대 매각할 수 없다고 ‘배짱’을 부리고 있다. 윤세영 창업회장이 애착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상 그룹이 밝힌 자구안도 문제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은행을 위시한 채권단은 ‘SBS는 절대 내놓지 않겠다’는 태영그룹의 배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진 것을 다 내놓고 도움을 요청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채권단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다.

      과거 동양, 웅진, STX와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그룹의 공중분해 위기 속에서 이처럼 배짱을 부리긴 쉽지 않고 그랬다간 본보기가 됐다. 그런데 태영 사태는 다르다. 공교롭게도 총선이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태영과 총선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걸까. 다시 오너 일가의 커리어를 끄집어와야 한다.

      태영그룹은 건설사라기보단 미디어그룹이라고 보는게 적확하다. 그것도 선거 시즌엔 보수층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상파 방송국이라고 봐도 무방한다. 이미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국을 포함한 미디어들은 여론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 정부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정치의 길로 나서면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자리를 맡았지만 여전히 여권은 열세다. 여권 입장에선 SBS가 필요하고 태영을 무조건 살려야 할 명분이 있게 된다.

      그래서일까. 특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정은 태영 살리기에 진심이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가 태영건설 협력업체들에 집행하는 금융지원에 대해서는 부실이 나더라도 중대한 과실이 아니면 제재하지 않는 ‘면책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협력업체의 금융권 대출 규모는 총 7조원이다. 기획재정부는 필요하면 현재 85조원 규모의 시장안정 유동성 프로그램을 더 확대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명목상으론 PF 리스크 연착륙이라고 하지만 절대로 태영건설이 무너지게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정작 SBS를 내놓는다고 해도 지금의 유동성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긴 어렵다.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은 점차 줄고 있고, 콘텐츠 제작 환경도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SBS와 관련 자회사들이 태영이나 시장에서 생각하는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내놓더라도 이를 사갈 데가 없다. 대기업은 지상파 방송사 지분을 10%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 정부와 각을 서면서 굳이 이를 떠안을 대기업군은 많지 않아 보인다.

      태영그룹 오너들은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를 절대로 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점을. 그래서 앞에선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일테다. 태영건설의 주가도 급등했다. 시장도 이미 알고 있다.

      3일 있었던 채권단 설명회는 어쩌면 면피를 해야 하는 채권단 대표 산업은행의 고육책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도 윤세영 창업회장은 이전의 입장과 달라진 게 없었다. 에코비트와 블루원 매각만 언급했을 뿐 SBS는 빠져있었다. 윤 회장은 눈물을 흘리며 읍소를 하긴 했지만 "태영이 이대로 무너지면 협력업체에 큰 피해를 남기게 되어 줄도산을 피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하면서 당국을 압박하는 다소 부담스러운 발언까지 남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인 행보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태영이 약속한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않아 유감이라고 했지만 딱히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태영그룹 입장에선 이 고비만 넘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고금리 기조가 끝나면 결국 돈은 부동산으로 다시 흘러갈테니 말이다. 태영 오너일가가 지금 흘린 눈물은 악어의 눈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