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SBS 지키려 '법정관리'도 염두에?…비난 버티면 오너 재산 유지할 수도
입력 2024.01.05 11:47
    Invest Column
    2011년 코웨이 지켜려 채권단 몰래 '기습' 법정관리 택한 웅진과 판박이
    '건설만 포기하면 다 살린다'…꼬리자르기 목표로 회생 신청 가능성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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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과 채권단ㆍ감독당국의 '줄다리기'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까지 나서 "태영의 자구안은 자기 뼈 아닌 남의 뼈 깎겠다는 것”이라고 맹비난하며 압박 중이지만 태영그룹과 윤세영 회장 오너 일가는 아랑곳 않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시장 일각에서는 태영그룹이 '법정관리'까지 염두에 두고 협상을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태영건설만 버리고 SBS와 다른 오너 일가 재산은 지키겠다'라고 선언할 수 있다는 것. 과거 2012년 웅진그룹이 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매각하는 계약까지 체결해놓고, 야밤 기습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사례도 거론된다. 

      법정관리는 최후의 수단이지만…'꼬리 자르기' 시도 가능해 

      기업회생절차(舊법정관리)는 한계에 봉착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으로 꼽힌다.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즉시 모든 채권자들의 권리는 제한되고, 법원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기업을 수술대에 올린다. 

      비교적 신사적인(?) 채권단공동관리절차(워크아웃)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이 또한 태영그룹의 유력한 선택지 중 하나다. 알짜 계열사 SBS를 지키겠다는 목표가 확실하다면 오히려 법정관리가 오너일가의 자구안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채권단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회피방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태영건설이란 꼬리를 자르고 본체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SBS를 지키기 위한 태영그룹도 회생절차 돌입의 선택지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태영건설이 기습적으로 회생절차에 돌입한다면, 그 즉시 법원은 포괄적금지 명령을 통해 채권자들의 모든 권리를 제한한다. 여기엔 은행뿐 아니라, 상거래채권 등 모든 채권자가 해당하기 때문에 태영건설과 금융거래를 한 기관들의 유동성은 일시적으로 막히게 된다.  회생계획안을 인가하기까지, 법원은 태영건설의 채무를 보다 면밀히 파악하고 계속 사업을 이어갈 지 또는 파산을 통해 빚잔치를 하는 것이 나을지를 판단하게 된다. 이 과정만 수개월, 길게는 1년도 넘게 소요한다.

      가까스로 파산보단 회생이 낫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가장 큰 산인 회생계획안을 인가하는 일이 남아있다.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채권자들에게 빚을 갚을지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한다. 수차례 이어질 관계인 집회에선 고성이 난무하는데, 그룹 총수가 등장해 눈물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과거 회생절차에 돌입한 그룹 회장들이 법정에서 채권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회생계획안 인가를 호소하는 일도 많다.

      회생절차에 돌입하면 주주들의 권리는 사실상 박탈된다. 비율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으나 오너일가와 개인주주들의 지분이 모두 주식병합(감자)을 통해 가치가 쪼그라든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비율대로 책임을 지라는 의미다.

      회생절차가 시작되면 사실상 채권액 전부를 돌려받기 어려운 채권자들, 지분율이 크게 줄어드는 주주들의 대규모 피해는 불가피하다. 

      하지만…대주주가 겪을 풍파는 딱 여기까지다. 

      법원이 결정한 비율대로 빚잔치를 하고, 보유한 주식을 모두 내려놓는다고 가정하면…태영그룹 오너 일가는 사실 모회사와 핵심 계열사를 지킬 수도 있다. 과거 동부그룹도 산업은행으로부터 동부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이 반려된 이후 회생절차에 돌입했고, 건설 꼬리자르기에 성공해 오히려 재무상태가 나아지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분명 오너와 경영진의 모럴헤저드 논란이 제기되고 도덕적인 비난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것만 감내할 수 있다면 오너일가의 재산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 웅진이 시도했지만 실패…당국이 압박해도 태영은 손익계산서 따져볼 듯

      비슷한 사례로 꼽히는 게 지난 2011년 웅진그룹의 기습 회생절차 신청이다. 지금의 태영그룹과 너무도 닮아있다.

      재계 30위권을 넘나들던 웅진그룹은 건설과 태양광, 금융 등 문어발식 확장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다. 직격타는 무리한 M&A로 사들인 건설과 저축은행에서 맞았는데, 웅진그룹은 유일한 알짜회사 코웨이 매각을 결정했다. 

      이에 창업자 윤석금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코웨이 매각을 선언했지만, 최초엔 GS리테일에 매각을 결정하고 번복했고, 블라인드펀드도 없었던 사모펀드(PEF) 운용사 KTB PE를 끌어들여 코웨이 경영권을 유지하려 했다. 종국엔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여 매매계약(SPA)을 체결했는데, 딱 한 달후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채권단과 투자자, 주주, 심지어 코웨이를 사겠다고 한 MBK파트너스에도 알리지 않았다. 웅진그룹은 회생절차 신청 전날까지도 채권자들에게 어음을 갚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원은 코웨이 매매계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SPA가 명확하게 맺어졌다는 게 주효했다. 만약 매매계약이 이뤄져있지 않은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회생절차에 돌입했다면 MBK의 코웨이 인수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이런 사례를 따져봤을 태영그룹 입장에서는 일찌감치 '손익계산서'를 써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워크아웃에 돌입해 기업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금융기관에 돈을 빌리긴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금리는 높아지고, 요구하는 보증은 늘어날 것이다.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해외는 물론 국내 민간 수주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채권단 관리 하에선 임직원들은 휴지한장, 볼펜 한자루도 마음대로 못쓴다. 어찌보면 회생절차 내 법적인 테두리에서 태영건설을 처분하고, 모회사와 계열사를 합법적으로 지키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게다가 10년만에 자본시장에 등장한 ‘워크아웃’이란 단어에 정부는 직접 나서고 있다. 과거 같았으면 산업은행 또는 주채권은행에서 언급하고 해결했을 사안에 불과하지만, 이젠 대통령실까지 나서 예의주시한다는 코멘트를 낸다. 

      하지만 이런 사안들은 총선을 앞둔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변수다. 이렇게 따지면 비록 이복현 원장이 "주말까지 새 자구안을 내라"고 마감시한을 못박았어도 태영그룹은 이보다 좀 더 먼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