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불안석 태영건설 채권단…업권 따라 고민도 제각각
입력 2024.01.05 16:26
    '맹탕' 태영 자구안에 우려 깊어지는 채권단
    '선순위' 대출 준 은행·보험사는 영향 제한적
    후순위가 대다수인 증권사·캐피탈社 등 비상
    손실 규모 미확정인 회사채 투자자도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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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사태에 금융권 전반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태영그룹이 내놓은 자구안을 향한 실망감에 워크아웃이 불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며 채권단들의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채권단들 사이에서도 선순위 투자자인 은행·보험사와 후순위 위주의 증권·캐피탈사 간 온도차가 나타나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이날 오후 5대 시중은행과 기업은행 등 태영건설 주요 채권자들을 재차 소집해 추가 자구안 논의에 나섰다. 태영그룹이 내놓은 자구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다시금 대책 회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4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태영그룹의 자구계획에 대해 "남의 뼈를 깎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태영그룹이 오는 11일로 예정된 제1차 채권단 협의회까지가 아니라 이번 주말까지 채권단이 납득할 수준의 자구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악의 경우 워크아웃이 깨질 수 있다는 경고장도 날렸다.

      태영그룹의 워크아웃 향방이 불투명해지면서 투자자들의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금융권의 태영건설 관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4조5800억원이다. 태영건설 직접 여신이 5400억원, 태영건설 자체 시행 중인 29개 PF사업장과 관련된 익스포저는 4조3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가장 대출 규모가 큰 곳은 은행권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태영건설은 국내 은행권으로부터 장기차입금(부동산PF 대출 포함) 4693억원, 단기차입금 2250억원 등 총 7243억원을 빌렸다. 그 다음으로 대출 규모가 큰 곳은 보험사로, 2000억원 이상 규모로 추산된다.

      자본력이 풍부한 은행과 보험사는 ‘태영건설 사태’로 인한 손익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다. 공동 사업장 PF대출의 경우 시공사 교체를 통해 사업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태영건설 단독 사업장도 대부분 선순위채권과 보증보험을 낀 대출이라 원금회수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은 태영건설 사태보다는 PF 위기 확산 시 정부의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앞서 4일 기획재정부는 PF시장 위축으로 인한 건설사·PF 사업장 유동성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확대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부동산 PF발 리스크 등 건전성 관리와 함께 ‘상생금융’을 당부하고 있다.

      대다수가 중후순위로 PF 대출에 참여한 제2금융권은 비상이다. 은행, 보험사, 새마을금고·신협 등 상호금융은 PF대출을 내줄 때 주롷 선순위 채권자로 들어가 사업이 중단돼도 원금과 이자를 건질 수 있다. 하지만 증권사, 캐피탈사는 대체로 후순위 채권자라 원금 손실 가능성도 크다.

      일부 증권사는 태영건설 투자를 담당한 부동산본부 등이 비상대책TF를 조직하는 등 대응에 분주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사적으로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은행이 선순위니 증권사 입장에선 양보하고 포기해야 할 것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2금융권은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하고 연체율이 높아 태영건설의 위기가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다만 캐피탈사 등 2금융권이 지난해부터 부동산PF 부실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충실히 쌓은 만큼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란 분석도 있다.

      태영건설이 부동산PF 사업을 위해 간접적으로 금융사에 차입한 금액(보증 채무)은 9조1816억원이다. 보증 채무는 시공사인 태영건설이 아니라 시행사가 받은 PF대출이지만 태영건설이 보증을 서 사실상 태영건설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로 봐야 한다는 평가다.

      태영건설 회사채 투자자들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건설채가 시장에서 외면받으면서 태영건설 자체 회사채 조달 규모가 크진 않다. 태영건설은 68회 채권 외 사모채, CP(기업어음), P-CBO(채권담보부증권) 등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했다.

      올해 7월 19일 만기인 태영건설 68회 공모채(1000억원)는 워크아웃과 동시에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하면서 향후 자금 회수 방향이 미지수다. 해당 채권은 키움투자자산운용(500억원), 멀티에셋자산운용(200억원), 삼성증권(100억원), 삼성자산운용(100억원), 산업은행(80억원), 하이투자증권(20억원) 등이 투자한 바 있다. 

      일부 운용사는 국민연금이 들어간 펀드로 투자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ETF로 유입된 자금을 통해 투자한 곳은 개인투자자의 손실도 발생할 수 있다.

      워크아웃이 실행이 확실시되어야 해당 채권 회수 방향 시나리오를 도출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일부 채권단은 만기 연장 이후 이자를 회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분위기지만, 현재 워크아웃 개시 가능성 자체가 불분명하다보니 이자 회수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회사채를 보유한 금융사들은 충당금 이슈도 발생한다. 워크아웃 등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 회사의 채권 등급도 변동된다. 지난달 28일 워크아웃 신청과 동시에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은 직전의 A-에서 CCC(하향검토)로 강등됐다.

      문제는 채권 등급에 따라 금융사가 쌓아야 하는 충당금의 규모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태영건설 채권을 보유한 금융사들은 충당금으로 최소 투자금의 50% 이상을 쌓아야 할 전망이다. 이에 태영건설 회사채 리스크가 투자자들의 1분기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작년 당국에서 시간을 줬을 때 욕심을 조금만 줄였으면 정리할 수 있는 사업장들이 꽤 있었지만, 선순위 투자자들은 헐값에라도 팔아서 원금을 회수하고 싶어하고 후순위 투자자들은 ‘부동산은 결국 오른다’는 뿌리깊은 믿음 아래 버텼다”며 “태영이 무너지면 버티던 다른 회사들도 급히 사업장 정리에 나설텐데 정부가 태영을 그런 시범 케이스로 만들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