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그룹 에코비트 매각, 담보권자 KKR 협조해도 2조대 몸값은 부담
입력 2024.01.09 07:00
    태영건설 지원금 필요한 지주사, 에코비트 최우선 카드 꼽혀
    태영-KKR 에코비트 공동경영…태영측 지분 KKR에 담보로
    에코비트 팔려면 KKR 협조 필요해…KKR 매각 전략도 변수
    유행 정점 지난 환경기업?…사정 급한 매도자 성과낼까 의문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태영건설 위기에 고전하는 태영그룹에 있어 에코비트는 가장 확실한 자금 조달 수단으로 꼽힌다. SBS 매각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지만 매각 실효성은 안정적인 현금을 창출하는 에코비트 쪽이 크다. 에코비트 지분을 매각하려면 공동 경영자이자 담보권을 갖고 있는 KKR의 협조가 우선돼야 한다.

      KKR은 지난 수년간 태영그룹과 돈독한 관계를 보인 만큼 명분만 마련되면 에코비트 매각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KKR의 존재가 에코비트 매각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2조원대로 거론되는 몸값을 소화할 주체가 많지 않다는 점도 부담 요소로 꼽힌다.

      지난 3일 산업은행은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의 채권단을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했다. 태영그룹은 에코비트, 블루원 매각 등 자구안을 제시했는데 SBS 매각이나 오너일가의 사재출연은 빠졌다. 채권단은 이에 유감을 표했고,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을 약속대로 태영건설에 지원하라 지적하기도 했다.

      태영그룹 호소대로 태영건설을 회생시키겠다는 의지가 확실하다면 티와이홀딩스의 자산 대부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태영인더스트리는 이미 팔았고, 주목받는 SBS(티와이홀딩스 지분율 36.9%)는 시가총액이 수천억원 수준이다. 그보다는 연 2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창출하는 종합환경기업 에코비트가 자금 마련의 핵심으로 꼽힌다.

      에코비트의 전신은 TSK코퍼레이션이다. TSK코퍼레이션 주주는 티와이홀딩스(지분율 약 62.6%)와 SK건설, 휴비스 등 소액주주(지분율 약 37.4%)였는데, 2020년 KKR이 소액주주 지분을 약 4409억원에 인수했다. KKR은 그해 이젤에스피브이를 통해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갖고 있던 ESG·ESG청원도 8750억원에 사들였다.

      2021년 10월 TSK코퍼레이션과 이젤에스피브이가 합병해 지금의 에코비트가 됐다. 티와이홀딩스와 KKR이 각각 50%씩 지분을 갖고 공동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갖춰졌다. 합병 직전 TSK코퍼레이션은 이젤에스피브이에 2265억원을 대여하기도 했다.

      티와이홀딩스는 태영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하자 작년 1월 KKR 대상으로 4년 만기 4000억원 규모 사모사채를 발행했고,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태영건설에 빌려줬다. 사모사채를 인수한 KKR은 티와이홀딩스가 보유한 에코비트 지분을 담보로 잡았다.

      태영그룹은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신청하기 전 김앤장 등 자문사의 도움을 받으며 채권단과 의견을 조율해 왔다. 삼일회계법인은 채권단 쪽 일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자문사는 KKR과 관계도 좋은 곳들이다. 태영그룹이 담보로 잡혀 있는 지분을 매각하겠다 밝힌 만큼 담보권자와도 어느 정도 뜻을 모았을 것이란 예상이 있다.

      KKR 한국 사무소에서도 인프라 부문은 태영그룹 관련 거래로 두각을 나타내며 본사의 인정을 받았다. 태영그룹이 흔들리면 에코비트를 통째로 갖게 되지만, 공들여 지원한 그룹이 휘청이는 것은 KKR의 이름값과 선구안에도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다. KKR 입장에선 에코비트 매각을 반대하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에코비트 매각 시 태영건설 유동성 부담이 줄어들겠지만 가장 큰 변수는 KKR의 동의 여부”라며 “태영건설의 위기로 태영그룹 전체가 흔들리게 되면 KKR의 트랙레코드에 흠집이 생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에코비트 매각 시 KKR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도 변수다. 단순히 티와이홀딩스의 지분 매각을 허용하고 그 대금으로 사채와 이자를 상환받는 방식이라면, 이후 에코비트 주주는 KKR-새 인수자 구도가 된다. 새 인수자가 사모펀드(PEF)라면 불편한 동거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KKR이 난색을 표할 수 있다.

      KKR이 이번에 에코비트 회수에 나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어차피 매각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면 태영그룹과 함께 파는 편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얻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에코비트 지분을 매각하고 티와이홀딩스 투자금도 상환받으면 높은 내부수익률(IRR)을 기대할 수 있다. 태영그룹 입장에서도 원매자에 ‘KKR과의 계약 관계’를 고려해달라 요청할 여지가 생긴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KKR이 태영그룹의 에코비트 매각을 동의하더라도 새 파트너와 공동경영 체제를 이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목돈이 필요한 태영그룹이든, IRR 관리를 신경 써야하는 KKR이든 이번에 함께 파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에코비트 매각 시 가장 걸림돌이 될 부분은 결국 몸값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에코비트는 각각 1조원 안팎으로 평가받은 두 기업이 합쳐진 곳이다. 이후 합병 및 사업 조정에 따른 가치 변동은 있었지만 2조원 초반대 몸값은 기대할 만하다는 시선도 있다. 다만 긴축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 정도 자금을 쓸만한 대기업은 손에 꼽고, PEF 중에서도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에코비트는 PEF 투자를 거치며 사업 구조가 간결해졌고 2000억원 이상의 현금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파는 쪽이 급한 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원매자들이 충분한 숫자를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ESG 열풍과 팬데믹 유동성에 힘입어 고공행진했던 환경기업의 매력도도 정점을 찍은 분위기다.

      이는 '우선권'이 있는 KKR이 에코비트 인수에 관심을 가질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적정한 가치를 산정하는 작업이 이어지겠지만, 투자 후 회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선 후한 값을 쓸 이유가 많지 않다. 사정 급한 태영그룹에 유동성 확보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그간 좋은 관계를 유지한 파트너에 대한 배려가 될 수 있다.

      한 대형 PEF 임원은 “에코비트는 PEF로선 나쁘지 않은 투자처라 관심을 두고 있지만 시장에서 거론되는 예상 가격은 과도하게 높아 보인다”며 “일단 매물로 나오는지 확인한 후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