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융(IB) 힘빼는 금융지주…조직 줄이거나 각자도생으로
입력 2024.01.10 07:00
    신한금융 GIB 조직 축소…캐피탈·라이프 빠져
    KB금융도 CIB 계열사 자체 경영 체제로 변경
    매트릭스 한계 봉착…투자보다 관리에 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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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4대 금융지주가 연말 조직개편을 마무리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투자은행(IB)부문 축소다. 그룹 계열사들 간 IB 업무에서 시너지를 강조하며 출범했던 매트릭스 조직인 기업투자금융(CIB)이나 글로벌투자금융(GIB) 조직을 축소하고, 각 계열사에 맡기는 방식으로 변화가 있었다. 통합 조직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부각되는 시점이란 점과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연말 조직개편을 단행한 신한금융지주는 GIB 조직을 대폭 축소했다. 기존 GIB 부문에는 신한은행, 신한투자증권, 신한캐피탈, 신한라이프 계열사가 속해 있었지만, 연말 조직개편에서 GIB 부문에는 신한은행과 신한투자증권만 남게 됐다. 

      신한캐피탈과 신한라이프가 빠진 배경으론 통합조직의 시너지보다는 한계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시장의 유동성이 메마른 상황에서 고금리 여파로 그간 투자해 놓았던 자산에서 부실이 드러나고 있다. 즉 GIB 차원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GIB 조직에 속해 있는 것보단 각 계열사가 그간 투자한 것들을 관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GIB 조직에서 빠진 신한캐피탈 등 계열사의 부실 문제가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작년 3분기 기준 신한캐피탈의 총자산은 13조원 수준인데, 요주의이하여신액이 8422억원으로 전년동기 보다 2788억원이 늘어나며 200%가량 증가했다. 요주의이하여신비율은 10.3%로 전년동기 대비 3배가량 늘었다. 특히 신한캐피탈 대출자산의 60% 이상이 기업대출로 구성돼 있는데, 고금리 상황에서 부실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신한금융 관계자는 “투자보다는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보니 GIB 조직에서 신한캐피탈과 신한라이프가 빠져나가는 방향으로 정리됐다”라며 “10년 동안 GIB 조직이 운영되면서 투자 부문이 성장한 것도 있지만 한계도 보이는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KB금융지주도 유사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지주 산하의 CIB 조직을 없애고, 각 계열사가 각자 알아서 해당 조직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각 계열사는 투자 판단에 있어서 협의체 정도만 운영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KB금융 관계자는 “지주 조직에서 CIB 부문이 빠지고, 협의체 수준에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제 증권사들은 지주 차원의 지원을 기대하기보단 개별적으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과거 IB시장이 활황일 때만 하더라도 신한금융의 GIB, KB금융의 CIB 등이 조직 차원에서 증권사의 든든한 '뒷배' 역할을 했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에 개별 증권사들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자기자본투자(PI)보단 채권자본시장(DCM)이나 주식자본시장(ECM) 등 수수료 기반의 전통 IB 역할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우리금융은 CIB 조직을 신설했는데 이는 증권사가 없다는 점에서 투자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지주이긴 하지만 사실상 은행을 제외하고는 투자를 담당할 부문이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타 금융지주 대비 부실이 작은 점도 작용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우리금융이 작년 말 우리종합금융의 약 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한 만큼 당장 증권사 인수보단 기존 계열사를 중심으로 IB사업을 키워갈 가능성이 높다. 금번 CIB 신설 역시 이 같은 그림에 힘을 실어주는 조직개편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CIB나 GIB 조직의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금리 시대에선 좋은 투자처 발굴이 금융지주의 IB 부문 핵심과제였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우후죽순으로 통합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조직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컨트롤 타워’ 이슈는 해결점을 쉽게 찾지 못했다. 

      각 계열사 CEO 들의 성과평가와 연동된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더불어서 통합조직을 운영하는 그룹장에게 인사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태생부터가 협의체 수준을 넘기 힘들었다. 그나마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투자처가 있을 때야 협의가 원활하게 진행되겠지만, 요즘 같이 채권에만 투자해도 5% 이상의 투자 수익이 나는 상황에선 이런 기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실무진들을 중심으론 여전히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 CIB나 GIB 조직이 필요하단 의견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산하 매트릭스 조직의 근본적인 한계는 컨트롤타워에 있다”라며 “괜히 총대를 멨다가 인사상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판단에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조직이 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