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덕분에 우리도 살겠지"…고자세로 전환한 건설사들
입력 2024.01.10 14:31
    취재노트
    맹탕 자구안에도, 금융당국 "신뢰회복" 화답
    사실상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에 무게
    한계 건설사들 자금조달 주춤
    "조건 따지고, 자료 공개 안하고" 고자세로 전환
    "태영 믿다가 실기(失期)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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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태영건설의 채권단공동관리절차(워크아웃) 개시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지난주만해도 대통령실,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등이 직접 나서며 사재출연과 추가 자구안 등을 요구해 압박하는 모양새를 조성했는데 주말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윤세영 창업회장은 채권단에 마치 백기투항한 것과 같은 상황을 연출했지만 태영그룹이 제시한 마지막 자구안은 기존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게 중론이다.

      사실상 '맹탕' 자구안을 들여다본 채권단은 "태영그룹이 발표한 추가 자구계획과 계열주의 책임이행 의지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심지어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미집행분'을 뒤늦게 태영건설에 대여한 것을 두고선 "정상화 추진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날 선 반응을 이어오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채권단 지원을 폭넓게 고려하는 것이 워크아웃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며 화답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워크아웃 개시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최선을 다한 모습이 연출돼 왔다. 이 과정을 지켜본 건설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이다. 특히 유동성 위기가 거론된 건설사, 과도한 PF우발채무로 태영건설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 건설사들의 긴장도는 한풀 누그러졌다.

      태영건설과 워크아웃 신청 전후로 부채비율이 높은 코오롱글로벌, 신세계건설 등이 고위험군 건설사로 거론됐다. 미착공 사업장 가운데 지방 사업장이 많은 GS건설도 도마위에 올랐다.

      실제로 사업장 본PF 전환을 목적으로 2000억원대 자금 유치를 위해 수많은 금융사들과 접촉하던 A건설사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가 임박하자 금융기관과 조건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사실 PF사업장에 자체 자금이 수백억원 투입돼 자금 압박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조금만 더 버틴다면 금융사들로부터 보다 유리한 조건을 끌어 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태영건설과 함께 위기의 건설사로 항상 거론되던 B건설사도 가장 최근 들어선 자금조달 움직임이 더뎌진 것으로 파악된다. 실질적 사업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역시 건설사를 향한 정부의 강력한 회생 의지를 비쳐볼 때 은행 및 금융사들이 과거와 같은 고자세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 깔려있다. 해당 건설사는 최근 들어 금융사들과 자금 유치 협상을 진행할 때 사업장을 공개하지 않는 등 자금유치에 비교적 소극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PF부실이 가장 심각했던 태영건설의 회생 가능성이 옅보이면서 기회를 노리던 일부 금융사들의 전략의 수정도 불가피해졌단 평가를 받는다. 한계에 봉착한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법정 최고금리까지 고금리 대출을 추진하던 금융사들은 눈높이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물론 일부 자금이 매우 급한 건설사의 경우 약 20% 달하는 금리를 감수하고도 조 단위 자금을 빌리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다.

      태영건설의 회생 가능성에 건설사들이 되찾은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평가도 있다.

      부동산 PF 위기가 절대 현실화 해선 안되는 총선을 불과 세 달여 앞둔 시점, 이를 너무도 잘 아고 있을 태영의 오너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끌어내지 못할 걸 알면서도 '면피'가 필요한 금융당국 등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태영그룹의 사례를 직접 대입하긴 어려워 보인다. 

      자칫 "우리도 살려주겠지"란 희망에 빠진 건설사들이 생존 자금 확보에 실기(失期)한다면 총선 후 여유를 찾은 정부의 본보기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