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오너家 블록딜에서 사라져 버린 국내 기관들
입력 2024.01.12 07:00
    취재노트
    홍라희 여사 등 삼성전자·SDS·생명 등 2.8兆 블록딜 성공
    외국계 주관사 주도, 국내 기관들 제한적 참여
    국내 기관들 초청 점점 줄어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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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삼성전자·삼성SDS·삼성생명 등 일부 지분의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에 성공했다. 홍라희 여사,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은 상속세 재원 마련이 목적이다. 

      총 규모는 2조8000억원으로 적지 않은 규모의 주식이 투자자들에게 분배됐는데, 해당 주식의 대부분은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이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블록딜은 골드만삭스가 대표주관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UBS·JP모건이 공동주관사로 참여하며 외국계 증권사 주도로 진행됐다. 이에 앞서 지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홍 여사 및 오너일가는 삼성전자와 삼성SDS, 삼성생명 지분을 블록딜로 꾸준히 매각해 왔는데 당시엔 KB증권 등 국내 금융기관이 주선사로 참여했었다.

      외국계 증권사가 주관을 맡아도 국내 기관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내 증권사가 주관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거래와 비교하면 국내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이번 거래에선 국내 투자자들의 비중이 낮고, 외국계 기관들 대다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거래는 주관사단을 외국계로 구성해 일부 제한된 투자자들에게만 투자 기회를 부여하면서 최대한 정보를 통제하겠단 의도로 비쳐진다. 삼성 오너일가의 지분 매각이기 때문에 삼성 금융 계열사의 참여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굳이 삼성증권과 경쟁하는 국내 금융기관에 대규모 거래 실적을 쌓아줄 필요성을 갖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국내 기관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블록딜의 경우 지분 매각 소식이 금새 퍼져나가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블록딜 소식이 확산하면 시간외거래 가격과 다음날 시초가에 할인된 가격이 반영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의 참여 메리트가 크게 줄어든다.

      최근 금융당국은 내부정보 거래, 미공개 정보 이용 거래, 선행 매매 등 불공정 행위와 관련한 기관투자자들의 주식거래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카카오(시세조종혐의) 한국앤컴퍼니(선행매매 의혹) 등의 사례가 거듭한 점도 원인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기관투자자들 역시 블록딜에 참여할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 대형 기관투자자의 경우 내부통제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업 최대주주의 지분을 블록딜 형태로 인수하기 위해선 준법감시인의 확인이 필요한 장치들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 역시 국내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블록딜에 나서지 못하는 요인이된다.

      최근 블록딜의 건수와 규모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이는 주식시장이 침체한 원인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블록딜보다 특정 투자자들만 초청해 거래를 속전속결로 성사하는 클럽딜 형태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는게 더 큰 원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