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도 CEO '4연임 포기'로 백기…반복되는 '민영화 3형제' 촌극
입력 2024.01.15 07:00
    취재노트
    KT·포스코에 이어 KT&G 수장 연임 포기
    사실상 국민연금 통한 정부 '눈치'에 백기
    반복되는 '민영화 3형제' 외풍 압박 논란
    정권마다 바뀌는 기업 기조에 시장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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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4연임’ 도전 여부로 시장의 관심을 모았던 백복인 KT&G 사장이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앞서 KT, 포스코그룹에 이어 ‘민영화 3형제’ 모두가 사실상 정부 눈치에 현직 대표가 연임에 실패하게 됐다. ‘소유 분산 기업’들이 국민연금을 통한 관치(官治)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경영 자율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달 11일 KT&G는 신임 사장 선임을 위한 차기 사장 후보군(롱리스트)으로 사외 후보 14명, 사내 후보 10명이 포함된 24명을 확정했다. 하루 전인 10일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백복인 KT&G 사장은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았다. KT&G는 이달 말 1차 숏리스트, 2월 중순 2차 숏리스트 선정을 거쳐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후 최종 후보자를 선정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차기 사장 선임을 결정한다. 

      백복인 KT&G 사장의 연임 포기를 두고 ‘10년째 대표’가 무릎을 꿇은 것은 사실상 국민연금을 통한 정부의 입김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앞서 포스코그룹은 포스코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지적으로 최정우 회장의 3연임이 무산됐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포스코 차기 회장 선임은 내외부인 차별 없는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어야 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비판했다. 

      물론 국민연금 측이 공개적으로 KT&G의 사장 인선에 대해 의견을 낸 것은 아니다. 다만 KT&G 의 3대 주주인 국민연금(6.31%)의 입장이 백복인 사장의 4연임 여부의 ‘캐스팅 보트’라는 분위기가 강했다. 국민연금은 2018년 백복인 사장의 첫 연임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에도 ‘중립’을 선언하며 사실상 연임 성공을 이끈 바 있다. 

      또한 지난해 8월 국민연금이 KT&G의 지분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며 영향력을 가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포스코의 경우에도 국민연금이 포스코홀딩스 지분(6.71%)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규정하며 주주권행사 가능성을 열어둔 바 있다. 여러모로 KT&G가 정부의 ‘메시지’를 무시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주총에서도 상황상 백복인 사장이 도전하면 연임할 가능성 높았는데, 결국 정부의 눈치를 봐서 물러난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이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또 ‘민영화 3형제’의 ‘관치 논란’이 불거진 셈이다. KT, 포스코, KT&G 등은 ‘공기업도, 완전한 민간기업’도 아닌 상태로 기업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주, 투자자,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들은 정권따라 바뀌는 기업 수장, 수장따라 바뀌는 경영 기조에 사실상 이들 본연의 ‘기업 가치’를 고려하기 쉽지 않다. 

      해당 기업들은 매번 대표 선임 과정에서 투명성 논란이 불거지자 선임 절차를 개정하고, 단계별 절차 공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보여주기식’ 절차에 한계만 더욱 드러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대표 통신사’, ‘국내 1등 담배기업’, ‘국내 최대 철강사’의 수장을 선임하는 과정이 단계별로 공개되며 시장의 관심을 흡수한다. 선임이 마무리될때가지 후보에 든 인물이 누군지, 각 후보와 정치권과의 ‘접점’은 어떠한지 등의 경마 보도가 이어지는 진풍경이 반복된다. 

      10일 포스코는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총괄하는 CEO후보추천위원회가 5차 회의를 개최하고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내·외부 인사 22명을 후보군에 올렸다. 후보군 중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포함됐다고 알려지며 관심을 끌었다. 앞서 작년부터 권 회장이 ‘포스코로 옮긴다’, ‘정치권 인사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다’는 식의 ‘뜬소문(?)’이 돌기도 했던 터라 더욱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번 포스코 회장 선임 절차도 외풍이 가장 큰 변수라는 관측이 많다. 문재인 정부 시절 취임한 최 회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하면서 사임설이 계속 나왔다. 지난해 말엔 포스코그룹 차기 회장 인사에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개입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김 전 실장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만큼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과거 국민연금 인사들이 KT 대표이사 선임 과정의 투명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대통령실까지 “주인 없는 기업은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며 힘을 더했다. 이후 KT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 여권 출신 인사 18명이 KT 대표이사 후보에 지원했다. 이번 포스코 회장 선출 과정과 KT&G 사장 선출 과정에서 이 같은 ‘촌극’이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