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강한 美 '반독점' 기조…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 가리는 DOJ 벽
입력 2024.01.23 07:00
    EC측 다음달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 발표할듯
    '경쟁 지속성' 보여야…'반' 넘은 유럽의 벽
    미국은 새 게임…DOJ는 '반독점' 입장 강화
    법원도 DOJ 손들어줘…"올해 넘길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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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다음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을 발표할 가능성이 커진 분위기다. EC 외에 일본과 미국 경쟁당국의 심사가 남은 가운데 미국 쪽 작업은 사실상 ‘이제 시작’이라는 평이다. 미국 법무부(DOJ)가 특히 항공업 M&A(인수합병)에 여전히 단호한 ‘반독점’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 법원도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최근 복수의 외신은 E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EC는 대한항공이 보유한 자사 14개 유럽 노선 중 4개 노선 반납과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을 전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승인해준다는 방침이다.

      다음달 심사 결과의 경우, 앞서부터 아시아나 이사회 결의가 통과되면 EC 측이 조건부 승인을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 바 있다. 이후 실제 시정조치안 이행 여부가 ‘최종 승인’을 결정짓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대한항공이 합병을 위해 EU에 반납하는 여객 운수권과 슬롯을 확보할 대체 항공사(remedy taker)가 실제 취항을 하고, 이후에도 경쟁 유지가 가능할 것이란 판단이 서야 EC 측이 최종 승인을 내리게 된다.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심사도 남아있다. 미국과 일본 모두 지금까지 심사에 속도를 내지 않았다. 일본 경쟁당국은 타국 심사 추이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앞서 대한항공도 EC에 이어 일본 경쟁당국의 심사를 연초 종결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초안 제출을 마치고 협의를 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미국 법무부(DOJ)다. 지금까지는 EC의 단호한 입장에 미국이 나서지 않았지만, 오히려 EC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법무부는 '반독점 기조'를 강화하면서 기업결합 심사를 거치기 보다 바로 소송 절차로 들어가는 형국이다. EC처럼 협의가 의미 있는 단계로 진행된 바가 아니다보니 사실상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DOJ가 지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송이 많다 보니 대한항공-아시아나 건은 시간 조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미국은 EC 결정을 보고 판단에 들어갈 텐데, 과거 이미 DOJ 측이 회의적인 입장을 전달한 바 있어 서로 협의되지 않은 부분을 진행하면 소송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미국 연방법원까지 법무부의 ‘경쟁제한 반대’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16일(현지시간) 미 연방법원이 제트블루 항공(JetBlue Airways)이 38억달러(약 5조1200억원)에 스피릿 항공(Spirit Airlines)을 인수하려는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미 국내선 항공시장 점유율 6위인 제트블루가 7위 항공사인 스피릿 인수에 성공하면 미국의 5대 항공사로 부상할 전망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미 법무부와 6개 주 및 컬럼비아 특별구의 법무장관이 두 회사의 합병을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제트블루가 경쟁사를 인수해 사실상 없애면 경쟁이 제한되고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법원은 “제트블루와 스피릿 항공의 합병은 반독점법의 핵심 원칙, 즉 미국 시장과 시장 참가자를 반경쟁적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제트블루 측은 “스피릿을 인수해 덩치를 키워야 빅4 항공사들과 경쟁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왔으나 법원과 행정부에 통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기업간 합병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년에 걸친 항공업계 M&A가 항공시장 경쟁을 극도로 제한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빅4 항공사의 국내선 시장점유율은 약 80%에 이른다. 

      이번 판결로 알래스카 항공(Alaska Airlines)의 하와이 항공(Hawaiian Airlines) 인수 거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알래스카 항공은 경쟁사인 하와이안 항공을 19억달러(약 2조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법원의 '제트블루-스피릿' 합병 판결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입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 <폴리티코>는 “이번 판결은 바이든 행정부의 강화된 반독점 입장에 대한 주요 승리로, 미국 정부가 알래스카 항공과 하와이안 항공의 합병에 대한 검토를 시작하고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정부의 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이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면서 행정부 교체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기업결합 관련 업무는 DOJ가 독자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영향은 미미할 전망이다.  

      대한항공 측은 “미국은 DOJ와의 시정조치 방안 협의를 통해 경쟁제한 우려 해소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 경쟁당국과 시정조치안 협의 완료되는대로 정식신고서 제출 후 24년 상반기 내 심사 종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