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흥행 '착시효과'…큰손 보험사 이탈에 장기물은 '약세'
입력 2024.01.24 07:00
    조단위 수요는 '착시효과'…단기물에만 몰리는 자금
    역마진 우려한 보험사 회사채 매수에 소극적인 탓
    레고랜드 당시 5%↑ 금리로 퇴직연금 유치했는데
    지금 회사채 금리는 4%대…매수하면 역마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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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연초 회사채 발행에 나선 기업들이 연일 조단위 수요를 끌어모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연초효과'에 힘입어 회사채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발행을 주관하는 주관사 관계자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입을 모은다. 

      수요가 2, 3년의 단기물에 집중돼 전체 규모가 커 보이는 '착시효과'란 설명이다. 실제로 5년 이상 장기물에선 미매각이 발생하는 사례도 나왔다. 연초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민평금리 대비 10bp 이상 낮은 저금리 발행도 드물다. 이는 회사채 시장의 '큰손'으로 꼽히는 보험사들이 최근 역마진을 우려해 회사채 매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연초 회사채 발행사들의 수요예측 결과를 살펴보면, 투자자들의 수요는 3년물과 5년물에서 크게 엇갈리고 있다. 

      실제로 올해 가장 먼저 회사채 발행에 나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AA-)는 3년물 800억원 모집에 1조400억원의 자금이 몰렸으나, 5년물 600억원 모집은 수요가 1000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경쟁률은 7.1:1로 높아 보이지만 5년물 경쟁률은 1.67:1로 괴리를 보인 셈이다.

      한화솔루션(AA-)은 3년물 1000억원 모집에 1조50억원이 몰려 10: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느나, 5년물 400억원 모집에서는 100억원의 미매각이 발생하기도 했다. 발행 금리 역시 3년물은 민평금리 대비 2bp(1bp=0.01%p) 아래로 발행했지만, 5년물은 밴드 최상단인 30bp 높게 발행했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담당자는 "연초 회사채 시장 분위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아서 주관사 입장에선 당혹스럽다"라며 "수요가 연일 조단위로 몰리지만 실상은 2, 3년물에만 집중된 착시효과에 불과하고 장기물은 금리도 높아 섣불리 발행을 권유하는 데 제한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연초 회사채 시장에서 만기에 따라 수요와 금리가 엇갈리는 데는 역마진을 의식한 보험사가 있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잔존만기(듀레이션) 관리가 중요한 보험사들은 부채가 대부분 장기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5년 이상의 장기물을 매수하는 비중이 높다.

      하지만 과거 퇴직연금 유치 경쟁에 무리하게 뛰어든 보험사들이 5~6% 이상의 높은 금리를 약속했는데, 현재 회사채 시장의 5년물 평균 금리가 4% 초반대로 형성돼있어 매수를 하게 되면 오히려 손실이 나 주문에 소극적이란 설명이다. 주문을 넣더라도 발행사가 제시한 금리밴드의 상단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레고랜드 사태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보험사들은 2022년 말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며 퇴직연금 유치에 애썼다. 당시 하나생명은 퇴직연금 금리를 6.3%까지 올렸고, 동양생명도 5.95%까지 인상했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 대형사도 금리가 5%대 수준이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당시 확정금리로 유치했던 퇴직연금은 만기가 길고 금리가 높다"며 "현재 회사채 금리로 채권을 매수해 자금을 운영하게 되면 오히려 역마진이 나게 되는 구조라 보험사들이 회사채 매수에 소극적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