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금융권, 핵심 화두는 '위험 분산'…"수익 나눌테니 위험도 나눠 갖자"
입력 2024.01.25 07:00
    총선 후 부동산PF 리스크 우려에 리스크 선제 대비
    캐피탈사, 추가 신용보강 없인 대환대출 취급 안 해
    證, 건설사·수익 저하된 기업 공모채 '공동'주관 선호
    기업들도 자금 선제 조달 나서…"1·2월 DCM 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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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권에 4월 총선 이후 다가올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기 회복 지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대형 정치 이벤트 이후 펼쳐질 경제 상황에 예측 불가능한 점이 많아서다. 잠재된 부실 뇌관이 큰데다 일부 우려는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가 업계 전반적으로 퍼지며 각 금융사들은 '분산'을 통해 위험(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전 같으면 독자 수행했을 거래도 대규모 인수단을 꾸려 함께 들어가는 식이다. 올해 들어 매크로는 물론, 지정학적 리스크 등 국내 변수도 요동치고 있는만큼, 당분간은 이런 기조는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그룹 회장들의 올해 신년사 핵심 화두는 단연 '리스크'였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신년사에서 리스크 관리를 주문한 데 이어 최근엔 계열사 C레벨과 연쇄회동을 갖으며 철저한 관리를 당부하고 있다. 리스크 관점에서 사업을 분석하고 추진할 사업들을 제안하는 등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의 역할 확대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철저한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로 일류 신한의 꿈에 다가갈 것을 요구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해 10년 만의 역성장 위기, 비은행 부문의 성장 저하 등 그룹의 부족한 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라며 “올 한해에도 엄격한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부동산 PF 위기 등 리스크 관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저마다 리스크 관리를 내세우는 것은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올들어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일부 잡음이 일었지만, 앞으로 다가올 리스크에 비하면 그리 중차대한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우려하는 것은 총선 이후 펼쳐질 경제 상황이다. 총선 전까지 정부가 부실을 막으려고 하겠지만, 그 이후엔 정부에서조차도 손 쓰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우려의 핵심이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맞물려 있다. 총선 전까진 건설사 워크아웃은 현실화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있었지만, 태영건설이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정부가 부실을 막는 것에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총선 이후가 되면 동시다발적으로 이런 이슈들이 터질 수 있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일부 대형 건설사를 비롯해 중소형 건설사의 연쇄 도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중소건설사 도산으로 자금을 댄 신탁사, 증권사, 캐피탈사, 저축은행 동반 부실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후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경기 불황으로 이어지는 터널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캐피탈사들은 재무 안정성이 높은 건설사의 신용보강이 추가로 있지 않은 한 대환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등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부동산 경기가 깊은 침체에 빠질 경우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라며 “이미 일부 사업장에선 건설사에서 신탁사로 문제가 전이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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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권사들은 이미 이런 시나리오를 걱정해 왔다. 실제로 금융사들은 '넥스트 태영건설'이 될 건설사를 찾거나 재무 여력이 감소하고 있는 기업 소식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사나 수익성이 꺾여가는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에 대한 리스크 분산에 나서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 공모채 발행 시 공동주관을 맡아 시장에서 소화가 안 될 물량을 떠안을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을 통해서다. 이전 같았으면 3곳 정도가 발행 주관사로 나섰다면 최근에는 5~6곳이 공동주관을 맡는 것은 당연한 분위기가 됐다. 최근 논의 중인 은행권의 롯데건설 유동성 지원 역시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을 주축으로 복수의 은행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건설사는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건설채 투심이 꺾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관사를 여럿 껴서 미매각 가능성을 낮추려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증권사들끼리 서로 암묵적으로 공동주관을 맡으려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자금조달 시장 냉각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부동산 PF 위기가 경제 전반으로 퍼질 경우 자본시장에도 그 한파가 불어닥칠 수 있어서다. 일부 기업들은 회사채 만기가 5개월 이상이 남았음에도 선제적으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통상 만기 한 달 전에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리가 떨어질 것이란 전망에도 총선 이후 펼쳐질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1~2월 중 공모채 발행에 나서는 기업들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증권사 커버리지부서 또한 분주해졌다. 특히 SK그룹,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발행사 리스트에 대거 이름을 올린 상황이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부서 관계자는 "이미 지난 연말과만 비교해 봐도 금리 메리트가 확실한 상황이라 시장의 분위기가 좋은 연초에 기업들이 조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