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 간 '3월 인하설'...반도체 우려에 지정학적 이슈 겹쳐 '도로 박스권'
입력 2024.01.25 07:00
    美 연준 보수적 태도에 3월 인하 가능성 70%→41%
    반도체 업황 기대감, 삼성전자 잠정실적에 무너져
    지정학적 리스크 부각하며 환율 급등...외국인 매수 '주춤'
    상반기 기간조정ㆍ업종별 순환매 예상..."지수보단 종목"
    • 올해 연초 증권가의 논쟁거리 중 하나는 '2800 패러독스'였다. 대부분의 국내외 증권사 리서치에서 올해 코스피 지수 상단을 2800선 안팎으로 예측했는데, 이와 동시에 업황 회복에 따른 반도체주 강세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해 말 코스피가 이미 2650선까지 오른 상황에서, 반도체가 강세를 보인다면 지수는 2800선 이상으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모순(矛盾)이었다.

      새해 첫 달이 지난 현재, 코스피는 연초 대비 6%대 하락률을 보이며 중국과 더불어 글로벌 증시 중 가장 성과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반도체 기대감을 타고 8만원 코 앞까지 올랐던 삼성전자 주가는 다시 7만원대 초반까지 하락하며 12월 상승분을 상당 부분 반납했다. 예상보다 좋지 않았던 4분기 반도체 부문 실적에 실망 매물이 쏟아져 나온 탓이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글로벌 증시를 선도했던 '디스인플레이션'과 '미국의 조기 기준금리 인하' 논리 역시 힘이 빠진 상황이다. 올 상반기는 글로벌 증시가 대부분 박스권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기다리며 방향성을 찾는 가운데, 국내 증시는 기업 예상 실적 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 내부 변수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3일 코스피는 2478.61기록하며 보합세로 거래를 마감했다. 연초 이후 10거래일 중 9거래일동안 하락하며 지난 17일 2400대 초반까지 밀린 이후 다행히 추가로 급락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2500선 위로 다시 올라갈 동력은 찾지 못하고 한 주 내내 보합세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코스피가 2400~2600사이 박스권에 갇힌 채 종목별로 순환매 장세를 보일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연말까지 진행된 증시 랠리는 크게 두 가지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였다. 하나는 미국의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완화하며 이르면 올해 3월 긴축이 끝나고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란 기대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반도체 업황이 다시 상승 주기로 접어들며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를 위시한 반도체주의 실적이 급격히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지금은 이 두 가지 기대감이 모두 꺾여버린 상황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주요 인사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목소리로 3월 금리인하 시작론을 부정하고 있다. 현 시점에선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잡힌 것인지 확신하기 어려우며,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 부담도 아직은 크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미국 상품거래소 국채 선물 가격에 반영된 3월 기준금리 인하 확률은 지난해 말 한때 70%를 뛰어넘었지만, 지금은 41%로 뚝 떨어진 상태다. 5월에도 기준금리를 낮추지 않고 현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은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0%였지만, 지금은 16%까지 올라왔다. 3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옅어지며 지난해 말 한때 3.78%까지 내려왔던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 역시 4.1%대로 되돌려진 상태다.

    • 반도체 업황 회복에 대한 실망감도 만만치 않았다는 분석이다. 지난 10일 삼성전자 잠정실적발표가 분수령이었다. 삼성전자는 4분기 영업이익이 2조8000억원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전망치 3조7000억원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흑자전환까지 내다봤던 반도체 사업부문(DS)이 4분기에도 2조원 이상의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황이 구조적으로 회복세에 들어섰다는 점에선 전문가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디램은 물론, 오랫동안 발목을 잡아온 낸드플래시 반도체 부문 모두 지난해 4분기 이후 현물 가격(spot price)이 고정공급가격(contract price)을 상회하며 '현물 프리미엄'(spot premium)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현물 프리미엄은 반도체 업황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다.

      다만 회복세의 속도와 크기가 이슈다. 미국의 정보기술(IT)기업 엔비디아가 최근 또 다시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AI 관련 반도체 수요가 기대감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AI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극히 일부일 뿐, 결국 반도체 수요를 결정하는 건 글로벌 경기의 방향이라는 평가가 많다. 

      미국은 물론, 독일 등 주요 산업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0을 지속적으로 하회하며 제조업 경기 위축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다. 실제로 반도체 회복세에 대한 기대감이 옅어지며 지난해 7월 262조원에 달했던 코스피200 24024년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는 현재 246조원대로 조정되기도 했다.

      여기에 국내 증시엔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덮쳤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중국이 경기 방어에 실패하며 원달러환율이 속수무책으로 밀린 것이다. 지난해 말 1달러당 1289원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지난 17일 1350원 부근까지 치솟았다. 동맹국 공조보다는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측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우는 배경이 됐다는 평가다.

      이는 지난해 12월 '산타랠리'를 이끌었던 외국인 투자자들을 주춤하게 만드는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외국인들은 지난해 12월 코스피에서만 3조원을 순매수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올해 들어 23일까지 코스피 외국인 순매수는 2조33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허수가 포함된 수치다. 홍라희 여사 등 삼성그룹 일가가 대량매매(블록딜)한 삼성전자 지분 매수액이 포함된 것이다. 

      이를 제외하면 올 1월 외국인 투자자들의 코스피 순매수 규모는 고작 2000억원에 불과하다. 외국인들은 오히려 삼성전자 지분 블록딜 이후 일주일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매물을 집중적으로 쏟아내며 코스피 하락을 부추기는 모양새였다. 

      당분간 증시는 박스권을 유지하며 지수보다는 종목이, 대형주보다는 소형주가 성과가 나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순이익비율(PER)은 10.4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3배 수준으로 밸류에이션 매력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다만 미국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하는 상황에서 미국ㆍ중국 등 주요국들의 경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지난해 연말 같은 랠리도 기대할 수 없다는 분석이 많다.

      이경민 대신증권 전략 담당 연구원은 "2분기 중에는 미국 금리인하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주요국들의 경기 저점통과와 중국의 정책 기대가 동반 유입될 것"이라며 "1~2월 가격조정 이후 기간조정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으며 실적, 수급 변화를 통해 업종별 순환매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