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살리다 급선회한 당국…업계 "PF 하지 말란 말이냐"
입력 2024.01.30 07:00
    당국, PF 살리기 기조에서 압박 '급물살'
    생각보다 빠른 분위기 변화에 업계 당혹감
    "새로운 PF도 기존 PF 유지도 어려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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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당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보기'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됐다. 예상보다 이른 시점과 강한 압박에 금융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동시에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금융권은 새로운 PF 대출을 일으키는 건 물론 기존 PF 대출도 정리하게 될 거란 전망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가 있는 4월 10일까지는 당국이 PF 위험이 커지지 않도록 도와줄 거란 게 업계의 중론이었다. 부동산 경기 하락 등 총선을 앞두고 당국은 표심에 타격받을 변수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라 전해졌다. 

      그러나 당국은 최근 PF 시장에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5일 신한캐피탈·한국투자캐피탈을 포함해 저축은행·캐피탈·상호금융업 등 2금융권 임원을 불러 PF 리스크 점검 회의를 열었다. PF 부실에 대비해 보수적으로 사업장을 평가하고 충당금을 적립하라 요청했다.

      이에 금융권은 본PF 전환이 안 되는 브릿지론에 대해서는 2023년 말 결산 시 예상 손실 100%로 인식해 충당금을 적립해야한다. 대다수 브릿지론이 고정이하여신(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 대출)으로 분류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사실상 회수하지 못할 게 확실해 손비처리가 불가피한 회수예상가액 초과여신인 추정손실채권으로 분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처럼 업계의 혼선이 빚어지는 가운데, 일부 금융사는 당국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2023년 회계 마감이 미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본PF로 전환해도 공사가 지연되거나 분양률이 낮은 PF 사업장은 과거 경험 손실률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해야 한다.

      또한 작년 기준 당기순이익이 발생한 금융사는 최대한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권고 사항이지만 강제 사항에 가깝다. 충당금을 적립하지 않고 배당·성과급으로 사용하면 금융감독원 검사국은 해당 회사의 자산건전성·자산관리·내부통제·성과급 적정성 등을 '1:1 밀착 개별 점검'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외에도 당국은 시행사 자기자본비율을 2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시행사는 보통 사업비의 5~10%만 투자한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대출 관리 방안을 종합검토해 PF·ABCP 만기 불일치 해소 방안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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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당국의 'PF 살리기' 기조가 점차 바뀌는 걸 두고 금융권에서는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PF 부실 정리가 시작될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그 당국의 태도 변화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더 이상 새로운 PF 대출을 하지 말라는 당국의 강력한 지시다"며 "당국이 금융사의 부동산 투자를 강제로 막을 방법은 없다 보니 투자 유인을 없앴다"고 밝혔다.

      연장 브릿지론에 대해 예상 손실 100%로 인식해 충당금을 쌓는 건 과도하다는 목소리다. 2금융권에 브릿지론이 몰린 건 맞으나, 처분 가능한 토지 가치를 감안하면 충당금 규모가 부담된다는 반응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말 국내 부동산 PF 대출 잔액 130조원 중 브릿지론 규모는 30조원이며, 이 중 70%는 2금융권에 집중됐다.

      새 PF 대출을 일으키기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기존 브릿지론 대출도 서둘러 회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100% 손실로 충당금을 적립하면 해당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 의미가 줄어든다. 대손충당금(대손상각비)을 쌓으면 영업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브릿지론을 일부라도 회수하면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반강제적으로 충당금을 쌓기 때문에 공·경매에 부쳐질 사업장이 많아질 전망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 할당 받았던 이연성과급까지 못 받을 가능성이 커져 업계 전반적으로 의지력이 사라졌다"며 "보통 결산이 끝나는 2~3월 성과급이 지급되지만, 올해는 기대감이 적다"고 전했다.

      물론 금융권도 지난 일 년 동안 자구책을 마련할 기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살길을 모색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재작년 레고랜드 이후 금융당국은 은행·증권사 등 사실상 모든 금융기관을 내세워 PF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시간을 벌어줬다. 그러나 일부 금융사는 충당급 적립·사업장 정리를 하지 않고 유동성을 통해 추가로 '막바지' 사업을 일으킨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언젠간 좋아질 거로 생각하고 유동성을 적극 지원하는 당국을 보며 안일하게 생각한 것도 사실"이라며 "4월 총선 이후에 당국의 압박이 시작될 거로 판단했는데, 압박은 이미 시작됐으며 총선 쯤에는 본격적으로 사업장 정리가 시작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