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CJ로만 쏠리는 채안펀드…매입대상 확대엔 선 긋는 금융당국
입력 2024.01.31 17:00
    1년 연장 운영 채안펀드, 올해도 롯데·CJ 지원 '분주'
    주관사 "롯데·SK·CJ 등 대기업만 지원해 취지 훼손"
    운용사 "특정 기업만 수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당국 "매입대상 확대 고려 안해…그 정도 위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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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연초 채무상환을 위해 회사채 시장을 찾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채권시장안정펀드(이하 채안펀드)도 움직임이 바빠졌다. 1월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롯데쇼핑과 롯데지주, 호텔롯데에 이어 CJ ENM 등에 유동성을 지원하고 나섰다. 

      다만 채안펀드가 매입하는 회사채 대상이 일부 대기업에 한정돼있어 발행사와 주관사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작 조달 여건이 더 어려운 중·소형사들은 정책자금의 수혜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채안펀드 운용사는 채안펀드가 대기업만 지원한다는 인상은 '착시효과'일 뿐, 채권시장 안정화라는 정부의 정책에 적합하게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주관사와 운용사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채안펀드의 매입대상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지난 연말까지 운영 예정이었던 채안펀드를 올 연말까지 1년 더 연장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약 3조원 규모로 조성됐던 채안펀드는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직후 재가동돼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는 최대 20조원까지 규모가 늘어났다.

      당국의 결정으로 채안펀드가 올해까지 활약할 수 있게 됐지만, 벌써부터 시장에선 잡음이 나온다. 발행사와 주관사는 채안펀드의 매입대상 범위를 확대하지 않고 단순히 1년 연장 운영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지적한다. 현재 채안펀드는 공모채의 경우 신용등급 AA- 이상, 여전채의 경우 A+ 이상 채권만 매입할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당시 채안펀드가 회사채 시장 금리 안정화에 큰 도움을 줬던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지금은 레고랜드 사태 만큼 회사채 시장이 경색된 국면도 아닌데 굳이 대기업의 조달을 도와주고자 채안펀드를 연장 운영하는 게 정책 취지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채안펀드는 롯데쇼핑과 롯데지주, CJ ENM 등 대기업의 회사채를 매입했다. 특히 CJ ENM은 3년물에서 일부 미매각이 난 것을 추가 청약으로 수요를 확보할만큼 투자심리가 좋지 않았지만, 채안펀드가 절반 가량의 물량을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채안펀드는 호텔롯데 회사채에도 주문을 넣었지만, 실제 매입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채안펀드가 SK와 롯데, CJ 등 일부 대기업의 회사채만 매입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매입대상 범위를 A급까지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채안펀드 자금을 운용하는 운용사는 억울하단 입장이다. 일부 대기업만 지원해 준다는 지적은 해당 그룹의 계열사들이 회사채 발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구조적으로 특정 기업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채안펀드가 정책 자금으로서 시장의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이 큰 만큼, A급 이하의 상대적으로 부실한 기업에까지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취지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관사 입장에선 미매각이 발생할 경우 주관사가 물량을 떠안아야 하는 리스크가 있어 A급까지 매입 범위가 확대되길 바랄 것"이라며 "다만 운용사들은 정책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할 의무가 있어 우량 회사채를 선별적으로 매입하는 등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안펀드의 매입대상 범위 확대를 두고 잡음이 나오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 금융당국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당초 채안펀드를 10조원 증액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이것도 현재 논의가 답보중인 상태로 전해진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채안펀드의 매입 범위가 A+급까지 확대된 사례가 과거에 있긴 했지만 그것은 코로나의 특수성을 고려한 극히 한정된 조치였다"며 "현재 회사채 시장이 채안펀드의 역할을 확대할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