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리스크 최소 3년 더?…삼성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입력 2024.02.01 07:00
    [삼성 불법합병·회계부정 재판]④
    1심은 예고편…항소심, 상고심까지 앞으로 수년 더
    JY 리스크 해소에 이미 멈춰선 삼성 시계
    경영상 어려움의 근거는 "이재용 없는 삼성"
    해소되지 않는 오너리스크에 컨트롤타워 재건도 공회전 전망
    오너 결정 없어 M&A 공염불만 수년째…올해라고 다를까?
    합병 매출 60조?…삼성물산 기업가치는 반토막, 환원책은 낙제점
    기업가치 띄우기 목표도 의지도 '전무(全無)'
    • 이재용 리스크 최소 3년 더?…삼성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미지 크게보기

      <편집자주>

      6년 전 검찰의 삼성그룹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삼성 불법합병ㆍ회계부정 사건'이 조만간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재판기간 3년2개월ㆍ공판 106회ㆍ검찰 수사기록 19만 페이지, 그리고 수백명의 증인목록이란 기록을 남겼다.

      이번 재판 결과는 "이재용 회장의 삼성그룹 승계가 불법적으로 자행됐는가"에 대한 사법부의 공식적인 판단을 의미한다.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ㆍ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ㆍ김종중 전 미래전략실1팀장(사장) 등 삼성 전현직 최고임원들의 운명도 결정된다. 복잡하게 얽힌 재판의 전후사정과 이슈, 논란거리와 함의 등을 시리즈 기사로 정리한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1심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항소심과 상고심까지 지난한 법정공방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은 앞으로도 전사적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이 회장은 두 차례 구속됐고, 불법승계 재판에 한 해 100번이 넘도록 재판에 출석해야 했다. 

      그사이 삼성 전문 경영인들은 한결같이 '오너 부재' 상황을 위험요인으로 꼽아왔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지난 8년간 내부적으로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고 삼성의 시계는 멈춰서 있었다.

      현재 삼성 앞에는 너무도 많은 과제가 쌓여있다. 

      이미 그룹의 주축인 삼성전자의 위상은 주춤하고 있다. 이미 반도체 부문의 경쟁력은  예년같지 않은데, 세계 1위를 유지하던 스마트폰 출하량도 지난해 애플에 13년만에 처음으로 밀렸다. 삼성전자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잘버는 기업의 자리를 현대차그룹에 내줬는데 전자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를 대체할 혁신적인 '후자'의 모습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룹의 주축이 사업적으로 다시 선두를 탈환하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부터, 이재용 회장의 부재를 상수로 두고 무너진 컨트롤타워를 재건하는 일, 삼성전자 외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과제다.

       "이재용 없는 삼성" 위기감만 강조해야 하는 처지…컨트롤타워를 재건도 '미지수'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를 재건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오너리스크, 삼성의 사법리스크는 앞으로도 수 년 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이 회장의 결단만을 기다리던 과거의 모습을 청산해야한다.

      사실 이제껏 이재용 회장이 그룹의 전권(全權)을 쥔 현재의 상황을 삼성그룹은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전문 경영인들은 오너가 없는 상황에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이를 통해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자리잡지 못했음이 사실상 증명됐다. 최근만 보더라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주장하던 삼성그룹은 이재용 회장의 선고를 앞두고 임원급 인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달 말 선고 이후 오너 거취에 대한 불확실성을 떨어버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마저도 미뤄지게 됐다.

      현재로선 1심 선고가 난 이후에도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이 회장의 경영활동에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재용 회장을 대체할 무게감 있는 인물과 조직과 시스템이 등장해야 하지만 이런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재용 회장의 복심조직 미래전략실이 해체한 이후 신설된 계열사 태스크포스(TF)에 기대감이 실렸지만, 규모와 역할, 위상면에서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가 흔들리기 시작한 상황은 위기감을 더욱 고조하고 있다. 

      업황의 부침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미래를 기대할 만한 요인들이 너무도 부족하다. 엔비디아·SK하이닉스·TSMC가 이끄는 이른바 AI반도체 삼각편대엔 삼성전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실정이고, 일부 사업군에선 과거 경쟁사로 여기지 않았던 SK하이닉스에도 밀린다.

      사실 오너리스크를 지우기 위해 '이재용 회장 부재의 위기론'이 계속 강조돼야 한다는 삼성그룹의 배경을 비쳐본다면, 당분간 이 회장을 대체할 그룹의 컨트롤타워 재건 노력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도 있다.

      M&A 공염불은 도대체 몇년째?…오너 결단 없이 가능할까

      기술혁신, 시장 선도의 가장 빠른 길은 역시 M&A이다. 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삼성전자는 매년 대규모 M&A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오너의 경영활동 제약, 불확실한 대외 환경 등 삼성전자가 대규모 M&A를 추진하지 못하는 수십가지 이유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단을 내릴 오너가 없다’는 말은 역시 더 이상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많은 투자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성장동력에 대한 과감한 M&A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대규모 M&A를 계획중이다"는 말은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단골 레퍼토리(repertory)이다. 벌써 3년째 연속해서 국제가전박람회(CES)서 M&A 계획을 반복중이다. NXP·엔비디아·ASML 등 삼성전자가 사들일 수 있는 매물은 매년 새롭게 거론되고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키웠지만 실제로 성사된 사례는 없었다.

      최근 몇 년 전만 해도 반도체가 승승장구하며 쌓아둔 대규모 현금으로 그나마 M&A 기대감을 키울 여지가 있었지만, 이젠 사업의 부침 속 이젠 대규모 M&A를 위한 현금동원력도 예년과 같지 않다.

      전문 경영인들의 공염불이 수년째 반복하자 투자자들은 그룹의 M&A 전략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자칫 이 회장 리스크를 방패삼아 전문경영인들이 고의적으로 실기(失期)했다면,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해소될 때까지 같은 모습이 반복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그나마 전자에서는 최근 그룹 차원의 다양한 사업을 발굴하겠다며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는데, 미래먹거리 전담 조직을 신설한 것은 지난 2006년 고(故) 이건희 회장의 신사업추진팀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신사업을 전담하는 조직이 없어서 M&A를 추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미전실을 거쳐 사업지원TF가 M&A의 핵심이 됐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현호 부회장을 비롯한 이재용 회장의 복심들은 여전히 그룹의 중추로 자리잡고 있다. 앞으론 전영현 부회장이 이끄는 새로운 조직 '미래사업기획단'과 사업지원TF의 역할 정립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신사업 추진, M&A의 결실 등 조직의 성과와는 무관한 전문경영인 인사가 진행된 점을 비쳐본다면 그룹의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대규모 M&A를 추진하는 것이 삼성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지도 모른단 의심도 든다.

      "삼성물산 주가는 언제 오릅니까?"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은 그룹을 사법리스크에 휘말리게 한 그 대상이지만, 합병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리스크에서 다소 벗어나고, 주주들의 불만을 손쉽게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안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일이다.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주된 타깃이 된만큼 삼성물산 자체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사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결과는 자명하다. 기업가치는 10년전과 비교해 반토막났고 목표했던 매출 60조원은 근처도 가지 못했다. '4조원'의 영업이익 목표는 단 한 해도 달성하지 못했다. 오너리스크에 휩싸여 있는 동안 건설· 상사·리조트·패션 등 지난 8년간 사업의 성장은 멈추거나 후퇴했다.

      불필요한 사업을 팔고, 주주환원을 강화하라는 주주들의 주문은 현재도 빗발치고 있다. 세계 제1의 반도체 회사 삼성전자의 대주주이자, 글로벌 수위권 바이오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굴욕적인 상황이 끊임없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해 헤지펀드의 서한이 빗발칠 당시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장은 "(삼성물산과 관련한 헤지펀드의 입장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내용을 알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의견을 전달하거나 권고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삼성그룹이 외부의 시선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단적인 예가 됐다.

      역시 관건은 주가다. 전사적인 역량을 쏟아부어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극대화한다면 외부의 공세는 자연스레 잦아들게된다. 경영진들이 이 같은 상황을 모르진 않겠지만 위기감에 걸맞는 노력이 사실상 전무했는데 앞으론 사업적 성과를 보여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그룹 지주사들이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파격적인 배당과 환원책을 펼치고 있다. 사실 삼성물산은 재계 수위권 기업들에 역행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삼성물산의 배당은 100% 계열사 배당, 사실상 삼성전자 배당에 의존하고 있는데 사실 삼성전자가 부진하자 그 피해는 고스란히 물산 주주들의 몫이 됐다. 자체 사업으로 기관과 개인,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은 이미 상수가 됐다. 

      주주들에 대한 신뢰회복도 중요한 과제다. 잘 알려졌다시피 삼성물산을 상대로 수년 째 소송을 이어가는 엘리엇에는 비밀합의를 통해 수백억을 물어줬고 또 소송을 당해 법정다툼을 진행 중이다. 낮은 주가, 미미한 주주환원 등을 감수하고 수년째 자리를 지키는 일반주주들과는 다른 대우에,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최근 외부 투자자들의 공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주가, 사업적 기대감, 주주환원 등 어느 하나 눈여겨볼만한 요소가 없는 상황에서 경영진들이 어떤 특단의 조치를 내릴지 지켜봐야 한다.

      이재용 회장의 완벽한(?) 복귀와 무관하게 삼성물산엔 현안이 쌓여있다.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 병렬로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처리 문제, 삼성바이오 등 계열사 지분 일원화 등 풀어내지 못한 숙제들이 아직 남아있다. 총선이 끝나고 정치권에서 이제껏 풀어내지 못한 숙제들을 해결한다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선 주주들의 동의와 지지가 필수적인데, 현재의 삼성물산 주주들이 과연 이재용 회장 편에 설 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