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고민 이어질 SK이노베이션, 가장 확실한 카드는 'SK엔무브'
입력 2024.02.07 07:00
    SK그룹 긴축 모드 전환…중간지주도 예외 아냐
    SK이노도 SK온 투자 등 중장기 자금 조달 필요
    인프라성 자산 외에 엔무브 활용 가능성 주목
    2021년 소수지분 매각 후 실적 개선세 뚜렷해
    잔여 지분 내놓는다면 대규모 실탄 마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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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의 정유·화학·에너지 분야 중간지주사이자 캐시카우다. 지난 수년간은 그룹의 논카본(친환경) 전략이 강화함에 따라 변화의 필요성도 커졌다. SK온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배터리 관련 사업을 빠르게 키워간 것이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이 미래 구상을 구체화하는 사이 국내외 정세는 크게 달라졌다. 유동성에 힘입었던 SK그룹의 파이낸셜 스토리는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해졌고, 장밋빛 미래를 바탕으로 끌어온 자금들은 그룹의 재무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SK㈜ 포함 전 그룹이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SK그룹 중간 지주사들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재무부담을 줄이고 필요 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핵심 사업이 아니고, 내재화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는 사업은 모두 팔거나 유동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낙관론자보다 현실론자가 많아진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이 화급을 다퉈 재무 부담을 줄여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호황기만 못하지만 현금흐름은 창출되고 있고 정유·화학 업황도 언젠가는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SK온의 배터리 사업에 계속 돈을 넣어야 한다는 점은 두고두고 부담될 수밖에 없다.

      이차전지는 가장 유망한 산업 중 하나로 꼽혔지만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글로벌 대장주인 테슬라조차 실적 부진과 불확실한 전망에 휘청이고 있다. 국내만 해도 보조금이 줄며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다. 전세계적으로 전방 산업이 부진하니 배터리, 소재 등 기업까지 고전을 면키 어렵다.

      전기차 제조사와 배터리 기업이 생존을 건 ‘치킨게임’ 에 접어든 터라 투자를 멈출 수는 없다. SK온은 경쟁사와 분쟁, 투자 유치 난항, 미국 보조금 확보 지연 등으로 출발점이 뒤에 있었기 때문에 더 급하다. 이익이 본격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10조원 안팎의 투자금을 대는 게 녹록지 않다. 올해 하반기 일시적으로 자금 부족 현상이 벌어질 것이란 예상도 있다.

      SK온은 재무적투자자(FI)도 신경을 써야 한다. 회사는 작년까지 주요 사모펀드(PEF)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이후 4~6년 안에 내부수익률(IRR) 7.5% 이상으로 상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평가한 기업가치가 22조원으로 상장 때는 30조원 안팎을 인정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상황만 봐서는 장밋빛 전망을 펴기 쉽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장기적으로 SK온 투자금에, SK온 FI 회수 자금까지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작년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는데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그룹 수뇌부가 시장에 부담을 주는 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 증자 카드는 조심스럽다. 결국 있는 것 중에서 활용 가능성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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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에너지에서 인적분할한 탱크터미널 사업(SK탱크터미털)을 활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의 NCC(Naphtha Cracking Center)도 작년부터 잠재 매물로 꼽히고 있다. 시장에 인프라 투자 자금이 많다는 점에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로선 이런 자산이 고부가가치 인프라로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인천석유화학 등 비상장 완전자회사의 활용 가치도 불투명하다. 주력 캐시카우긴 하지만 지분을 헐어 투자자를 유치할 만큼 매력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전처럼 SK그룹의 이름만 보고 투자할 곳도 많지 않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상장 후 주가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사주를 받아 고생한 직원들을 감안하면 이 지분도 활용하기 부담된다.

      SK엔무브(전 SK루브리컨츠)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SK엔무브 지분 40%를 1조1000억원을 받고 IMM PE에 팔았다. 5년 안에 IRR 5.7% 이상으로 상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회사는 당시 배터리 설비 투자 및 분쟁 합의금으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SK엔무브는 기유(Base Oil)와 윤활유(Lubricant)를 제조한다. 내연기관차와 함께 저물어갈 것이란 우려가 있었는데 실적은 개선세다. 엔진오일에 이어 전력 효율화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2020년 연결기준 매출 2조6879억원, 영업이익 2622억원을 거뒀는데 2022년엔 6조2413억원과 1조712억원이 됐다. 작년 실적도 전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PEF 주주는 쏠쏠한 배당 효과를 누리고 있다.

      시장이 먼저 SK엔무브 활용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에 돈이 필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SK엔무브가 가장 환금성이 높은 카드 중 하나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과거 소수지분을 팔 때에도 일부 대형 PEF는 경영권 인수 의지를 보인 바 있다. 회사가 SK엔무브 잔여 지분을 내놓는다면 크게 개선된 실적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수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SK엔무브를 통으로 내놓을 수도 있다고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좋은 자산이니 거래가 진행된다면 투자에 참여할 기회를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규 신임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전까지 SK엔무브를 이끌어 회사의 성장 비전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룹 전체로는 SK엔무브가 반드시 안에 품고 있어야 할 사업인지 애매하다. 이 정도로 현금흐름이 잘 창출되는 회사는 상장보다 매각하는 편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도 “SK엔무브 잔여 지분 매각이 진행된다면 과거 경영권에 관심을 가졌던 PEF가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SK그룹 전반의 기조가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바뀌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허리띠를 조이는 현 시점에선 SK온, SK하이닉스 등 핵심 사업 외엔 ‘성역이 없는’ 분위기다. 반면 십 수년 전부터 추진해 온 논카본 전략은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당장 자금을 마련하는 것과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두고 가치를 저울질할 가능성도 있다. 공장 설비를 물리적으로 떼어 내고, 해외 합작사(JV) 파트너들의 동의를 받는 것도 매각 시 변수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 측은 "SK엔무브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설이 나오지만 IPO나 매각 등 현재 추진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