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위기대응' 요구에 충당금 부담 커진 신탁사들…이미 손배소송 휘말리기도
입력 2024.02.16 07:00
    책준형 비중, 신한 > 신영 > 코람코 > 무궁화順
    신탁사, 공정률 미달 시 추가 자금 투입 필요
    고유자금 부족한 신탁사, 부도 처리 후 소송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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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위험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책임준공형 관리형 개발신탁(책준형)의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신탁사들은 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유동성 위기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선제적으로 리스크 대응에 나선 신탁사가 있는가 하면 이미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리는 신탁사도 등장하고 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1일 14개 부동산 신탁사의 대표이사(CEO)와 간담회를 개최해 선제적인 건전성 및 유동성 관리를 당부했다. 함 부원장은 신탁사의 건전성 악화 리스크가 대주단·시공사·수분양자·여타 사업장으로 연쇄적인 리스크가 전이할 가능성이 있고, 나아가 부동산 시장 전반의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간담회의 주요 내용은 크게 ▲건전성 및 유동성 관리 ▲부실사업장 정상화 협조 ▲내부통제 강화 ▲금감원의 사업장 점검 등이다. 신탁사는 차입형 사업장의 경우 ▲사업성 없는 사업장의 신탁계정대 예상손실 100% 인식 및 신속 정리 ▲토지 공매 진행 시 담보가치 보수적 산정, 책준형 사업장의 경우 ▲사업장별 공정관리 강화 ▲사업비 배상 상황을 가정한 충분한 유동성 대응여력 확보 등의 관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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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신탁사는 대손충당금 설정률은 약 16%로 타 금융업권 대비 높지만, 신탁계정대 잔액이 약 4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으로 증가한 상황이다. 신탁계정대는 분양성과·공정경과 등 사업진행 과정에서 추가로 신탁계정대가 발생할 수 있는 우발채무의 성격을 갖고 있다. 분양경기가 악화하면 신탁계정대 잔액과 대손비용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

      차입형 사업장의 경우 분양성과가 미흡한 경우 신탁계정대가 추가로 발생(신탁사의 자금투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신용평가는 작년 9월 말 기준 분양성과가 우려되는 사업장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금융감독원의 권고에 따라 신탁사는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적립할 전망이다.

      책준형 사업장의 경우 신탁계정대의 부실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계획 대비 실제 공정률이 미달하는 사업장 수가 2022년 이후 많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준형은 일정 기한 내 준공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차입형과 달리 준공위험만을 책임진다. 그러나 ▲계획 대비 공정이 지연되는 경우 ▲저조한 분양성과, 공정지연, 공사비 상승 등으로 사업성이 저하되는 경우 신탁사는 신탁계정대를 통해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책준형의 위험성은 작년 초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한국신용평가는 작년 2월 '시공사 부실위험이 부동산신탁사로 전이될 경우 위험 수준 및 대응력' 리포트를 통해 ▲보유 자기자본 대비 크게 노출된 사업규모 ▲계획 대비 지연되는 공정률 ▲개발사업 참여 시공사의 열위한 시공능력 ▲저조한 분양 성과 ▲개발 중인 부동산 유형 고려 시, 높은 미분양 위험 등을 핵심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당시 한국신용평가는 "위기 상황에서의 위험은 책준형 상품이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자기자본 대비 노출된 사업규모가 크고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며, 해당 상품에 대한 위험사례 및 위험수준에 대한 경험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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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에 따르면 작년 토지신탁 수주액 중 책준형 비중이 높은 신탁사는 ▲신한자산신탁(40.7%) ▲신영부동산신탁(38.9%) ▲코람코자산신탁(22%) ▲무궁화신탁(19.7%) 등이다. 이들은 신탁사 전체 평균(18.9%)보다 책준형 비중이 높았다.

      단순히 책준형 비중이 높다고 건전성이 부족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수주했다고 당장 대손충당금을 쌓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신탁사는 수주한 사업장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때 대손충당금을 쌓는다. 이후 실제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대손충당금은 손실로 잡힌다. 아울러 최근 수주한 사업장은 일반적으로 단기간 내에 리스크가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책준형에서 발생하는 신탁계정대는 금융기관의 본PF 대비 상환순위가 후순위다. 또 책준형은 비주거 개발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분양성과가 차입형보다 떨어진다. 회수 불확실성이 높아 대손충당금 부담이 차입형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평가는 "책준형은 신탁사가 기한 내 책임준공을 미이행하는 경우, 금융기관에 책임져야 하는 손해배상 범위에 대해 계약당사자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신탁사의 배상책임이 예상보다 크게 결정되는 경우, 신탁사의 유동성 위험이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책준형 비중이 높은 일부 신탁사는 신탁계정대를 투입할 고유자금이 부족해 미완공 사업장을 부도처리 한 경우도 있다고 전해진다. 이에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KB부동산신탁은 작년부터 단기차입금 한도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5월과 7월, 두차례에 걸쳐 단기차입금 한도를 3200억원까지 늘렸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도를 9000억원까지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차입형 토지신탁 사업장뿐 아니라 책준형 사업장에서 부실 위험이 커지며 추가 사업비 투입이 이뤄지는 영향이다.

      다만, 아직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 추후 상세안을 신탁사와 검토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신탁계정대와 충당금을 얼마나 많이 쌓았냐 만으로는 어느 신탁사가 리스크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실사를 하지 않는 이상 각 사끼리도 서로 어떤 상황인지 자세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