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호재에 금융주 파는 사모펀드들…'일장춘몽' 그친 전략적 협업관계?
입력 2024.02.19 07:00
    어피너티·칼라일, 주요 금융지주 지분 매각 연이어
    전략적 파트너 관계 염두에 뒀지만, 실질사례 미미
    사외이사 추천권 있지만 사실상 이사회 장악 어려워
    장기적 파트너십보단 단기 차익실현으로 방향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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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글로벌 사모펀드(PE)와 금융지주의 ‘밀월관계’가 갈수록 희미해지는 모양새다. 올초부터 이어진 금융주 오름세에 일부 지분을 매도하기 시작했고, 투자 당시 맺어뒀던 전략적 파트너십은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다. 

      차익실현이 최우선 과제인 사모펀드 특성상 장기적 협업관계를 꾀하기 어려운 데다 금융지주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4일 글로벌 사모펀드(PE) 칼라일은 킹스먼인베스트먼트를 통해 KB금융 지분 1.2%를 3260억원에 매도했다. 지난 2020년 KB금융이 자사주를 활용해 발행한 2400억원 규모 교환사채(EB)가 주식으로 전환된 물량이다. 올해 초 락업이 풀리면서 시장에 팔아 차익 실현을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국내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너티) 역시 신한금융지주 지분 약 4000억원 규모를 매도하면서 남은 지분은 2% 이하로 낮아진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초부터 정부 정책 예고에 힘입어 ‘만년 저평가주’로 꼽힌 금융주들이 일제히 오름세를 보이자 수익실현에 바쁜 모양새다. 정부는 국내 증시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이달 안에 기업 밸류업 정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여기에 행동주의펀드까지 가세하며 금융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증시 종목들이 단기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에선 수익 실현이 가장 첫번째 목표인 사모펀드로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지분 매도는 당연한 결정이라는 평가다. 

      앞서 신한지주 지분을 매도한 어피너티는 다음 펀드 조성을 위해선 현재 펀드의 순조로운 청산이 필요한 상태다. 최근 어피너티 주요 한국 멤버들이 잇따라 퇴사한 데 따라 앞으로 남은 펀딩을 위해선 현재 포트폴리오의 내부 수익률(IRR) 성과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신한지주에 별다른 통보 없이 지분매각을 완료한 점도 이 같은 배경이 한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칼라일 역시 금번 금융주 급등 사태로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라고 판단했다는 평가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장기적 우상향보다는 단기에 그칠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특히 KB금융은 올해 홍콩ELS(주가연계증권)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가 불확실성이 잔존한 상황에서 일부 지분을 매도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의견이다.

      그간 PE들이 금융지주 지분 매입을 꾀하면서 장기적 협업관계를 염두에 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분 매입 초기에는 사외이사 추천권 등 경영 참여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어피너티는 지난 2020년 신한금융 지주 지분을 매입하면서 사외이사 추천권을 얻었고, 외국계 로펌 변호사 출신인 이용국 사외이사를 추천했다. 이외에 IMMPE에서 추천했던 이윤재 이사와 곽수근 이사, 베어링PEA에서 추천한 최재붕 이사 등이 있다. 이윤재 이사는 올해를 끝으로 사임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추천한 사외이사가 몇 명 있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이사회 장악을 하기도 어렵고 또 금융지주의 경우 이사회에서 부행장 등 실무진들을 압박할 수 있는 사례도 많지 않다”라며 “기본적으로 은행은 출자를 ‘해준다’는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PE들이 투자자로 들어와있다고 해서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어피너티와 칼라일, IMM프라이빗에쿼티(IMMPE), 베어링PEA 등이 금융지주 지분을 사들인 이후 금융지주와 이렇다 할 협업사례는 많지 않다. 지난 2022년 칼라일의 뉴욕 JFK공항 재개발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KB국민은행이 참여한 것과 메디트 투자건에 국민은행이 인수금융을 주선한 것 정도다. 

      굳이 지분적 협력관계 없이도 출자나 인수금융 딜은 충분히 따올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또 칼라일이나 어피너티 등 글로벌 PE들은 국내 투자 건이 많지 않아 금융사들의 참여 기회도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한 PE업계 관계자는 “어피너티는 신한금융 투자 당시와 비교해 현재는 아성이 줄었고 칼라일은 지난 수년간 국내에서 딜 성사 건수가 손에 꼽을 정도”라며 “글로벌 딜들에 몇 건 참여했다는 점 외에는 사실상 국내 은행이 이들과 협업한 사례가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