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 논란에서 드러난 삼성바이오의 존재감…명확해진 삼성 '후자'의 서열정리
입력 2024.02.20 07:00
    취재노트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바이오의 시가총액은 60조원.으로 삼성전자에 이어 두번째로 규모가 큰 계열사이다. 아울러 삼성바이오는 이재용 회장의 불법승계 의혹에서 '무죄'를 입증할 핵심적인 계열사로 꼽히는데 이로 인해 그룹 지배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소위 삼성의 '후자'에서 '전자'에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인데 계열사의 서열정리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엔지니어링의 도급 논란은 현재 삼성그룹의 상황을 잘 나타낸 사례가 됐다. 삼성바이오는 인천 송도에 총 공사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제 5공장을 건립중이다. 시공사는 1~4공장 건립을 담당한 삼성엔지니어링이다. 착공은 이미 2022년인데, 준공을 불과 1년여 앞둔 현재까지 계약서조차 쓰지 않은 상황이 드러났다. 공정률은 40%로 벌써 수 천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삼성엔지니어링이 자체 조달했다. 그룹 계열사간 거래가 아니라 시공을 외부 건설사가 맡았다면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공정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보도 이후 "양사가 빠른 시일 내 계약서 작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태껏 삼성엔지니어링과 공사비 이견을 좁히지 못했는데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지켜봐야한다.

      삼성그룹의 계열 공사는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이 도맡아왔다. 전자·SDI·전기·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와 바이오 계열사 모두 공정 과정에서 기밀이 유출할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엔지니어링 모두 계열 공사 덕분에 안정적인 수주 실적을 올리고는 있지만 높은 수익을 목표로한 수주라고 보긴 어렵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삼성바이오의 1~4공장을 시공한 삼성엔지니어링이 해당 프로젝트로 이익을 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돈을 받지 못하고 지어준 5공장 건립이 삼성엔지니어링 입장에서 '투자'의 개념으로 보기도 어렵다. 삼성바이오 측에서 수 천억원의 자금에 대한 이자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이상 삼성엔지니어링은 해당 공사에 사실상 손실 구간에 들어와 있다는 평가다.

      삼성바이오의 도급 논란이 불거지면서 그룹 임직원들 사이에선 "전자·전기·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들의 도급 계약 역시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계열 공사에서도 경쟁입찰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한 해 이익이 곧바로 임직원 성과급으로 연동하는 삼성그룹의 특성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올해 최고 수준의 성과급(OPI 50%)을 지급하겠다는 계획도 그룹 임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소위 그룹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상대로 '을(乙)'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삼성엔지니어링이 공사대금을 받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그룹내 분위기도 감지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은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 탈피와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여주는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공교롭게도 이재용 회장의 1차 선고공판 직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설립 이래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기며 명실상부한 국내 1위 바이오기업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만약 5공장의 계약금과 선수금, 기성금을 모두 지급했다면 어떤 성적표를 받았을지 예상이 가능하다.

      이 경우 삼성바이오와 삼성엔지니어링 임직원들의 성과급, 주주와 투자자들을 향한 환원책도 달라졌을 것이다. 삼성바이오는 내년부터 잉여현금흐름(FCF)의 10% 내외를 현금배당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배당은 2012년 이후 멈췄는데, 회사는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 영업이익을 기록하고도 순현금이 감소하며 배당을 비롯한 주주환원책 발표를 또 유보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수 조원대의 안정적인 발주처를 보유하고 있고 실제로 수주와 공사가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배당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단점에서 삼성그룹 건설 계열사의 구조적인 문제를 되짚어봐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부회장급 인사를 배출한 계열사이다. 구조조정의 전문가로 불리는 최성안 부회장이 오랜기간 회사를 이끌었고 2022년 말 승진하며 삼성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 부회장에 대한 평판은 엇갈리지만 적어도 삼성그룹 건설 계열사 내에선 무게감 있는 인사로 평가받는다.

      현재 삼성엔지니어링의 대표이사는 최 부회장의 후임인 남궁홍 대표이사가 맡고 있는데 그룹 내에서 적극적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현재 상황만 본다면 삼성엔지니어링은 본연의 사업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 시급해보이는데 사명변경 같이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부수적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단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엔 계열사간 조율은 미래전략실 역할이었다. 컨트롤타워가 사라진 삼성그룹엔 이번 도급 논란과 같은 사안을 해결할 인사도 조직도 시스템도 보이지 않는다. 사업지원TF는 전사의 이슈를 총괄하지만 전면에 나서기 어렵다. 바이오사업 국한한 바이오TF가 계열사 간 논란에 깊숙이 관여하기 애매하다. 그렇다고 물산·엔지니어링·중공업 등이 주축인 EPC경쟁력강화TF가 계열사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잘 다듬어진 성과 발표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사업적으로만 본다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건 사실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증대에도 맞닿아 있다. 그룹 차원의 유무형적 지원이 지속할 것이란 의미와도 같다. 이 과정에서 비교적 소외(?)당하는 계열사들이 속출할 것이란 불안감도 감지된다. 그 여파는 비단 임직원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미칠 수 있단 점을 무시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