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아젠다' 된 ELS 사태...선제 배상 줄다리기하는 당국ㆍ은행
입력 2024.02.20 07:00
    총선 맞물린 ELS 사태, 시간 지날수록 정계 압박↑
    16일 2차 조사인데...선제배상 꺼내든 이복현 원장
    은행은 부담 느끼면서도 관망세…선제배상은 '배임'
    정치권 압박에 이 원장 '무리수' 던졌단 평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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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의원실로 ELS 사태를 해결해 달라는 민원만 하루에 수백 통씩 온다. 4월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에서 (유권자인) 피해자들을 두고 더 많은 말이 나올 것이다."(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손실이 본격화하면서,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판매사인 은행과 감독권한을 가진 금융감독원은 아직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사태 수습 촉구에 가세하면서, ELS 사태가 '총선 아젠다'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이 가운데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은행의 '선제적 배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은행은 책임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선제배상은 배임 이슈가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선제 배상을 두고 당국과 은행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총선 일정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사태 해결 압박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6일부터 ELS 2차 검사에 나섰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8일부터 이달 2일까지 ELS 주요 판매사인 5개 은행과 7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약 3주간 1차 현장검사를 진행한 바 있다. 

      금감원이 아직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복현 원장은 은행권의 자율 선제배상을 압박하고 나섰다. 

      지난 5일, 이 원장은 '2024년 금감원 업무계획 브리핑' 자리에서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인 자율 배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최소 50%로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불법이 아니면 금융사가 아무런 책임을 안 질 것이고 결국 소비자가 법원을 통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은행 입장에선 선제배상을 선뜻 받아들이긴 힘들단 목소리가 많다. 절차상 불완전판매 혐의가 결론나지 않은 상태에서 배상을 추진하면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와 채권자의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해야하는 만큼, 은행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도 힘들다.

      이복현 원장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정치권의 조속한 해결 압박에 부담을 느낀 이 원장이 '무리수' 발언을 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금융분쟁의 배상절차는 금감원이 검사를 완료한 후 불완전판매 혐의가 입증되면 금융사에 제재 가 통보된다. 이후 배상기준안이 마련되면 금융사와 소비자 간 분쟁조정 합의를 거쳐 최종 배상이 이뤄진다. 이 원장은 절차상 가장 첫 단추인 금감원 검사 완료도 전에 최종 단계인 배상을 요구한 셈이다.

      시간 상으로도 선제배상이 불가능하단 의견도 있다. 당국은 현재 빠르면 이달 말, 늦어도 내달 초까지는 검사 결과를 내놓는단 방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이 지금 당장 선제배상을 자체적으로 논의해 진행한다 해도, 금감원이 검사 결과를 내놓기 전까지 배상이 이뤄지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선제배상 논의 과정에서 은행이 금감원의 제재 통보를 받게 되면, 실제 배상까지 시간이 더 소요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모를 리 없는 금감원이 선제배상 카드를 언급한 데는 ELS 사태가 '총선 아젠다'화한 탓이란 평가다.

      한 국회 관계자는 "ELS 사태는 사실상 총선 아젠다가 됐고, 진일보한 해결책이 빠른 시일 내 제시되지 않는다면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압박 수위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그렇다보니 선제배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금감원이 '보여주기식'으로라도 은행을 쥐어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은 금감원의 선제배상 압박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일단은 곧 나올 검사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이른 시일 내에 결과를 발표한다고 밝힌 만큼 일단은 선제배상은 고려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당국의 지침이 내려오면 이에 맞춰 선임해둔 로펌 등과 협의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선제배상을 두고 이어지는 당국과 은행의 줄다리기는 당국이 결과를 발표한 뒤에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은행을 제외한 4대 시중은행은 ELS 판매를 잠정 중단하고 당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2차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금융당국은 현재 과거에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를 손실에서 공제하고, 온라인과 증권사를 통해 가입한 일부 투자자는 배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 관계자는 "16일부터 진행된 2차 검사는 구정 연휴로 인해 명목상으로 차수를 나눈 것이지 1차 검사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면 된다"며 "조속히 검사를 마무리해 늦어도 내달 초까진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