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이끌 투자사업 조정, 그룹 내 헤게모니 다툼 이어질까
입력 2024.02.21 07:00
    긴축 기조 SK그룹, SK㈜ 주도 사업 조정 예고
    계열사 협조 필요하지만 각각 처한 사정 달라
    SK㈜-기존 투자 담당 계열사·임원 갈등 우려
    최창원 의장, '얽힌 것 없어' 중책 맡겼다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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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은 올해 본격적인 긴축 기조로 돌아섰다. 그간 그룹의 정점에서 주력 먹거리 투자를 관장하던 SK㈜가 이제는 다시 사업 정리의 키를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 위기론에 대한 시장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계열사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잡음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SK㈜와 그룹의 전략에 따라 계열사들도 함께 지갑을 열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입장이 모호해졌다. 주요 투자를 기안하고 집행했던 인사들에 대한 책임론이 나올 수 있다. SK㈜는 실질적인 성과를 독려하겠지만 주력 사업을 내놓아야 할 수 있는 계열사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SK그룹은 가장 적극적으로 자본시장을 활용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며 금융공학적 확장 정책을 폈으나 글로벌 경제 환경이 급변하면서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다. 십 수년에 걸친 신산업(논카본, 바이오, 신소재 등) 육성 및 사양산업(화학, 에너지) 정리 효과가 크지 않았다. 과도기를 넘기 위해 우량 자산들을 팔고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인 것도 궁극적으론 독이 됐다.

      SK그룹은 작년말 정기인사에서 이런 위기감을 드러냈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SK수펙스추구위원회(이하 수펙스) 의장으로 부임해 전사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시장의 신뢰를 받는 최 부회장은 유동성 잔치를 벌였던 SK그룹의 상황을 바꿀 적임자라는 평가가 따랐다. 전임 조대식 의장은 SK㈜ 부회장으로서 역할에 집중한다.

      수펙스의 투자 기능은 SK㈜로 일원화했다. 지금까지 SK그룹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는 SK㈜와 수펙스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계열사도 함께 힘을 싣는 '따로 또 같이'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앞으로는 투자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투자는 물론 투자회수, 나아가 사업 구조조정도 SK㈜ 주도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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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는 2017년 투자형 지주회사를 표방한 후 첨단소재·바이오·그린·디지털 등 영역의 투자를 집행하며 재무부담이 커졌다. 이달 한국신용평가는 SK㈜의 별도기준 차입금의존도가 40%를 초과할 경우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커진다고 제시했다. 회사의 차입금의존도는 2022년 39.7%, 작년 9월말 39.1%를 기록했다.

      SK㈜는 주주들도 달래야 한다. 배당 및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까지 자금 소요가 큰데, 자회사들로부터 자금을 끌어 올리긴 부담스러워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높지 않은 상황이라 사업 조정이나 재무구조 개선, 주가 상승 등 성과를 내는 것이 시급하다. 최근엔 해외 헤지펀드들도 SK㈜의 재무상황과 더불어 오너 일가의 개인사까지 관심을 갖는 분위기다.

      SK그룹에선 이미 사업 조정을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SK㈜의 행보가 특히 발 빠르다. 올해 들어 자산유동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지난 수년간 투자 성과를 점검해 옥석 가리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SK㈜에선 100% 자회사 SK스페셜티의 자산을 활용하거나, 기존에 벌인 사업을 축소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SK그룹 계열사들도 그룹 정책 방향과 수뇌부의 의지에 따라 이런 움직임을 본격화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 계열사들의 사정과 처지가 제각각인 만큼 얼마나 일사분란하게 실행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SK그룹은 대대적인 사업 조정 가능성에 나설 것이란 인식이 부담스러울 상황이다. 그룹 상황을 뻔히 아는 시장은 이미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투자 기회를 노리고 있다. 계열사들은 말 그대로 '군살빼기' 성격의 비주력 자산을 정리하길 바라지만 잠재 투자자들은 돈 되는 알짜 사업이나 회사를 원한다. 회사와 시장 사이 시각차가 크다는 것이다.

      SK케미칼은 최근 파마 사업(제약사업부) 매각 계획을 백지화했다. 계약 체결만 남은 상황이었지만 현상 유지를 택했다. 다른 주력 사업이 부진하고 주주들의 시선도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현금흐름이 나오는 사업부를 정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평가다. 반대로는 다른 계열사에서 'SK케미칼은 안 팔았는데 왜 우리는 알짜 사업을 내놔야 하나'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다.

      지금까지 SK그룹에선 SK㈜와 수펙스의 요직을 거쳐 계열사로 가능 경우가 많았다. SK㈜가 주도하는 사업 조정 대상에는 각 계열사 수장들의 과거 공적과 현재의 먹거리가 포함될 수 있다. 일부 계열사에선 전임 수장의 흔적을 지우는 데 집중하거나, 별도의 구조조정 성격 조직을 꾸리고 있다. 주요 임원 중 과거 주요 투자에 관여했던 인사는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룹 수뇌부와 계열사 경영진들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SK그룹의 동남아시아 투자가 대표적이다. 동남아 투자 열기에 힘입어 현지 법인까지 만들어 여러 투자를 단행했다. 수펙스가 주도하고 SK㈜, SK이노베이션, SK E&S 등이 투자금을 댔는데 현재까지 투자 성적표는 신통찮다. 전임 수펙스 의장인 조대식 부회장이나 SK㈜의 투자 관리를 총괄했던 장동현 부회장 입장에선 다소 무색한 상황이다.

      최태원 회장이 최창원 의장을 전면에 내세운 데는 기존 경영진들과 얽힌 것이 없기 때문이란 평가도 있다. 결과론적이지만 IB 배경의 임원들이 득세한 후 SK그룹의 위기가 현실화한 것이 사실이고, 그런 인사들의 힘을 누르는 데는 최창원 의장이 적임자라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창원 부회장은 그동안 주요 투자 과정에서 실무 임원들과 얽힌 것이 없고, 오너 일가 일원이라는 명분과 힘도 있기 때문에 최태원 회장이 전면에 등판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