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정부가 불 지핀 주주환원 바람…이전보단 전운 감도는 주총 시즌
입력 2024.02.22 07:00
    5곳 연합군 주주환원 요구 받는 삼성물산
    총선 앞둔 정부, 低PBR 기업 밸류업 시동
    '주주환원' 바람 불자 부담 커진 기업들
    정부 입김에 포스코·KT&G 수장도 주총서 확정
    정부 대리인 국민연금 칼 끝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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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올해 주주총회 시즌엔 '주주환원' 바람이 거세게 불 전망이다. 정부는 저(低)PBR 기업들을 대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Valueup Program) 가동을 예고했는데 한국 기업과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정부까지 나서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것을 주문하면서 외국계 투자자와 기관·개인투자자 모두 기업들의 주주환원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주주환원에 미흡했던 기업들은 투자자들의 거센 요구를 받을 개연성이 커졌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기업들은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은 현재 헤지펀드 5곳이 뭉친 연합군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헤지펀드 연합은 총 1조2400억원(자사주 매입 5000억원, 배당 7400억원)의 환원책을 요구했다. 배당안만 보더라도 삼성물산의 기존 계획(총 4170억원)과는 큰 차이를 나타낸다.

      주총 표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삼성물산은 주주들에게 "대규모 현금유출이 이뤄진다면 회사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체 투자재원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주총에서 회사측 안건에 표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삼성그룹이 "주주제안에 반대할 것"을 권유할 정도로 외부 공세에 맞서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은 2015년 엘리엇과의 표대결 이후 처음이다.

      헤지펀드 연합의 합산 지분율은 1%대에 불과하다. 다만 투자자들의 공세가 점점 구체화하고 세력화하는 모습은 삼성그룹 입장에선 달가운 상황이 아니다. 만약 이들이 현실적인 환원책을 요구하고 실현 가능한 명확한 방안을 제시한다면 결과는 예견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금융지주회사 7곳(KB·신한·하나·우리·JB·BNK·DGB)을 상대로 최소 50%에 달하는 주주환원율을 달성할 것을 주문했다.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한 환원책을 요구함과 동시에 이사회 구성을 개선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KT&G), 트러스톤자산운용(태광산업), VIP자산운용(삼양패키징), KCGI자산운용(현대엘리베이터) 등이 타깃 기업을 상대로 적극적인 주주 행동을 펼치고 있다.

      사실 주총을 앞두고 공식적으로 드러난 제안을 제외하고 수면 아래서 펼쳐지는 활동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헤지펀드가 타깃을 삼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는 기업은 현재 공개된 것보다 훨씬 많다"며 "본보기가 된 기업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수면 아래에서 다른 포트폴리오 기업들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곧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한다. 이에 앞서 투자자들은 저평가 기업들을 선별하는 작업에 돌입했고 이 같은 움직임은 이미 기업들의 주가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투자자들이 주요 기업들의 가치 증대에 베팅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저평가' 꼬리표를 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로 기업들이 이달 중순까지 주주환원에 대해 언급한 건수(167건)는 지난해 2월 전체건수(193건)에 육박했다.

      정부가 개인투자자, 외국인, 기관투자가, 행동주의펀드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줬지만, 자칫 구체적인 밸류업 프로그램의 내용이 미미하거나 매표(買票)로 비칠 수 있는 총선용 아젠다 수준으로 전락한다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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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주총 시즌에선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포스코, KT&G 등의 최고 경영자 선임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봐야 한다. 

      회장직 공모절차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던 포스코는 결국 외부인사 대신 정통 철강맨으로 꼽히는 장인화 전 사장을 회장직에 내정했다. 현재 장 전 사장은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한 상태다.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의 입장이 '내부 카르텔 타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과 일부 기관투자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다.

      KT와 포스코가 홍역을 치르면서 KT&G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백복인 대표이사는 4연임을 포기했고, 회사는 현재 후임 공모절차를 진행중이다.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동수의 내부출신 인사와 외부 인사가 경합을 벌이는 모양새다. 국민연금은 최대주주 자리를 내어줬지만 주요주주로서 차기 CEO 선정에 어떤 방식으로 힘을 실어줄 지 관심이 쏠린다.

      사실 주총 시즌에서 이렇다 할 힘을 쓰진 못하는 국민연금이지만 여전히 주요 그룹사의 주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지배구조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낸 카카오그룹은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각 계열사의 최고경영진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미 카카오 주요계열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말 투자목적을 일반투자로 상향조정하며 주주권 행사를 예고했기 때문에, 주요 경영진 교체에 대한 표결 방향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1번가 콜옵션 거부사태로 국민연금에 굴욕(?)을 안긴 SK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도 관심사다. 이미 국민연금은 최태원 회장의 연임안을 비롯해 SK그룹 계열사의 주주총회 주요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했다.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 중인 한미그룹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상태다. 두 그룹의 명운이 걸린 합병 과정에서, 주총 표대결이 불가피해져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매우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