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자리 줄어들라…보폭 빨라진 글로벌 PEF들
입력 2024.02.23 07:00
    지난 수년 M&A 침체 속 투자·회수 성과 부진
    개점휴업 장기화에 '성과내라' 본사 압박 커져
    한국 성과 부진했던 곳들까지 움직이며 눈길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은 이름값에 맞지 않게 한동안 투자와 회수 모두 주춤한 행보를 이어갔다. 전세계적으로 M&A 시장이 침체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양해가 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 본사의 압박을 받는 글로벌 PEF 한국 사무소도 존재 의미를 입증할 성과를 내기 위해 분주해지는 모습이다.

      한국 M&A 시장은 2021년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을 걸었다. 가치산정 격차,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며 M&A가 뜸해졌는데 글로벌 PEF의 성과가 특히 부진했다. 글로벌 금융 침체로 본사에서 보수적인 활동 지침을 내려졌고, 미-중 갈등 이후 아시아 시장에 대한 주목도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따놓은 대형 거래를 국내 PEF에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국내 M&A 시장 분위기는 지난 2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국 내 글로벌 PEF들이 ‘개점휴업’을 이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투자와 회수 성과가 좋을 때는 여러 곳에서 승진자가 배출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지금처럼 별다른 활약이 없을 때는 가시방석이다. PAF처럼 한국 PE 사업을 접은 곳도 있다. 본사에서 이제는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는 분위기니 시장 상황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KKR은 지난 수년간 한국에서 PE보다 인프라 투자로 주목받았다. 인프라 부문에서 태영그룹 거래 등을 주도하며 승진자를 배출하는 사이 PE 부문은 상대적으로 잠잠했다. KKR은 2021년 아시아 4호 펀드(150억달러)에 이어 올해 아시아 태평양 인프라 2호 펀드(64억달러)도 결성했다. 앞으로 아시아 5호 펀드를 결성하려면 한국 등에서의 성과가 필요하다. 최근 롯데그룹과 협력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일환으로 풀이된다.

      칼라일그룹도 본사 차원에서 실적을 내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칼라일은 아시아 6호 펀드 목표액을 85억달러에서 60억달러로 낮췄으나 중국 투자 비중이 높아 북미권 출자자(LP)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펀드 결성은 본사 차원의 일이지만 자금 규모가 작아지면 많은 인력을 유지할 필요성도 줄어든다. 투자 성과라도 내야하니 작년부터 블랙스톤의 지오영 등 여러 인수건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KB금융 주식을 팔아 3260억원을 회수하기도 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산이 많은 칼라일그룹이 아시아 펀드 자금 조달에 애를 먹고 있고, 펀드 규모가 작아지면 인력도 줄이려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거래를 따내려 움직일 것”이라며 “KKR도 중국 비중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다음 펀드레이징 때 고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이름값 대비 유독 한국 시장에서 존재감이 초라했던 글로벌 PEF들도 눈길을 받고 있다.

      CVC캐피탈은 작년부터 핵심 포트폴리오인 여기어때 매각과 상장(IPO) 카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엔 리캡(자본재구조화)을 추진해 일부 자금을 LP들에 돌려줬다. 이규철 한국 대표가 취임한 지 만 3년이 되어가기 때문에 투자든 회수든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영권거래(바이아웃)와 소수지분 투자 등 여러 건을 준비 중인데 내부에선 투자심의위원회를 넘기 쉽지 않다며 답답함을 표하는 분위기다.

      모건스탠리PE(MS PE)는 작년 전주페이퍼를 투자 15년 만에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위생용품 제조사 중원 매각도 작년에 이뤄졌다. MS PE 본사에선 작년 핵심 과제로 한국 포트폴리오의 투자회수를 제시했는데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올해는 화장품사 스킨이데아를 인수하는 등 오랜 침체기 때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블랙스톤은 지오영 매각 결과가 중요하다. 첫 투자인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은 2021년 상장에 실패했고 대성산업가스, 휴젤 등 대형 M&A에선 경쟁사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 상황을 살피는 역할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작년부터 지오영 매각을 위해 대기업을 두루 접촉했고 이후 칼라일그룹과 KKR, MBK파트너스 등 PEF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TPG는 작년부터 녹수 매각을 검토했고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뱅크 등 회수도 모색해야 한다. 작년 화장품 용기 수위권 업체 ‘삼화’를 인수했고, 삼화 실적이 성장세를 이어감에 따라 여유가 생긴 상황이다. 베인캐피탈도 한국 내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카버코리아와 휴젤 등 뷰티 영역에서 회수까지 성공했다. 호실적을 내고 있는 클래시스의 활용 방안에도 이목이 모인다.

      한국에서 당장 성과를 내기 녹록지 않은 곳들도 있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나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버거킹, 컬리 등 주요 포트폴리오의 매각이나 상장에서 애를 먹었고 주요 인력이 많이 이탈했다. LP들도 이들 PE의 행보에 주목하는 분위기로 전해졌다. 기존 포트폴리오 인수금융 차환이나 신규 자금 조달을 위해 시장에 읍소해야 하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