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시장 침체에 저축은행·부동산 운용사도 공모주 시장 '기웃'
입력 2024.02.26 07:00
    PF 투자처 마땅찮아…공모주로 눈돌리는 기관들
    현행법상 저축은행·부동산 운용사도 수요예측 가능
    자기자본 규제받는 저축은행…배정 물량은 적어
    부동산 운용사, 주식도 부동산처럼 리스크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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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공모주 시장에 작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저축은행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처음보는 자산운용사들이 있어 알아보니 부동산전문 운용사였다. PF 시장이 워낙 힘들다보니 공모주 시장까지 떠밀려온 듯하다."(증권사 IPO 담당 고위 관계자) 

      국내 공모주 시장이 역대급 활황세다. 상장 당일 공모가의 급등이 기정사실화하다보니,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기관투자자들간의 수요예측 경쟁이 치열하다. 하이일드펀드에 대한 공모주 우선 배정 물량이 올해부터 10%로 늘어나면서, 공모주의 열기가 BBB급 회사채 시장에까지 옮겨갈 정도다.

      공모주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동안은 일부 연기금·공제회를 제외하면 공모주를 주력으로 하는 자산운용사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저축은행과 부동산전문 운용사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산PF 시장의 침체로 투자처가 마땅찮은 상황에서, 활황세인 공모주로 자금이 모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진행된 에이피알의 수요예측에는 총 1969건의 주문이 몰렸는데, 이중 26%에 달하는 515건의 주문이 연기금과 운용사, 은행, 보험사에서 들어왔다. 여전히 자산운용사가 공모주 수요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한 비(非)운용사 기관투자자의 주문 건수가 늘어나는 추세란 분석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과 금융투자협회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기업공개(IPO)를 위한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는 은행(저축은행 포함)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연기금, 투자일임회사, 부동산신탁사 등이다. 이같은 기관투자자 자격 요건은 꾸준히 완화돼왔다.

      초기엔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일부 기관만 수요예측에 참여가능했지만, 2015년 법 개정을 통해 투자일임형 자문사와 부동산신탁사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2019년엔 전문 사모 운용사 설립 요건중 하나인 자기자본 기준이 20억에서 10억원으로 낮아지면서 중소형 기관들이 대폭 늘어났다.

      이처럼 현행법상 IPO 수요예측에 참여가능한 기관투자자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그동안 공모주 투자에 실참여한 기관은 제한적이었다. 공모주 시장이 지금과 같이 호황을 보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PF에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다만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에 이어 지난해 연말 태영건설 사태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올해 부동산PF 등 대체투자와 관련해 웬만큼 우량한 딜(deal)이 아니고서는 투자심의위원회의 문턱을 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저축은행의 자금이 공모주 시장을 향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수요예측에서 상장까지 20여 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고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신규 상장사의 공모가 대비 시초가 비율은 200~400% 수준이다.

      다만 개별 저축은행이 수요예측 참여를 통해 배정받는 물량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경쟁률에 비해 저축은행이 청약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호저축은행업감독규정)상 저축은행은 자기자본의 50% 이내에서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 비상장 주식의 경우엔 자기자본의 10%를 넘길 수 없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기배정된 투자자금은 여유가 있는데 신규로 PF딜에 투자하기가 마땅치는 않은 상황이라 자금을 놀리느니 공모주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라며 "다만 배정받은 물량이 적어 수익률이 크게 높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동산투자 전문 자산운용사도 저축은행업권과 비슷한 이유로 공모주 시장을 찾고 있다. 부동산 운용사도 현행법상 기관투자자인 자산운용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모주 수요예측에 참여가 가능하다.

      통상 부동산 운용사들은 전체 운용규모(AUM)의 7~80%는 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2~30%는 부동산 등 리스크 자산에 투자한다. 주식도 부동산과 같이 리스크 자산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동산에 30%까지 투자할 여건이 되지 않는 운용사들이 공모주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란 설명이다.

      공모주 투자에 나서는 기관투자자의 유형은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총선 이후 정부가 앞장서 PF 시장 정리에 나선다 하더라도 시장이 안정화하는 데까진 시일이 소요될 전망에 더해, 현재 증시에 마땅한 주도주가 없어 공모주로 자금이 몰리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 IPO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진 보이지 않았던 저축은행까지 수요예측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공모주 시장이 활황이긴 활황이다 싶었다"며 "한동안 더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공모주 시장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