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서도 외면받는 신탁사…1위 '한토신' 미매각에 커지는 위기감
입력 2024.02.26 07:00
    한토신, 1000억 수요예측서 380억 주문 그쳐
    미매각분은 KB證이 인수…금리는 70bp 가산
    신평사도 신탁사 예의주시…한토신 A- 강등
    한토신 미매각에 타 신탁사 조달 계획 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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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건설업계의 위기감이 신탁사로 전이되고 있다. 부동산 호황기 시절 효자 노릇을 했던 '책임준공 관리형'(책준형) 토지신탁이 유동성 위기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단 분석이다. 금융당국도 최근 신탁사에 대한 충당금 적립 강화를 요구하는 등 건전성 관리에 나섰다.

      신탁사를 향한 시장의 투자심리도 우호적이지 않다. 최근 신탁업계 자본력 1위인 '한국토지신탁'이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났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신탁사에 대한 시장의 시선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충당금 압박에 차환 부담까지 커지면서, 신탁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토지신탁(이하 한토신)은 지난 14일 총 1000억원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38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2년물 700억원 모집에 100억원, 3년물 300억원 모집에 280억원의 주문이 들어오며 두 개 트렌치에서 모두 미매각이 발생했다. 회사는 조달한 자금을 전액 채무 상환에 활용할 계획이다.

      미매각분은 총액인수계약에 따라 발행 주관사인 KB증권이 인수할 예정이며, 금리는 개별민평금리에 밴드 최상단인 70bp(1bp=0.01%포인트)를 가산해 결정됐다. 높은 금리 탓에 미매각 물량은 리테일에서 충분히 소화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많지만, 업계에선 회사채의 미매각 사실 자체에 더 주목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연초효과가 예년 대비 길어지면서 BBB급까지 수요가 몰리는 지금의 시장에서 60% 가까이 미매각이 난 것은 현재 신탁사를 둘러싼 시장의 투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업계 1위라고 평가받는 한토신마저 미매각났으니 다른 신탁사들의 조달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신탁사의 약한 고리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책준형 토지신탁이다. 책준형 신탁은 규모가 작고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 시공사를 대상으로 신탁사가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형태로, 사업비는 시행사가 조달하지만, 시행사나 시공사가 공사를 끝마치지 못할 경우 신탁사가 책임을 지고 준공하거나 PF 대출을 대신 상환해야 한다.

      책준형 신탁은 일반적으로 개별 시공사 신용만으로는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 건설사들이 참여하는데, 치솟은 공사비와 미분양 급증에 건설 경기가 악화한 데 따라 중소 건설사의 부도와 부실이 급증하면서 신탁사에 재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단 지적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이달 초 14개 신탁사를 대상으로 회사별 충당금 적립 실태 일제 점검을 예고하며, 신탁사를 대상으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나섰다. 충당금 압박으로 건전성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채무 상환을 위한 조달 환경까지 악화하면서, 신탁사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수요예측 전날이었던 13일 기준 한토신의 개별민평금리는 2년물 6.32%, 3년물 6.66%였는데, 여기에 가산금리 70bp를 가산한 최종 발행금리는 각각 7.02%, 7.36%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회사가 차환 예정인 채무(무보증사채 41-1회, 42-1회)의 이자율인 3.89%, 6.53%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저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더 비싼 금리로 상환하면서, 높아진 이자비용에 따른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신용평가업계도 신탁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6일 한국신평가는 한토신의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한 단계 강등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신탁 수주 감소로 시장지배력, 이익창출력이 저하됐다"며 "비우호적인 영업환경을 고려할 때, 실적 회복에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토신이 회사채 시장에서 외면받으면서, 다른 신탁사들도 조달 계획을 수정하는 등 회사채 발행을 연기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고금리 발행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회사채 발행에 앞서 신평사로부터 신용등급 재평가를 받을 때 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한토신의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발행을 준비하려던 다른 신탁사가 최근 일정을 연기했다"며 "시기를 조율한 뒤 하반기 이후에나 발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