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손실, 한화는 추가 출자 압박…운용사 옥죄기 시작한 미국 부동산 폭탄
입력 2024.02.27 07:00
    삼성SRA 美 더포털 오피스 경매行…LP 전액 손실 처리
    한화운용 엑슨모빌빌딩도 대출 리파이낸싱 난항 예상
    임차료 급감에 LTV 비율 맞추려 출자하는 국내 금융사들
    "美 은행들 경매 서둘러…금융사 우선주까지 손실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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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높은 공실률로 인한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뉴욕·샌프란시스코·텍사스 등 미국 대형 오피스에 투자한 국내 금융회사들이 손실 위기에 처했다. 국내 금융사들은 34조원이 넘는 금액을 북미 부동산에 투자해 왔다. 현지 금융사들로 구성된 대주들이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해 경매 절차로 접어드는 경우, 조단위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RA자산운용이 2014년 투자한 미국 워싱턴DC 소재의 오피스 빌딩 더포털(The Portals Ⅲ)은 최근 현지 대출 연장에 실패, 강제 경매 절차에 들어갔다. 삼성SRA자산운용이 기관투자자(LP)들과 함께 우선주 형태로 투자했던 1065억원의 회수도 불투명해졌다.

      경매를 통해 빌딩을 매각할 경우, LP들은 투자금을 절반 이상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LP로 참여했던 삼성생명과 성담 등은 이미 투자금을 장부상 전액 손실 처리했다. 삼성SRA자산운용 측은 손실 여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거래에 참여한 LP 관계자는 "이미 회수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1년여 전에 손실로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자산운용이 투자한 미국 뉴욕 '엑슨모빌빌딩'(Exxon Building)도 현지 대출 리파이낸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 2020년 뉴욕 그랜드 센트럴역 인근에 위치한 엑슨모빌 빌딩에 총 1억7500만달러(약 2160억원) 우선주 투자했다. 국내 대형 금융사 다수가 LP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엑슨모빌빌딩 관련 대출은 올해 말 대출 만기를 앞두고 있지만, 1조2000억원 수준이던 자산가치가 현재 700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대출 차환을 추진하더라도, 현지 대주들이 수익자를 대상으로 LTV(담보인정비율) 유지를 위한 추가 출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화자산운용으로선 임차료 감소로 기대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운데, 전액 손실을 피하기 위해 대규모 출자 부담을 져야할 수도 있다. 

      한화자산운용 측은 "올해 말이 대출 만기인 것은 맞지만 아직 리파이낸싱 논의까지 진행되진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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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과 한화의 사례처럼, 올해부턴 EOD 끝에 경매로 이어지는 미국 부동산 투자 사례가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 당시 대형 오피스에 입주해 있던 미국 IT·테크 기업들의 임차 계약이 속속 만료되고 있지만, 재택 근무 확산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계약 연장을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스를 수 없는 문화가 된 재택근무의 여파가 점점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현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대형 오피스의 공실률은 40%에 육박한다. 약 40%만큼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셈인데, 현지 대주단 측이 LTV를 통상 60% 비율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국내 금융사들의 추가 출자가 불가피하다. 중위험·중수익을 기대하고 메자닌 투자에 집중했던 것이 독이 되고 있다. 상황이 급변하며 기대 수익은 낮아지고, 위험성은 커졌다.

      현지 은행들은 대부분 선순위 투자라 손실 위험이 조금이라도 커지면 바로 경매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좁은 국내 시장처럼 대출 금융사와 중순위 출자자끼리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다. 현지 은행이 중순위 권리자에 출자 의향을 물을 수도 있지만, 웬만한 대형 프라임 오피스의 경우 자산가치가 조단위고 필요한 출자금도 수천억원에 이르니 택하기 쉽지 않다.

      한 글로벌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현지 대주(은행)들은 국내 금융사들이 1000억원 이상의 에쿼티를 납입하지 못할 거라고 아예 결론을 내리고 있다"며 "우선주 투자자들마저 손실을 보는 최악의 상황에서 다른 출자자들을 모아 '레스큐 펀드'를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들이 북미 부동산에 투자한 비용은 34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해외부동산 전체 투자금 중 60% 이상이다. 지난해 9뭘 기준으로 해외부동산 투자 건 중 6.5%에서 EOD 사유가 발생했다. 선순위 채권자에 대한 이자 또는 원금을 미지급했거나,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LTV 조건 미달 등이 원인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사가 소유한 텍사스 우량 자산마저 감정 가격이 10% 넘게 깎인 상황에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해외부동산은 '박살났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라며 "레스큐 펀드로 주로 활동하면서 10% 이상의 이자 수익을 얻었던 성담이나 코리안리 등도 요즘엔 추가 출자를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부동산발 '특수'를 노리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 대형 법무법인에서 근무하던 미국 변호사들이 미국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국내 금융사가 한국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