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이 불 지핀 민영보험 확장…속으로 웃는 삼성ㆍ한화생명?
입력 2024.03.04 07:00
    의대증원과 맞물려 건보재정 논의 도마 위
    삼성생명이 과거 검토한 건보 민영화 다시 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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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최근 의대증원 논의에 불이 붙으며 건강보험료 재정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료비 부담으로 건강보험료가 증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삼성생명이 작성한 민영건강보험 도입 방안도 다시금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해당 자료는 삼성생명이 2003년 작성한 민영보험의 청사진으로, 생보사 민간보험의 궁극적 목표를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라고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강보험 민영화 방안 관련 아이디어가 물밑에서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의대 정원 확충으로 의사 수가 늘어나면 국민건강보험 청구액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어려워지면 일정부분 민간보험에서 빈 자리를 대체할 수밖에 없을 거란 당위론이 설득력을 얻으면서다.

      이런 가능성은 이미 20년 전부터 언급됐다. 지난 2003년 삼성생명은 국립암센터의 요청에 따라 민영건강보험의 현황과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당시 ‘민영건강보험의 발전방향’이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공적보험과 민영보험의 비교현황 ▲민영의료보험의 도입 배경 ▲선진국의 의료개혁 경험 ▲민영건강보험의 발전방향 ▲제언 등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논란이 됐던 내용으로는 민영의료보험의 발전단계 부분이 꼽힌다. 해당 보고서에는 정액방식의 암보험→정액 방식의 다질환 보장→후불방식의 실손보험→실손의료보험→병원과 연계된 부분경쟁형→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라고 적고 있다. 국내 의료보험 체계가 미국식 시스템과 유사해지는 것으로, 사실상 보험 수혜계층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최근 의료대란에 따라 의대 증원, 건보 재정 문제가 대두되면서 생명보험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논의에 다시금 불이 붙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의료보험 민영화라는 해묵은 논쟁이 이번에는 속도가 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앞서 삼성생명의 보고서 내용 중 네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실손보험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는 점 역시 해당 논의에 설득력을 실어준다는 해석이다.

      지난 6일 복지부는 내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연간 2000명씩 5년간 총 1만명으로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증원규모는 올해 기준으로 65.4%로 상당히 높은 수치다. 2025년에 입학하는 의대생이 졸업하는 2031년부터 2035년까지 매년 2000명씩 의사 인력이 늘어나게 된다. 이는 1988년 이후 27년만에 처음으로 시행되는 의대 증원이다. 

      의사들은 즉각 집단행동을 통해 해당 방안에 반발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10년 뒤 국민이 부담해야할 의료비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건보재정에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의사수와 병상수다. 이들 둘 요인은 국민의료비 증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19일 긴급토론회를 열고 의대 증원규모가 2000명이 될 경우 국민 1인당 월에 부담해야할 의료비는 6만원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3000명 증원이 된다면 월 8만5000원의 의료비가 추가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현재 건강보험(건보) 재정이 가뜩이나 고갈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보 재정은 올해부터 적자로 전환된 뒤 2028년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건보 구조 개선 필요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만약 의사증원이 확정된다면 국내와 같은 공적보험 시스템으로는 높아진 의료비를 감당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생명이나 한화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사들은 이 같은 상황에 수혜를 볼 수 있는 직접적인 회사로 꼽힌다. 만약 현재 건보 체제에 민간회사의 영역이 커질수록 대형 생보사들의 역할의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국내 건강보험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민간 보험사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치권 및 국내 여론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한 보험업 관련 연구원은 “국내는 행위수가를 기준으로 의료비가 정해지므로 의사수 증원이 반드시 건보 재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며 “설령 건보 부담이 커진다 하더라도 현재 국내 보험업 특성상 병원과 민간 보험사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여건상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원은 “국내에서는 공보험과 사보험으로 나뉘어 있는데 복지부가 사보험 영역을 건드릴 수 있는 권한이나 역량이 크지 않다”라며 “만약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보험과 사보험의 관계나 역할까지 구조적인 개선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정치권에서도 엄두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