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애경그룹, 아시아나 화물 인수 참여 속내는?
입력 2024.03.11 07:00
    애경그룹, 제주항공 주식 담보 대출로 3000억원 조달
    백화점 등 적자 유통 계열사 지원에 재무 부담 증가
    9월부터 AK홀딩스 1300억원 EB 풋옵션 행사 가능해져
    아시아나 화물 인수 가능할까…업계선 의구심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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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인수전에 제주항공이 참여하면서, 모기업 애경그룹의 자금 확보 능력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 주식 절반 가량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 단위의 화물사업을 인수할 경우, 제주항공뿐 아니라 그룹 전반적인 재정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무리한 인수를 고려할 만큼, LCC 업계간 경쟁의식이 짙게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인수 의지가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애경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는 올해 하반기에도 제주항공 주가가 부진할 경우, 1250억원어치의 교환사채(EB)에 대한 조기상환 요구를 받게 된다.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 애경그룹 입장에선 이를 막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에, 시장에선 주가 부양 목적으로 인수전에 참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주관사 UBS는 지난 5일 제주항공과 에어프레미아, 이스타항공, 에어인천 등 4곳을 적격인수 후보(숏리스트)로 선정했다. 에어로케이 등 예비입찰 서류를 받지 못한 기업들과도 개별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한항공과 UBS는 이들에 대한 현장 실사를 진행한 뒤 상반기쯤 최종 매수기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배포된 투자설명서(IM)에는 화물사업부 자산 및 부채가 명시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선 화물사업부 자체의 매각 가격을 5000억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시아나가 보유 중인 부채 1조원까지 포함하면 최종 인수에 필요한 금액은 1조5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인수 후 노후 화물기를 교체하는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조 단위를 훌쩍 넘길 수 있다. 

      제주항공과 애경그룹의 자금 동원력을 두고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백화점 AK플라자를 운영하는 유통 계열사 AK S&D의 적자가 지속되면서, 재무 여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높다. 

      지주사 AK홀딩스는 코로나 이후 적자를 거듭하고 있는 AK S&D의 지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주항공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지난달 제주항공 지분 9.67%를 담보로 500억원을 빌린 것을 합하면, 금융사에 담보로 맡긴 지분만 45.22%에 달한다. 주식담보대출로 조달한 자금은 약 3100억원 규모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애경케미칼도 석유화학 업계 불황으로 고전하면서 자금 동원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애경케미칼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0% 이상 줄어든 45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통산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기능성 플라스틱 원료 등 신사업 발굴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드는 돈도 만만치 않다. 오는 2025년까지 울산에 생산기지를 짓는 데 필요한 투자비용만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수천억원의 자금을 지원 받을 경우, 애경그룹의 지배력도 약화된다는 단점이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AK홀딩스의 지분은 50.37%, 애경자산관리의 지분은 3.22%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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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같은 부담에도 애경그룹은 ‘경쟁사 견제’ 차원에서 화물사업부 인수전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이후 진에어ㆍ에어서울ㆍ에어부산 통합으로 ‘메가 LCC’의 출현 가능성이 커지면서, LCC 업계 1위를 유지해왔던 제주항공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는 영향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애경그룹의 경우 항공화물사업 확장에 대한 수요도 있겠지만, 에어프레미아나 이스타항공 등 경쟁사가 이를 인수할 경우 외형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매자 후보들 사이에선 제주항공이 ‘진지한 경쟁자’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앞서 공공연하게 인수 의지를 드러냈으나 예비입찰에 응하지 않았던 티웨이항공 사례처럼, 본입찰엔 불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주항공이 EB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를 돕기 위해 인수전에 참여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애경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는 지난 2022년 제주항공 주식을 기반으로 13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대신증권 등 금융사들이 이를 인수했는데, 이 중 50억원 규모의 물량만 주식으로 전환됐다. 당시 계약한 EB 교환가액은 1만6000원 수준이다.

      EB 투자자들은 올해 9월 6일부터 3개월마다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달 들어 제주항공 주가가 1만60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EB 투자자들이 9월부터 주가부진을 이유로 조기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투자자들이 상환을 요구하면, 지주사인 AK홀딩스는 원금 1250억원과 이자 3%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재무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애경그룹 입장에선 주가 부양을 통해 주식교환을 장려하거나, EB 만기일인 2027년까지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 셈이다. 

      제주항공 측은 "그룹 차원에서 (45%에 달하는) 주식 담보 대출을 갚을 여력이 충분한 상황이고, 1300억원어치의 EB 물량도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