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취임 4년차에 진용 갖춰진 현대차그룹 '믿을맨들'
입력 2024.03.11 07:00
    영입 3년만에 R&D 수장에 오른 송창현 사장
    김걸 사장 이끄는 기획조정실, 정 회장 측근 '건재'
    실적으로 증명한 장재훈·송호성 사장
    영전에 사내이사 선임까지…위기에 주목받은 CFO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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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낸 현대자동차엔 전운이 감돈다. 사업적으론 더 좋아지기 힘들 것이란 피크아웃(Peak out) 위기감이 감도는데 그 불안감은 인사에서 고스란히 뭍어났다. 그룹의 곳간을 책임지고 허리띠를 졸라 맬 재경부문 핵심 인사들을 전면에 배치했고 계열사들은 곧 열린 주주총회에서 자본시장과 접점이 많은 내외부 인사들의 이사 선임을 계획 중이다.

      현대차의 가장 큰 과제는 역시 지배구조 개편이다. 정의선 회장이 취임한 지 만 3년을 훌쩍 넘긴 시점, 사업적으론 최고의 성과를 달성했고 주가도 날개를 달았다. 지배구조 개편의 최적기란 평가를 받으며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을 넘겨 받을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 회장을 보좌할 가신(家臣)그룹의 면면이 구체화하고 있다.

      기술분야 구획 정리 일단락…정 회장 최측근 송창현 사장 전면에

      정의선 회장의 취임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단연 송창현 사장(SDV본부 본부장)이다. NHN 출신이자 자율주행업체 포티투닷의 설립자인 송 사장은 영입 당시부터 파격적인 인사로 눈길을 끌었다. 겸직이 불가능한 현대차그룹에서 유일한 외부 겸직 인사였고 현대차가 포티투닷을 인수하면서 수천억원의 자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최근엔 현대차그룹의 핵심인 남양연구소의 소프트웨어(SW) 부문을 맡게 되면서 양희원 사장과 기술개발 부문의 투톱 체제를 구축했다.

      최근 현대차 R&D 조직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지난해 5월 현대차 R&D의 상징과도 같던 박정국 전 사장이 고문으로 물러났고 동시에 김용화 차량제어개발센터장 겸 연구개발기획조정실장(부사장)이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선임됐다. 박정국 전 사장의 경우 선임 1년만이었고 심지어 사내이사 임기도 남겨둔 상황이었다. 

      지난해 12월 김용화 부사장도 6개월만에 갑작스레 일선에서 물러났고 송 사장을 중심으로 한 조직 개편이 이뤄지면서 내부적인 혼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로선 송 사장이 정의선 회장의 '복심 중의 복심'으로 꼽히는 만큼 앞으로 SW 중심의 기술개발 분야에 보다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송 사장의 영입부터 현재까지도 내부적인 갈등이 결코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들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의 명확한 구획정리가 이뤄지면서 조직도 다소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한 때는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전망됐던 수소사업의 수장들은 대폭 교체 됐다. 김세훈 부사장, 임태원 부사장 등 과거 수소사업을 이끌던 인사들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김창환 전무가 수소연료전지선행기술개발 실장(수소연료전지센터장)이라는 핵심 보직을 맡게 됐고, 김태윤 상무가 새로 영입되며 수소연료전지기술개발 실장 자리를 맡았다.

      전 정부의 치적과도 같던 수소 사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주목도는 크게 떨어진 상태다. 현대차의 미래 기업가치를 점치는 과정에서도 수소의 존재감은 미미해졌다. 수소 사업 수장들이 내부적으로 힘을 얻을 수 있을진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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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룹의 컨트롤타워 기획조정실…김걸 사장 등 핵심 인사는 건재

      현대차그룹의 브레인 조직 딱 한 곳을 꼽자면 단연 기획조정실이다. 한 때는 구(舊)전략기술본부와 같은 신성(新星) 조직이 주목을 받았지만 현대차의 해외 투자와 신사업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해당 조직은 와해됐고 다시 기조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정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김걸 사장(기획조정실장)은 과거 정몽구 회장의 측근이었던 김용환 전 부회장의 후임이다. 2019년 김걸 사장이 기획조정실장에 오르자 정의선 회장에게 그룹의 헤게모니가 완전히 넘어왔다는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김 사장은 과거 삼성동 한국전력부지 인수, 앱티브 테크롤로지와 JV설립,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등의 성과가 있지만 최근들어 굵직한 사업 성과를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차가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고, 유보금을 마냥 쌓아놓을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다수의 M&A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 결과에 주목해 봐야한다. 과거 김걸 사장이 주축이 된 지배구조개편은 한 차례 실패한 이력이 있는만큼 앞으로 추진될 구조개편에선 어떤 카드를 들고 나설지 주목해 봐야한다는 평가다.

      김걸 사장이 그룹의 전반을 관할하고 재무는 한용빈 부사장(기획조정3실장)이 담당한다. 한용빈 부사장은 2019년부터 5년 넘게 핵심 보직을 꿰차고 있는 인물이다. 한 부사장은 현대차그룹 내에서 약진이 두드러지는 재무부문 핵심 인사로 과거 현대모비스 최고 재무책임자(CFO)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과거 해외정책팀장(당시 전무)을 맡았고 현재는 전략기획실장인 김동욱 부사장도 정 회장의 측근으로 꼽힌다. 과거 SK온과 미국내 전기차 생산을 위한 배터리 공장 설립은 김흥수 부사장(GSO본부장)이 앞단에 섰는데 추후 현대차의 배터리, 인프라 투자가 늘어날 수록 김 부사장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질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역대급 실적 이끈 장재훈·송민규 사장…급부상하는 CFO들

      장재훈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은 실적으로 존재감을 나타냈다. 장 사장은 김걸 사장과 함께 여전히 그룹의 중추로 꼽히고, 송 사장은 만년 서자로 불리던 기아를  장중 한 때 현대차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세를 이끌어 낸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환율효과, 코로나 이후 찾아온 신차 교체 주기 등 호재가 가득했던 시절이 저물기 시작하면서 그룹엔 위기감이 다시 감돌고 있다. 자연스레 CFO에 대한 주목도가 다시 높아지는 시기다.

      현대차는 현재 이승조 전무(기획재경본부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부사장급 직책이던 기획재경본부장에 전무급 인사가 오게 됐는데 그만큼 이 전무에 대한 신임도가 높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이 전무 역시 정의선 회장과 같은 고려대를 졸업했고 경영관리실장부터 재경사업부장까지 정통 재무라인을 밟아온 인사다.

      기아엔 2019년부터 CFO를 맡고 있는 주우정 부사장의 역할에 무게감이 실렸다. 올해는 실적을 방어하는 일, 특히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정부에서 강하게 밀어부치는 주주환원책을 실시하고 주가를 부양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다.

      현대차그룹 내 정통 재무라인 인사들이 최고위급 인사로 승진하는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최근만 보더라도 서강현 현대제철 대표이사(전 현대차 CFO), 배형근 현대차증권 대표이사(전 현대모비스 재경부문장) 등이 CFO직에서 계열사 대표이사로 영전했다.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한다면 핵심 인사들의 대규모 자리 이동은 당분간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현대차그룹의 사업적, 재무적 상황과 대내외 변수를 고려하면 당분간 재무부문 내 실무진들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