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배상 압박위해 '골머리' 짜낸 금감원…은행 이사회 관문은 넘어야
입력 2024.03.11 16:47
    금감원 분쟁조정기준안, '일괄지적'으로 은행권 압박
    배상비율 스펙트럼 넓어…과거 DLF 등과 상황 달라
    이사회 통과 등 남은 절차가 관건…민원인 동의도 얻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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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내놓은 홍콩H지수 분쟁조정기준안을 내놓은 가운데 은행권의 자율배상(사적화해) 가능성이 현실화될지 관심이 쏠린다. 이번 기준안의 복잡성이나 전반적인 시스템을 지적한 점을 살펴볼 때 은행권의 자율배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다. 

      금감원이 대표사례를 통한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계획 중이나 구체화되기까지 시일이 걸리는 만큼 당국에서는 자율배상 카드를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11일 금감원이 내놓은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르면 은행 일괄지적사항에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등이 포함된다. 적합성 원칙은 해당 ELS 상품 판매 과정에서 적합한 투자자에게 해당 상품을 권유했는지 여부를 따진다. 이 과정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거래목적, 위험에 대한 태도, 금융상품 이해도 등 6개 항목을 고려해야 하는데, 일부 항목이 누락됐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설명의무는 금융사가 상품을 판매하며 손실위험 시나리오나 위험등급 유의사항 등 투자위험 안내가 미흡했는지를 보는 항목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일부 은행은 해당 상품의 발행사가 손실위험 분석기간을 20년으로 잡아뒀는데 판매사인 은행에서 운용자산설명서 작성시 이를 10년으로 축소해 기재했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이번 분쟁조정기준안을 두고 ‘영리한’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적합성 원칙이나 설명의무 등 개별 불완전판매 사례보다는 은행의 ‘일괄지적’ 사항으로 담았다는 점에서다. 즉, 개별 민원사례를 일일이 따지기보다는 은행 자체의 시스템을 지적해 분쟁기준안 마련을 앞당기고 나아가 자율배상 가능성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담당 변호사는 “개별 민원사례 역시 분쟁조정기준에 넣기는 하겠지만 기본요인으로는 은행 전반의 판매시스템이나 설명의무, 적합성 원칙 위반 등을 골자로 두고 있다”라며 “결국 은행의 전체 시스템을 지적하는 것이 배상안의 골자로, 개별 민원사례보다는 은행을 압박하기에 좋은 데다 기준안 마련을 좀 더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DLF(해외금리연계)와 달리 투자사와 판매사의 복잡적인 상황을 세분화해 만든 점 역시 은행권의 자율배상을 유도했다는 의견이다. 홍콩ELS는 당초부터 이전의 라임이나 DLF 등과 비교해 상품 자체의 문제보다는 판매 상황에서의 미비가 두드러졌다. 대대적인 배상비율을 강조하기에는 은행권의 반발이 예상될 수 있는 만큼 보다 복합적인 배상기준을 만들었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감원이 DLF 당시 배포한 배상안을 살펴보면 40~80%로 책정됐고, 가감사유는 금융투자상품 거래경험이 많은 경우나 거래금액이 큰 경우 등으로만 명시됐다. 홍콩ELS 분쟁기준조정안이 가입횟수별로 차감 %포인트를 산정했다거나, 가입금액 및 수익규모에 따라 여러 차등 내역을 둔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금번 홍콩ELS 배상비율은 0%에서 100%까지 배상비율 사례가 다양해졌다. 즉, 투자자 특성이나 판매 과정 상의 여러 요소에 따라 배상비율의 스펙트럼이 과거보다 넓어졌다는 의미다. 

      금감원은 이전부터 꾸준히 은행권 자율배상을 강조해왔다. 이번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면서도 이복현 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법적 다툼의 장기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할 것을 당부했다.

      금감원이 대표사례를 통한 분쟁조정위원회를 계획하고 있지만 절차상 약 2~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분조위는 구속력이 낮아 당장 한달 앞으로 닥친 총선 시기를 감안하면 은행권의 자율배상 윤곽이 나와야 한다는 정치권의 압박도 보탬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은행권 자율배상이 실질적으로 시행되기까지는 이사회 통과나 민원인과의 분쟁조정 등 여러 관문이 남아있다. 

      과거 DLF 사태 때도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자율배상을 두고 각론을 펼친 바 있다. 기본적으로 금융사의 자율배상 안건은 배임의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금융지주 이사진들이 자율배상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까다롭게 검토해야 할 법적, 행정적 사항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금융 당국의 자율배상 압박에 대립각을 세우려는 금융사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민원인과 배상비율을 두고 합의가 도출이 안될 수도 있고, 금융지주 이사회로부터 자율배상에 동의를 얻기까지도 시일이 필요한 만큼 단번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