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위해 은행권 정조준한다는 금감원…실상은 자율배상 압박용?
입력 2024.03.14 07:00
    취재노트
    금감원, 은행 감독 검사 방향 업무 설명회
    은행주 ‘밸류업’ 위해 시스템 개선 필요 강조
    밸류업보단 은행권 자율배상 위한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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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올해 대대적인 은행 감독 및 검사 방향을 예고하며 은행권 정조준에 나섰다.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밸류업(기업가치 개선)의 명분도 담고 있다. 단기 성과주의 등 은행의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을 통해 저평가된 금융주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오랜기간 국내 금융주의 디스카운트(할인) 요인으로 금융당국의 개입이 꼽혀온 만큼 증권업계에서는 다소 황당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각에선 밸류업은 ‘명분’일뿐, 실상은 홍콩ELS(주식연계증권)를 둘러싸고 금융사의 자율배상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전날 금감원은 ‘2024년 은행 부문 금융감독 업무설명회’를 열어 감독·검사 방향을 공개했다. 매년 금감원이 은행 및 은행연합회 관계자들을 불러 개최하는 연례 행사이지만, 올해는 대외적인 주목도가 남달랐다. 지난 11일 홍콩ELS 분쟁조정기준안이 발표된 이후 금감원과 은행권이 자율배상을 두고 줄다리기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무설명회 현장에서도 금감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은행권에서 홍콩ELS 관련 질문을 쏟아냈다는 전언이다. 분쟁조정을 위한 대표사례 공개시기나 홍콩ELS 제도개선과 관련한 내용들도 다수 이어졌다. 이에 금감원은 통상 2~3개월이 소요되는 대표사례 구성 시간을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또 제도개선에 대해서도 판매제도, 증권회사 발행제도, 소비자 행태 분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계획을 밝혀뒀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밸류업 필요성을 지적했다. 은행권의 단기 성과위주의 조직문화나 기존 금융관행에 안주하며 장기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점 등을 금융주 저평가의 요인으로 꼽은 것이다. 그러면서 은행산업의 진정한 밸류업을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책임있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투명한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확립 등의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내놓았다. 

      이를 두고 증권업계에선 은행권을 압박하기 위한 ‘명분’으로 밸류업이라는 정치적 아젠다가 활용됐다는 시각이 나온다. 

      그간 국내 금융주의 저평가 요인을 두고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은 꾸준히 ‘금융당국의 개입’을 지적해왔다. 그랬던 금융당국이 밸류업을 위한 대책으로 시스템 개선을 강조한다는 점이 다소 결이 안 맞는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당국은 잊을 만 하면 상생금융이나 배당 자제 등 은행권의 경영 개입을 벌여왔다. 

      지난해 국내 은행의 해외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에서 단골질문은 상생금융 도입여부 및 규모가 차지하기도 했다. 당국의 말 한 마디에 당장 은행 수익이 감소할 수 있는 문제였던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는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일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밸류업은 허울좋은 명분일 뿐, 사실상 속내는 은행권의 자율적 배상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금번 홍콩ELS는 과거 불완전판매 사례와는 달리 분쟁조정절차를 시작하기 전에 분쟁조정기준안을 먼저 내놨다. 분쟁조정절차를 위한 대표사례도 공개하기 전이다. DLF(해외금리연계) 당시에는 6개의 대표사례의 분쟁조정 결과를 제시했고,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은행들이 자율배상을 하도록 했다. 대표사례가 정해지기 전에 은행권의 자율배상을 권고하는 점이 다소 이례적이라는 의견이 많은 이유다. 

      한 법무법인 금융 담당 변호사는 “DLF 당시에는 검사결과가 확정된 상태였고 제재안도 나왔던 상황인데 지금은 검사결과를 두고 은행권의 반박논리도 아직 수렴이 안됐다”라며 “은행들이 자율배상을 결정하기에 이른 시기라는 감이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선거와 맞물린 시기와 ELS 상품의 특성을 감안해 최대한 분쟁조정 전에 자율배상을 압박하려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당장 다음달로 다가온 총선 전에 조금이라도 은행권의 배상 밑그림이 나와야 하는 정치적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또, 상품 자체의 결함보다는 판매 과정에서의 절차상 미비가 더 중요해진 홍콩ELS 사태를 감안할 때 분쟁조정보단 자율배상이 더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조만간 열릴 은행연합회 주최 은행장 회동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금감원장)이 참석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홍콩ELS 배상안을 두고 은행들간의 심도 깊은 논의가 오갈 자리에 이 원장의 방문은 그 자체로도 은행들로서는 긴장감을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당국에서 홍콩ELS 기준안을 둘러싼 여론을 의식했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과거 불완전판매 사례들과 달리 배상비율 시나리오가 다양한 데다 전반적인 배상비율이 낮아진 만큼 금감원의 기준안이 다소 은행쪽에 치우쳐있다는 여론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금감원의 기준안은 배상비율이 0~100%까지 다양하게 나올 수 있도록 구성됐다. 과거 DLF 상품의 배상비율이 40~80%로 비교적 높았던 점과 대조적이다. 또한 ELS를 판매한 은행별로 설명의무에 해당하지 않은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가 은행 담당 연구원은 “선거를 앞두고 있어 금감원의 기준안이 금융사에 우호적인 측면이 있다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ELS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100% 배상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배상비율에 동의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