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실체 있다'에 베팅한 외국인…ELS 배상 부담에도 은행株 신고가
입력 2024.03.14 11:01
    ELS 배상안 발표…조단위 배상에도 신고가
    개인·기관은 '팔자'…외국인이 상승 이끌어
    손실 선반영·주주환원 영향 미미하단 분석
    세법·상법 개정 등 실체 없으면 재차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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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에 대한 배상기준안을 발표했다. 은행별로 차이는 있지만 크게는 '조단위' 배상도 거론되는 가운데, 은행주는 외려 신고가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다.

      증권가에서는 ELS 배상 이슈보다 정부가 주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판단한 외국인의 수급이 몰린 것이 배경이란 설명이다. 다만 오는 5월 예정된 2차 세미나에서 세법 개정안 등 구체적인 방안이 공개되지 않으면, 외국인이 재차 이탈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B금융은 전날인 13일 장중 7만8500원까지 오르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14일 장 초반 차익실현 매물로 인해 1.5%대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재차 매수세가 들어오며 낙폭을 크게 줄였다. 신한지주는 13일 장중 신고가를 기록한 데 이어 14일에도 신고가를 재차 경신하며 2018년 2월 이후 6년만에 5만원선에 다가섰다. 우리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도 3%대 오름세다.

      최근 은행주의 주가 상승은 외국인이 홀로 이끌었다. 개인과 기관투자자들은 최근 한 달간 순매도를 보였지만, 외국인이 이를 상쇄할만큼의 물량을 순매수했다. 실제로 KB금융의 외국인 보유율은 연초 72.01%였지만, 전날인 13일 기준 75.59%까지 늘었다.

      외국인의 수급은 지난 11일 금융당국이 홍콩 ELS 배상안을 발표한 뒤에도 이어졌다. NH투자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단순히 투자자 손실률 50%, 손실 배상비율 40%를 가정한 은행별 상반기 예상 배상액은 ▲국민은행 약 1조원 ▲신한은행 약 3천억원 ▲하나은행 1500억원 ▲우리은행 50억원 수준이다.

      증권가에서는 홍콩 ELS 손실사태 관련 배상 부담은 이미 주가에 선반영돼있었다며, 실제 주주환원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히려 그동안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 "민감도가 가장 높은 KB금융은 ELS 이슈가 불거진 후부터 저평가 섹터의 반등 전까지 코스피를 10%p 하회했다. 이에 5000억원대의 비용이 주가에 선반영됐다"라며 "상당 부분의 비용이 주가에 반영된 점, DPS(주당배당금) 추정치의 변화가 적은 점을 감안해 목표 주가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금융지주가 대규모 충당금을 적립하면서, ELS 배상액이 충당금으로 대부분 상쇄 가능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추후 구체화될 배상안과 예상 배상 규모를 봐야 하겠지만, 크게 보면 일회성 요인인 만큼 은행주 주주환원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KB금융지주의 지난해 연간 대손충당금 적립액은 3.1조원인데, ELS 손실 배상액 상당 부분이 충당금 감소로 상쇄 가능해 연간 이익은 지난해보다 크게 악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환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고,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단기 테마에 그치지 않고 실체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단 평가다. 실제로 현재 증권가 등 업계에서는 정부가 올해 안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세법과 상법 등을 개정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정책에 대한 기대감에 주가가 단기간에 큰 폭으로 상승한만큼, 오는 5월 예정된 2차 세미나에서 1차보다 진일보한 세부안이 공개되지 않으면 신규 외국인 투자자들이 재차 이탈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증권사 금융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에 신규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은행주로 몰리고 있지만, 아직 한국 규제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이라며 "법 개정 등 실체가 있는 주가부양정책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지난해 은행 횡재세 부과가 거론됐을 때처럼 외국인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