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고민거리 된 화학 사업…청사진 새로 짜야 하는 롯데케미칼
입력 2024.03.15 07:00
    롯데케미칼, 석화 업황 저하로 2년째 영업적자
    경쟁사인 LG화학은 '탈화학'으로 노선 틀어
    반면 명확한 대안 제시 못하는 롯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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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의 화학 사업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그룹 재무 불안이 여전한 가운데 캐시카우 롯데케미칼의 정상화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해부터 사업 합리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경쟁사의 탈(脫)화학 움직임, 이로 인한 시장 지형 변화가 가팔라지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가운데 롯데그룹 차원에서 화학 사업의 장기 청사진을 새로 마련해야 하는 단계로 풀이된다. 

      롯데그룹은 연초부터 부진이 길어지는 기존 사업에 대한 조정 작업을 예고했다. 그룹 매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화학과 유통 사업 정상화가 늦춰지는 상황에 유동성 위기에 처한 롯데건설 지원 문제가 겹치며 재무 부담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자연히 시장의 시선은 그룹 핵심 사업인 롯데케미칼로 향하고 있다.  

      2021년까지만 해도 롯데케미칼은 그룹 이익 절반을 담당하는 캐시카우였다. 그러나 경기 부진, 원료 가격 상승 등 업황 부진이 이어지며 지난 2년 연간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 수요는 줄어드는데 최대 시장이었던 중국이 자급률을 끌어올리며 기초소재 사업부를 중심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작년 6월엔 신용등급이 AA(안정적)으로 떨어지며 그룹 재무 부담에 대한 우려를 키우기도 했다. 

      롯데케미칼 내부에서도 사업 합리화를 내세워 수익성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확대하는 등 계획 마련에 분주하다. 지난 2년 동안 부진한 해외 사업장 11곳을 정리했다. 지난 연말엔 이훈기 대표를 새로 발탁해 종전 김교현 부회장 시기 늘어난 해외 다각화 사업에 대한 교통정리 등 과제를 부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거론된 롯데케미칼타이탄(LC타이탄) 매각설 역시 이 과정에서 새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는 최근 LC타이탄 매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으나 실제 회사 내부에선 지분 일부의 유동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인도네시아 라인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현지 정부로부터 확보한 세액공제 등 여러 계약 조건을 감안하면 지난해 무산된 파키스탄 법인(LCPL) 매각 작업과 마찬가지로 단순 매각은 쉽지 않은 구조란 평이 많다. 

      증권사 화학담당 한 연구원은 "LC타이탄의 투하자본수익률(ROIC) 자체는 여전히 이익 구간이지만 롯데케미칼 내부에서 라인프로젝트 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동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보인다"라며 "파키스탄 사업장 매각 무산과 마찬가지로 현지 정부와 얽혀 있는 LC타이탄 단순 매각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였다면 롯데케미칼 차원 사업 조정 후 업황 정상화 시점을 기다리는 수순이 되었겠지만 시장 상황은 생각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업계 1위이자 경쟁사인 LG화학은 일찌감치 화학 사업에서 발을 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앞서 지난 7월 노국래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은 임직원에게 "장기 가동 중지, 사업 철수, 지분매각, 합작법인(JV) 설립 등을 통해 사업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 직접 구조조정 필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석유화학 사업을 분할 및 유동화 해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PC)로부터 3조원 안팎의 자금을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LG화학이 쿠웨이트 KPC와 맞손을 잡는 건 중동 오일머니를 통해 중국 시장 위협에서 벗어난 뒤 자회사와 함께 2차전지 등 신사업에 무게를 싣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롯데케미칼 입장에선 부진한 사업을 정리하고 고부가 중심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만으로 중장기 전략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신사업을 강조하기엔 롯데케미칼이 석유화학 외에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배터리소재와 수소사업 등 친환경 사업으로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지만 경쟁사보다 시기가 늦었던 데다 신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일이 필요할 전망이다. 

      배터리 소재 사업 진출을 위해 2조5453억원을 주고 인수한 동박 기업인 일진머티리얼즈는 최근까지도 '고가 인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들어가야 할 투자금액도 만만치 않은데 최근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인해 영업이익도 급감하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20억원으로 전년 대비 85.9% 감소하기도 했다.

      결국 롯데그룹 차원에서 롯데케미칼의 장기 청사진을 새로 짜야 하는 상황으로 보여진다. 

      전문가들은 석유화학업의 체질 개선에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석유화학 자급률의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데다, 환경규제가 점점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에틸렌, 프로필렌(PP) 등 기초 유분의 중국 자급률은 2020년 이미 100%를 넘어섰고 2025년엔 120%까지 올라서게 된다. 중간 원료인 파라자일렌(PX)과 합성수지인 PP 자급률도 2025년엔 100%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은 신동빈 회장부터 석유화학에 정체성을 두고 있어 아예 방향을 틀기 어렵고, 대안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며 "신학철 LG화학 CEO는 '화학'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은 만큼 신사업으로 평가받고 싶어하는 인물이고 LG에너지솔루션 등 대안도 많은 상황이라 두 그룹은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사업 고도화를 위해 여러 방안을 검토를 하고 있다"며 "수소와 전지소재 신사업 부문도 놓치고 있지 않는 만큼 회사 경쟁력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