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 한도 거의 찼는데…'SK 대출 파이' 놓고 은행-증권사 신경전
입력 2024.03.22 07:00
    SK온 연초 조달 행보에 SK그룹 신용공여 한도 '아슬'
    SK이노ㆍSK스퀘어ㆍSK에코 등 자금 필요한 기업 줄이어
    '이미 절반 찼다'…조 단위 물량 기대하는 증권사들
    기업대출 늘려야 하는 은행들은 한도 초과 움직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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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에 대한 금융권의 신용공여 여력이 점차 줄고 있다. SK온을 중심으로 자금 소요가 이어지는 영향인데 은행과 증권사의 자금 집행 의지는 여전하다. 은행들은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를 늘려서라도 주요 대기업 관련 거래를 놓치지 않겠다는 분위기고, 증권가는 은행이 소화하지 못한 물량을 주선할 기회가 올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SK그룹은 한동안 사모펀드(PEF) 등 재무적투자자(FI)에 의존한 확장 전략을 폈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는 이를 고수하기 어려워졌다. 배터리, 반도체 등 주력 사업에 투입할 자금을 금융권에서 차입 형태로 마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SK그룹이 올해 비주력 사업 정리 등을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유의미한 유동성 확보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SK온은 연내 자금을 꾸준히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7조원, 중장기적으로 수십조원의 자금을 더 투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온은 현재 필요 자금의 절반 가량을 은행을 통해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신한은행이 SK온에 4억달러(약 5300억원) 규모 대출을 승인해줬고, 보증 형태로 지원하는 은행도 있다.

      은행 등 금융사가 무한정 한 그룹을 지원할 수는 없다. 은행법에 따르면 시중은행은 동일차주(계열회사)에 대해 자기자본의 25%까지만 신용공여를 할 수 있다. 대출, 지급보증, 자금지원 성격의 유가증권 매입 등 모든 금융기관의 직·간접 거래를 포함한 개념이다.

      산업은행도 시중은행과 같은 비율로 규제를 받는다. 수출입은행은 비중이 좀 더 높다. 한 그룹에 대해선 자기자본의 50%, 한 기업에 대해선 40%까지 신용공여를 제공할 수 있다. 수은은 SK온의 해외 증설 자금 및 일본 키옥시아 투자금 등을 대출해주기도 했다. 국책은행들은 올해 정부가 추가 출자하면 여력이 늘 수는 있다.

      SK온이 은행권 자금 조달을 늘릴수록 SK온의 차입 여유는 줄어들게 된다. 이는 SK이노베이션·SK스퀘어·SK에코플랜트 등 그룹 내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SK그룹 물량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우량 대기업과의 관계를 맺을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대기업 여신을 빼놓고 이익 증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사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신한은행은 올해 '우량 차주'에 대한 여신을 적극 늘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아직 SK그룹에 대한 익스포저도 여유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작년말 기준 하나은행은 주요그룹 중 SK그룹 익스포저가 가장 많고, KB국민은행도 한도를 싹싹 긁어 지원해주기도 했다.

      일각에선 대기업의 덩치는 빠르게 지는데 법의 규제는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웬만한 곳은 수조원대 대출로는 턱도 없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법상 한도보다 여유있게 여신 규모를 조절하지만, 이를 더 채우려 할 가능성도 있다.

      한 시중은행 IB부문 관계자는 "가계대출 감소로 기업대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SK그룹 같은 대기업 딜은 절대 증권사에 뺏길 리가 없다"이라며 "금융당국이 권고하는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만 충족하면 한도 확대는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은행들이 한도 문제로 소화하지 못한 SK그룹의 신용공여 물량을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가 감돈다. SK온 등 설비투자용 자금 조달이 필요한 SK 계열사를 지속 공략해 기업금융 수수료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한 금융지주 안의 시중은행과 증권사는 동일한 신용공여 한도가 있기 때문에 직접 경쟁하긴 어렵지만 독립계 대형 증권사는 활약할 여지가 있다.

      증권사는 은행보다 자기자본이 적기 때문에, 신용공여를 위해선 기관투자가를 모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은행에 비해 높은 금리를 제공할 수밖에 없어, 대기업의 자금 조달은 은행권 위주로만 진행됐다. 그러나 이제는 은행권의 틈을 비집을 가능성이 생기기도 했다. 차입 외 다양한 자금 조달 수단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선 증권사의 활용도가 더 높다. 

      올해 들어 기업금융 신디케이션이 수월해진 것도 증권사에는 긍정적인 요소다. 그간 부동산 중심의 대체투자를 선호해 왔던 연기금·공제회들은 최근 인수금융 중심의 기업금융 투자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적정 금리만 제시하면 재매각 부담 없이 거래를 주선할 수 있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최근 은행이 관리하고 있는 SK 그룹사별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한도에 가까워진 상황"이라며 "나머지 영역은 사모펀드, 증권사 등 캐피탈 마켓(자본시장)의 영역으로 나올 수 있다고 보고, 하반기를 위해 (신디케이션 등)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