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이어 공조사업까지…글로벌기업 사업조정 M&A의 단골손님 된 삼성전자
입력 2024.03.26 11:28
    한종희 부회장, 올해 주총서도 M&A 의지 재확인
    공조, 전장, 바이오 등 각종 M&A 후보 거론되지만
    글로벌 기업 사업조정서 필요 없어진 것이 대부분
    고민 많고 전략 방향성은 모호한 삼성전자 현상황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가 수년간 공언해 온 대형 M&A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환경이 갈수록 엄혹해지는 상황이지만 삼성전자의 사업 방향성이 선명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대형 M&A는 외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사업 조정 과정에서 추진하는 M&A에 단골손님이 되는 것도 썩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은 삼성전자가 존슨콘트롤즈 냉난방공조(HVAC) 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고 보도했다. 공조 전문기업 보쉬와 레녹스 등이 경쟁자이며, 예상 가격은 60억달러(약 8조원) 수준이라고 거론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주총회에서 공언한대로 조만간 성과가 날지 관심사다.

      해당 사업부는 빌딩 및 산업용 공조장비를 공급하고 에너지 절감 컨설팅을 하고 있다. 반도체, 제약, 상업용 빌딩, 화학공장 등 고객군이 다양하다. 지난달 ASML은 '2040년까지 모든 공급망에서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며 삼성전자 등 고객사를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 M&A에 성공하면 주력 고객사의 탄소 배출량 관리는 물론, 삼성물산이 준비하고 있는 EPC솔루션과도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존슨콘트롤즈 HVAC를 인수하면 긍정 효과도 있겠지만 매력적으로 볼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결국 공조사업인데 주력인 반도체(DS), 기기경험(DX) 중 어느 쪽에 붙여야 할지 모호하다. 결국 해외에서 건물 개발 전부터 영업을 해야 하는데 삼성전자는 B2C보다 B2B 영업에 약점을 보여왔다. 2014년 인수한 미국 공조회사 콰이어트사이드 인수는 사실상 실패로 결론이 났다.

      한참 대형 M&A를 공언하던 때처럼 돈이 넘치는 시기도 아니다. 100조원을 훌쩍 넘었던 현금은 이제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미국, 중국, 브라질 등 각지에 흩어져 있다. 그나마 여력이 있는 곳은 미국 쪽이다. 평택 반도체 설비 투자,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 파운드리 투자 등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수년 전 하만 인수가보다 작은 8조원이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오랜 공백을 깨고 선언할 대형 M&A로 보기는 어렵다.

      삼성전자는 이 외에도 여러 건의 글로벌 M&A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업 영역은 제각각이다. 최근 하만을 통해 콘티넨탈의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차랑용 디스플레이 등 인수할 가능성이 거론됐다. 작년엔 일렉트로룩스나 월풀 등 글로벌 가전회사 인수에 대한 언급이 시장에서 오갔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젠 바이오사업부 인수에 관심을 가졌다. 자의반타의반 원매자로 이름이 거론되거나, 혹은 매도자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도 HVAC 인수를 적극 추진하는 단계로 보긴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삼성전자의 사업 구상과 M&A의 방향성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메모리, 파운드리 할 것 없이 경쟁자들에 치이고 있고 AI는 출발 자체가 늦어지며 주도권을 놓쳤다. 아쉬운 부분은 한 둘이 아닌데 이를 M&A로 따라잡으려니 안에서보다 밖에서 추파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잠재 M&A 대상들의 면면도 아쉽다. 하나 같이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지만, 냉정히 보면 이들이 사업 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필요 없어진 것들의 인수 후보로 삼성전자가 거론되는 것이다.

      존슨콘트롤즈는 고부가가치가 있는 AI 스마트 빌딩 솔루션에 집중하기 위해 HVAC 사업을 내놨다. 콘티넨탈의 전장 사업도 테슬라 등 전기차 사업이나 엔비디아 같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사업 사이에서 고전하다가 작년 하반기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바이오젠 사업부도 '바이오'의 본체라기보다는 '영업망'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1등 사업을 지키고, 새로운 1등 사업을 발굴해야 하는 위치인데 이런 사업들을 인수해서는 반전의 기회를 잡기 힘들다. 직접 원해서 샀던 하만조차 본궤도에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쓸 수 있는 돈을 정해두고 시장에 있는 매물들을 보는 것은 차라리 가만 있는 것만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M&A를 한답시고 배당에도 소극적이었는데, 경쟁력이 뒤처지는 제조사를 산다면 비판은 불보듯하다.

      한 글로벌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대형 M&A를 한다면서 투자가들의 배당 확대 요구에 소극적이었는데 그 결과가 단순한 제조업체 인수라면 시장이 곱게 볼 리 없다"며 "배당을 하기 싫어 그저 그런 매물들을 살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