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넘치고 '정보'는 제로…中 알리·테무 공습에 韓 절대강자 쿠팡도 진땀
입력 2024.03.27 07:00
    물류센터 직접 확보하는 알리·마케팅비 쏟아붓는 테무
    'C커머스' 신비주의 전략에 쿠팡 등 韓업체 '속수무책'
    韓정부 원조 나섰지만…'외교 문제'로 번질까봐 우려
    공격적인 中업체 투자에 IB업계는 일감 기회 노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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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국내 확장세가 무섭다.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 상품을 대상으로 10억원어치 제공한 랜덤 쿠폰행사에는 첫날에만 17만 명이 넘게 몰렸다. 지하철 광고판은 한국 연예인을 내세운 알리익스프레스 광고로 도배됐고, 온라인에선 어디든 ‘테무(Temu)’ 배너 광고가 뜨고 있다. 

      이른바 ‘C-커머스(China와 전자상거래의 합성어)’의 공습에 국내 유통가는 비상이다. 국내 이커머스 ‘1위’를 굳힌 쿠팡은 다급해졌다. 증권가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성장에 네이버의 커머스 사업 성장이 우려된다는 관측도 나온다. 안 그래도 이커머스 사업 성장에 고전 중인 신세계와 롯데 등 기존 유통 대기업들은 사실상 대응책에 나서기도 벅차 보인다. 

      C커머스의 한국시장 공략은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 뒤따르고 있다. 그만큼 이번에는 한국 시장을 ‘제대로’ 파고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알리바바그룹은 한국 정부에 향후 3년간 11억달러(1조44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한국 시장에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알리바바가 한국 물류센터 구축을 공식화한 것은 2018년 국내 시장 진출 이래 6년만이다.

      알리바바그룹은 2억달러(2600억원)를 투자해 올해 안에 한국에 통합물류센터를 지을 예정이다. 면적은 18만㎡(약 5만4450평)로 축구장 25개 규모에 이른다. 이는 쿠팡의 최대 물류센터인 대구 물류센터의 2분의 1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이 정도 규모를 확보하려면 알리바바 자체적인 구축뿐 아니라 기존 업체들에 투자하는 거래도 진행 중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국내 사업을 확장하면서 인력 채용도 활발하다. 알리바바는 한국 경쟁사의 홍보, MD, 패션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국내 유통 인력을 전방위적으로 채용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유통업계에서는 ‘중국 업체에서 연봉 얼마를 제시했다’는 등의 소문도 계속되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선 인력유출 긴장감도 오르는 분위기다. 

      그동안 일부 해외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노려왔다. 하지만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최강자인 쿠팡과 네이버가 굳건한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어 업체들이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C커머스의 공세에 대해 국내 유통업체들은 ‘정보가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매출 등 기본적인 수치 등은 알려진 바지만 한정적이기 때문에 ‘대응책’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알리바바그룹은 알리익스프레스 모회사로 홍콩증시와 뉴욕증시에서 이중 상장돼 있고, 테무의 모회사 핀둬둬홀딩스(PDD)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모회사만 상장돼 있고, 글로벌 시장 대상이지만 실질 경영 및 사업은 중국에서 영위하고 있어 구체적인 정보가 알려진 바가 없다. 

      가장 기민하게 움직이는 쿠팡조차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공세에 구체적인 대응을 준비하기 힘든 분위기가 전해진다. 그러니 롯데나 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앞서 미국시장 투자를 늘려온 테무는 올해에도 미국에서 ‘가장 비싼’ 광고인 슈퍼볼 광고를 진행했다. 연간으로는 조 단위의 마케팅 비용이 추산되는 가운데 해외에서도 테무의 마케팅 비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테무가 어떤 식으로 ‘돈을 붓고 있는지’도 파악이 어렵다. 컨설팅펌 등 업계에서 분석한 자료들도 자체 추정한 수치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국내 유통업체들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는 결국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뿐이다. 중국 업체들이 최저가 공세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고 셀러(판매자)들까지 확보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이미 중국 업체들이 ‘최저가’ 명목으로 공산품 가격대를 낮추면서 국내 제조업체 근간이 뒤흔들린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도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담 조직을 만드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응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정부는 해외 직구 면세 한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이들의 확장과 함께 짝퉁, 개인정보유출, 쪼개기 구매 논란 등이 확산되자 통관, 관세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다. 

      유통 이슈가 외교적인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문제다. 과거 국내 유통가를 초토화한 사드(THAAD)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보복 조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까지 나서서 중국 업체들의 확장을 막는다면 어떤 후폭풍이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공시 정보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업 전략이나 방향성이 (중국 업체에도) 다 알려진 상태지만, 국내 업체들 입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전략 등을 알고 대응할 방안이 막막하다”며 “알리바바보다 테무가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알리바바만 판을 깔고 있었지만 테무가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알리바바가 중국 정부에 의해 통제를 당한 점을 고려하면 테무는 향후 더 신비주의 전략으로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의 전략적 공세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란 예상이다. 중국 업체들이 최근 유독 한국 시장을 집중하는 이유에는 중국 내수 침체가 꼽힌다. 중국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잉여생산물을 소화할 시장 필요성이 떠올랐다. 북미 쪽은 이미 진출했고, 다음 테스트베드로 아시아에서 큰 시장인 한국에 집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다. 

      알리바바 측이 한국 정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는 국내 셀러들의 우수 상품을 발굴하기 위한 소싱(조달) 센터를 설립하고, 오는 6월 한국 셀러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판매 채널도 개설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국내 유통업체들은 셀러 이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1번가는 처음으로 셀러 대상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했고, 쿠팡과 G마켓 등도 각종 셀러 우대책을 내놨다. 

      유통업계가 떨고 있는 상황에서 IB(금융투자)업계는 중국 이커머스의 투자 계획에 주목하고 있다. 11번가가 다시 매각을 진행하고 있어 알리바바가 인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지도 관심이다. 물류 투자를 확장하고 있어 기존 국내 물류 기업들과의 협력 혹은 투자 기회도 거론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알리바바가 이번에는 국내 시장에서 여러 딜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데,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한국 시장 확장을 꽤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하다”며 “국내 업체들도 거래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고,매각 등 투자가 필요한 업체들이 많다 보니 (중국 업체가) 직접 한국 기업 투자에도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