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 고갈에 '기업대출' 달려드는 금융권...경쟁 심화 '불 보듯 뻔해'
입력 2024.03.28 07:00
    사정 급한 SK·돈 필요한 롯데·일벌인 한화 등 기업 대출 수요↑
    정책 기조도 기업 지원하는 분위기…올해 먹거리는 기업금융
    지난해 하나銀이 기업 대출 대폭 늘렸고…올해는 신한·우리銀(?)
    증권사서도 파생 딜 노리는 중…기회 엿보는 독립계 대형 증권사
    사모대출펀드(PDF)까지 대기…유동성 부족한 틈 메우겠단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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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리가 지속되며 금융권에선 수익원이 마땅치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금리 수혜주였던 은행마저 이익 전망이 꺾이면서 각자 숨죽인 채 활로를 모색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먹거리로 꼽히는 건 '기업 대출'(개인사업자 제외 법인) 부문이다. 경기침체기에 자금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고, 정책금융이 필요한 분야기도 하다. 사실상 올해 자산확장이 가능한 유일한 시장을 두고 은행과 증권사, 시중에 사모대출펀드까지 대출 파이를 놓고 치열한 경쟁전이 예상된다. 

      주요 금융지주의 202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그룹의 신용공여 규모 총합은 17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2023년까지 6조8600억원이 늘면서 3대 금융지주를 이용한 대기업 중 신용공여 규모가 가장 크게 증가했다. 신용공여 증가폭 2위는 롯데그룹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은행권의 자금지원 규모는 11조2700억원이고 2021년 보다 약 4조원 많아졌다. 

      자금 사정이 급한 곳으로 알려진 SK와 롯데가 역시나 신용공여 증가 규모도 가장 컸다. SK는 2차전지 설비투자와 관련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실적이 부진해 은행권 의존도가 한계에 이르렀다. 롯데는 그룹의 캐시카우인 롯데케미칼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업황 악화로 계열사인 롯데건설에 유동성 문제가 생기자 금융권 도움으로 어렵게 난관을 타개했다.  

      재계의 신흥 라이벌로 꼽히는 HD현대그룹과 한화그룹이 차례로 신용공여 증가가 큰 기업 3, 4위에 이름을 올렸다. HD현대와 한화의 2023년 신용공여 규모는 각각 10조3400억원, 8조400억원이고 지난 2021년 대비 3조3500억원, 2조9400억원 늘었다. 경쟁적인 대출 확장세가 눈에 띈다. 조선업을 비롯해 다양한 사업에서 운전자본 및 신사업에 대한 설비자금 수요가 큰 것으로 풀이된다.

      LG그룹은 2023년 신용공여 총합 10조8400억원, 증가폭 2조500억원으로 5위를 기록했다. 2차전지업을 영위 중인 LG에너지솔루션의 설비투자 부담이 만만치 않은 영향이다. LG화학의 LG엔솔 지분 매각설이 끊임없이 돌고 있는데, 주력 사업에 투자할 금액을 은행에서 차입형태로 마련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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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침체가 전망될수록 기업은 되도록 자금을 확보해두려고 한다. SK나 롯데처럼 그룹 곳간사정이 안좋아지면서 금융권의 자금지원이 필수불가결해질 수도 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기업 대출을 장려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정부와 은행권은 지난달 5조원 규모의 중견기업전용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대기업들이 금융기관 차입ㆍ대출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며, 기업대출 시장은 지난 3년간 자산 규모가 성장한 유일한 시장이 됐다. 올해 들어선 은행 외에 타 금융기관들도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벼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권은 기업 여신을 빼놓고 이익 증가를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요 은행은 올해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1.5~2%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금융당국에 보고했다.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율이 경상성장률 이내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가계부채가 거시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거나 금융안정을 저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최근 기업 대출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나은행의 작년 기업대출 잔액은 158조원으로 1년새 14.5% 성장해 증가폭이 가장 컸다. 경쟁사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신한은행은 올해 우량 차주에 대한 여신을 적극 늘리기로 했다.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선언한 우리은행도 기업들에 저리로 대출을 해주겠다고 공격적 영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증권가에선 은행권이 소화하지 못한 기업 대출 물량을 눈여겨보는 분위기다. 금융지주 안의 은행과 증권사는 동일한 신용공여 한도를 적용 받기 때문에 경쟁하기 어렵지만 비은행계 대형 증권사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롯데건설의 차환용 PF펀드 조성 당시 메리츠증권을 비롯해 비은행계 대형 증권사등은 물 밑으로 다양한 안을 제안하며 참여 기회를 활발히 모색한 것으로 알려진다.

      증권사들도 올해 기업금융(IB) 및 부동산금융(PF) 부문이 크게 축소하며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천수답(天水畓)식 브로커리지는 수익 예측이 어렵고, 그간 힘을 쏟던 자산관리(WM) 부문은 잇딴 사모펀드ㆍ파생상품 금융사고로 인해 영업 드라이브를 걸기 어렵다. 그나마 성장하고 있는 부문이 운용(트레이딩) 부문과 기업 신용공여 등 여신 부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신증권이 제3자배정 우선주 증자를 통해 급하게 자기자본 3조원 요건을 맞춘 것도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만 허용되는 기업 신용공여를 시작하기 위한 게 아니겠느냔 평가가 나온다"며 "지난 2021년 자기자본의 2배까지 신용공여 한도가 높아졌고, 중소ㆍ중견기업 관련 기업금융 및 신용공여엔 특례가 적용되기 때문에 실적에 상당부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대출을 하는 사모대출펀드(PDF)에 대한 국내 큰손들의 관심도 높아지며 창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국민연금은 최근 조직을 정비하면서 사모벤처투자실 산하에 사모대출투자팀을 신설했고 미국계 사모대출전문회사인 뮤지니앤코도 한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은행과 증권사의 유동성이 흘러가지 못하는 틈을 메우겠다는 심산이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PDF 펀드 설정이 증가하면서 국내 기업에 대한 대출도 늘고 있는 걸 체감한다"라며 "주로 사모펀드 운용사(PEF)가 인수하는 기업들에 대해 인수금융을 투자하고 있다. 인수금융 이자율 상승 등을 고려해 딜 소싱에 나선다"라고 말했다.

      기업대출이라는 먹거리를 두고 은행뿐 아니라 복수의 경쟁자들이 달려드는 모양새다. 이렇다보니, 과연 올해 기업대출을 늘리는 게 정말 수익성에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는 시선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기업대출을 크게 늘린 은행권의 경우 경쟁사의 우량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금리 경쟁을 불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기업대출을 크게 늘린 한 은행에 대해 금융권에서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 역시 경쟁 과정에서 제시한 금리의 역마진 부담 때문이었다"며 "고금리와 부동산 침체로 가계대출은 역성장 중이고, 개인사업자(SOHO) 대출 역시 부실이 표면화되며 자금을 빌려줄 수 있는 곳이 기업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