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TF 체제에 초격차 흔들린 삼성전자…'실세' 정현호 부회장은 뭘 했나
입력 2024.03.28 07:00
    정 부회장 TF 체제 승승장구할 동안 증폭된 리더십 불안감
    삼성전자 초격차 상실로 이어진 책임지지 않는 컨트롤타워
    인텔 몰락과 유사…안팎 진단 비슷하지만 정현호 TF는 존속
    시장 재편·인력 유출 불안 속 TF 못 버리는 배경 두고 해석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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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가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서고 있다. 미래 시장 주도권 다툼에선 주역이 아니고 수십 년 지켜 온 왕좌는 흔들리고 있다. 그 와중에 인재들은 경쟁사를 찾아 떠난다는 소식이 쏟아진다. 파열음은 매년 커지는데 대선단을 이끄는 주체는 불분명하다.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이 필요한데 시장 기대는 사법 리스크를 반쯤 털어낸 오너와 리더십을 의심받는 이사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태스크포스(TF)라는 비상 경영체제를 7년째 유지중이다. 그리고 위기의 진원지로 책임 없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해 온 컨트롤타워, 사업지원TF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공백기 오너를 대리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사업 전반을 조율하고 관리한 실질적 주체인 탓이다. 그간 TF를 이끈 정현호 부회장의 공과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M&A·투자 계획 올려도 사업지원 TF 거치면 행방불명

      정현호 부회장은 미국 하버드 MBA 유학 때부터 이재용 회장과 연을 맺은 최측근으로 꼽힌다. 과거 삼성전자 비서실부터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을 두루 거쳤고 이 회장 경영 수업이 본격화한 시기부터 계속해서 그룹 전반 사업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미전실 해체로 사임했다가 2017년 말 삼성전자가 사업지원 TF를 출범하자 사장직으로 복귀했고 현재까지 7년째 실질적인 그룹 2인자로 통하고 있다. 

      이 기간 정 부회장이 영전하며 TF는 부회장급 조직으로 격상했다. 이사회 중심 경영을 내건 삼성전자의 거버넌스 왜곡과 맞바꾼 악수란 평이 뒤따랐다. ▲TF가 그룹 전반 전략적 판단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을 부여받았지만 ▲미등기 임원인 정 부회장이 이사회를 대신해 책임을 질 필요는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과 TF가 이 회장 공백기 아무런 결정을 내려주지 않자 누적된 내부 불만은 '사업지연 TF' 또는 '계열사 유리천장'이란 자조적 표현으로 회자하고 있다.

      인수합병(M&A) 시장 한 관계자는 "같은 미전실 출신으로 TF에 복귀한 안중현 사장 대신 UBS에서 임병일 부사장이 합류하게 됐을 때도 실질 관리자인 정현호 부회장이 곳간을 열어줄 것이란 기대는 없었다"라며 "실제로 수년 동안 M&A나 전략 투자 관련 여러 안건이 보고됐지만 중간에 흐지부지되거나 실종된 사례가 대부분이라 '블랙홀', '사업지연 TF'란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2017년 하만 이후 대형 M&A 명맥이 끊긴 것부터 ▲자체 중앙처리장치(CPU) 코어 개발팀 해체와 같은 프로젝트 중단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응 실기와 범용 D램 공정 전환 지연 등 많은 과정에서 '재무통' 정 부회장과 사업지원 TF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M&A의 경우 대체로 보고에 대한 피드백이 이뤄지지 않았고 당장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업 전략은 비용 문제를 이유로 반려됐다는 것이다. 전부 현재 삼성전자 안팎에서 불거진 위기감과 맞닿아 있는 사안들이다. 

      주력 사업의 초격차가 유지될 당시만 해도 TF 관리 체제의 부작용은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22년 갤럭시 시리즈의 성능 조작 사태 이후 대응 실패를 시작으로 매년 적신호가 켜지자 내부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자계열 관리를 넘어 삼성전자가 초격차를 이어가기 위한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도 TF가 유리천장으로 작용했다는 점이 시차를 두고 드러났다. 

      한 외국계 기관투자가는 "HBM 외 범용 D램 공정 전환 지연, 낸드 감산 시점 오판부터 현재 유의미한 M&A가 어려워진 상황까지 기관에선 사업지원 TF의 그늘을 지목하고 있다"라며 "투자가들은 이제 삼성전자가 M&A나 전략 투자 등 방식으로 쌓아둔 현금을 굴릴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배당이라도 하라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텔 몰락 당시와 비교까지…TF 존속 배경에 쏠리는 눈

      반도체 업계에선 과거 인텔의 몰락을 자초한 전문경영인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전 최고경영자(CEO) 사례와 비교하기도 한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전반이 분업화하는 게 트렌드가 된 상황에서 인텔이나 삼성전자나 같은 종합반도체기업(IDM)은 반도체 공룡으로 분류된다. 몸집이 비대해지는 과정에서 의사결정 구조가 꼬여가는 과정이 7년 전 인텔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컨설팅펌 한 관계자는 "내부 실무자들이 위기의식을 느껴도 보고가 올라가면 중간에서 사라지거나, 단기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는 사례 등이 과거 인텔 몰락과 비교되는 것"이라며 "다른 게 있다면 현재 인텔은 경영진 교체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고 삼성전자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 채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HBM 대응 실기에 따른 파장이 예상보다 거세자 연말 쇄신 인사가 거론됐지만 삼성전자는 변화 대신 안정을 택했다. 사업지원 TF 체제에서 리더십 불안이 크게 늘었다는 안팎 진단에도 재판이 진행중인 이재용 회장의 거취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미전실 출신이 아닌 전영현 부회장이 신설 미래사업기획단을 맡은 정도가 유의미한 변화로 꼽히지만 정 부회장과 사업지원 TF의 존재감을 넘어서진 못하는 상황이다.  

      인공지능(AI) 시장 개화로 인한 시장 주도권 변화, 그리고 최근 본격화한 인력 유출 등 문제를 감안하면 안일한 행보란 지적이 적지 않다. 동시에 정 부회장의 사업지원 TF 체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여러 해석이 오가고 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최근 업황 회복 기대감 및 순환매 흐름으로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고 있지만 주주들을 비롯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여전하다"라며 "일부 경영진은 범용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회복하면 또 한 번 위기감을 덮고 넘어갈 수 있을 거란 시각까지 내비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TF 문제를 방치하는 것도 그 일환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삼성물산 불법 합병에 대한 이 회장의 1심 무죄 판결 이후로 삼성물산과 삼성SDS 및 금융 계열사까지 그룹 전반 움직임이 바뀌고 있다"라며 "선거를 앞둔 시기인 데다 삼성전자 출신 인사의 정계 진출도 예고됐다 보니 TF 체제에 남겨진 역할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라고 전했다.

      해석은 제각각이나 오랜 TF 체제의 부작용이 위기로 이어졌다는 안팎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오너를 대신해 판단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TF가 이사회를 관리하는 엇박자가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초 TF 체제는 이 회장 사법 리스크로 인한 부재를 대비해 만들어진 임시 컨트롤타워였다. 시장에선 결국 이 회장이 직접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