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한화오션의 자존심 싸움 변질된 '차기 구축함' 수주 사업
입력 2024.03.29 07:00
    취재노트
    군함 매출 비중 적고, 함정 기술 뒤처지는 현대중공업
    KDDX 입찰 사업에서 한화오션과 경쟁할 명분 적어
    결국 그룹간 자존심 싸움만 남았다는 평가
    방사청이 '방관자'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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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사이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한화오션은 이달 4일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도 유출 사건과 관련해 임원 개입 여부를 수사해달라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장을 제출하고, 이례적으로 기자설명회까지 개최했다. HD현대중공업은 "이해할 수 없는 억지주장"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2~2015년 사이, KDDX개념설계도 및 기타 군사기밀을 몰래 취득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해 HD현대중공업은 2025년 11월까지 함정 사업 입찰 참여 시 1.8점 감점 적용을 받고 있다.

      KDDX 개념설계도는 3급 군사기밀로 중대한 사안인 만큼, HD현대중공업의 함정 사업 입찰 참여 제재 계약심의회까지 열렸으나 최종적으로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인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을 내릴 수 없다"며 '행정지도' 즉, 입찰 자격을 유지하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올해 하반기 진행될 KDDX의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입찰 경쟁에서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과 맞붙게 됐고, 기자설명회를 개최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오션은 해당 설명회에서 HD현대중공업과 소송전을 벌이게 된 이유가 '밥그릇 싸움'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KDDX 사업 자체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다. KDDX 사업은 개발비와 총 6척의 건조비를 모두 포함해 약 7조8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지만, 한 사업체가 6척을 모두 건조하는 건 불가능하다. 업계에 따르면 양사가 각각 3척 혹은 4척과 2척 정도로 나눠서 건조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군함 사업은 매출만 놓고 봤을 땐 주력 사업으로 보기 어렵다. 양사 모두 군함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미만으로 파악된다. 특히 국내 함정 사업의 경우 국방부가 발주처라는 특성상 영업이익률도 높지 않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이 KDDX 사업에 목숨을 거는 상황이 납득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화오션의 경우 종합 방산 기업을 표방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HD현대중공업은 LNG선 등 상선(商船)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인 데다 함정 기술은 한화오션에 뒤처진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맡은 기업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이번 갈등이 향후 함정 수출을 위한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번 경쟁의 본질은 HD현대와 한화의 자존심 싸움뿐이라는 평가는 피할 수 없다. HD현대 내부에서 "'현대'가 '한화'에 밀리는 상황을 연출할 수 없다"는 각오가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두 그룹 간 자존심 싸움에 정작 KDDX에 대한 관심은 묻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DDX는 해군이 2009년부터 추진한 숙원 사업으로, 미래 해군 전력의 핵심이다. 미국산 '이지스'(Aegis)에 버금가는 전투체계를 85% 이상 국산화해 개발한다는 상징성까지 있는 사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사청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함정 매출만 보면 미미한 수준이라 특수선에 목숨을 걸 이유가 별로 없다. 이번 싸움에서 빠질 만한 명분만 준다면 빠질 수 있는 상황인데, 방사청이 '누가 이기나' 방관자 역할만 하고 있다"며 "방사청이 중심을 잡고 정돈을 해나가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