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 '표대결' 승리한 한미그룹 형제, 그룹 정상화 이뤄내야 진짜 '승리'
입력 2024.03.29 07:00
    취재노트
    형제측, 주총 '표대결'은 승리했지만
    '새로운 한미 만들기' 숙제는 이제 시작
    '소중한 한표' 준 주주들에게 보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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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두 달간 한미그룹 오너가 모녀(송영숙 회장·임주현 사장) 측과 형제(임종윤·임종훈)의 ‘집안 싸움’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지난 1월 한미사이언스가 OCI그룹과의 통합 계획을 밝힌 뒤 모녀와 형제는 쉬지않고 대립하며 법적 공방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총이 가까워지자 양측의 본격적인 쌍방 공격이 시작됐다. 하루가 다르게 판세가 변했다. 주총 하루 전인 27일 7.66%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송 회장 측을 지지하면서 소액주주의 표심을 누가 잡느냐가 표대결 승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변수로 남게 됐다. 말 그대로 주총 전날까지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웠다.

      결전의 날, 올해 주주총회 시즌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분쟁은 반전(?)인 형제 측의 승리로 끝이 났다. 주총 이후 OCI그룹도 "주주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통합 절차 중단을 밝혔다. 

      ‘집안 싸움’은 일단 일단락됐지만, 향후 한미그룹 앞에 놓인 과제는 이제 시작이다. 이번 오너가의 경영권 분쟁은 시장에 수많은 의문과 의아함을 안겼다. 창업주 사망 이후 상속세 이슈에서 시작된 이번 오너가 경영권 분쟁은 이사회의 ‘깜깜이 통과’로 진행된 OCI그룹과의 저평가 합병, 사모펀드(라데팡스파트너스)의 의문의 역할(?) 등이 부각되며 현재 국내 기업들의 약점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미그룹이 보여준 ‘허술함’에 시장은 실망감과 허탈감을 보였다. 

      민감한 안건이 포함됐지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것에 비해 주총 진행 과정은 시가총액 3조원에 이르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현장에 참석한 취재진은 물론이고 주주들도 '이런 주총은 오랜만이다'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한미사이언스는 예년에는 서울 송파구의 본사 건물에서 주총을 진행해왔지만 올해 주총은 ‘법적 본사’인 화성 팔탄공장 인근인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호텔에서 열렸다. 형제 측이 주총 장소 선정 배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주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취재진이 몰릴 것이 예상된 바, 상대적으로 교통편이 불편한 곳을 주총 장소로 선택한 ‘저의’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한미사이언스 측은 “표 대결이 예상된만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상법과 정관에 따라 ‘법적 본사’ 가까이 주총 장소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공시된 개회 시간인 9시를 훌쩍 넘긴 오후 12시 30분께 주총이 시작됐다. 출석 주주 위임장 집계가 지연되면서다. 주총이 시작된 이후에도 원활한 진행이 쉽지 않았다.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이 불참하면서 신성재 전무가 의장을 맡았는데, 사회자가 “당사의 대표이사가 일신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으므로 당사 정관 규정에 의거해 신성재 전무이사가 의장직을 맡아주시겠다”고 소개하면서 반박을 받았다. 

      신 전무가 등기이사가 아님에도 ‘이사’라고 소개되면서 임종윤 사장이 “전무님이냐, 전무이사님이냐”고 물었고 신 전무가 “이사는 아니고 전무다”라고 답했다.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는 “등기이사가 아닌데 왜 이사라고 하나. 거짓말인가. 사기를 치는것이냐”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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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사이언스 주총장 모습(사진=이상은 기자)

      이번 주총의 ‘하이라이트’인 이사 선임 표결 발표는 오후 3시 반이 넘어서야 진행됐다. 회사 측이 표결 과정의 투명성을 위한 검토절차 등을 이유로 발표를 계속 지연하면서다. 그 사이 일부 주주들은 주총장을 떠났고, 오전 10시쯤 모습을 드러낸 이우현 OCI그룹 회장도 2시 반쯤 주총장을 떠났다. 주총장에선 주주들이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며 항의하는 등 고성이 오갔다. 

      긴 기다림 이후 이사 선임안에 대한 표결을 밝히자 주총장과 취재진들 사이에서는 놀라움의 탄성이 나왔다. 형제 측 인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승리를 축하했다.

      주총이 끝난 뒤 임종윤·종훈 형제는 취재진들과 만나 “네버 어게인(Never again)”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종윤 이사는 오늘 주총 과정을 언급하며 “오늘 회사에 너무 서운했다. 우리의 한미사이언스가 이 모습까지 왔구나 싶어 너무 죄송하다”며 “한미 브랜드를 긴급하게 복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머니와 여동생이 이번 계기로 실망을 했겠지만 저는 같이 가길 원하고, 회사가 여러 할일이 많아서 (회사를) 나가신 분들도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형제 스튜어드십코드’를 주장한 임종윤·종훈 이사가 OCI와의 통합을 막고, 이사회에 입성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과연 정말 ‘승리’한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그동안 한미그룹은 시장에서 오너가의 경영 능력이나 면면이 크게 드러난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시장에서는 ‘과연 누가 경영능력이 있는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임종윤 이사가 말했듯이 이제 시장에서 ‘한미약품그룹’ 브랜드 이미지 복구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임 이사는 주총 뒤 이번 분쟁 과정에서 고마웠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을 언급했는데, 가수 조용필도 의결권을 위임해 준 주주 중 한명이라며 "정말 소중한 한 표를 주셨다"고 말했다. 본인들이 내건 "한미그룹을 정상화하고, 1조원을 유치해 기업가치를 50조원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소중한 한 표'를 준 주주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