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현대차 방산 수출 지원 동참해야 하는 시중銀…폴란드도 은행권도 난색
입력 2024.04.02 07:00
    폴란드 방산 수출, 수은 증자에도 시중은행 지원 불가피
    낮은 수익성과 정치적 문제까지 고려할 상황 많은 시중은행 난색
    폴란드는 "시중은행 대신 국책은행이 지원해달라" 요구
    한화에어로·현대로템만을 위한 전방위 지원이라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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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폴란드 방위산업(방산) 수출 2차 계약에 시중은행의 대규모 금융지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의 자본금 확대에도 폴란드가 원하는 수준의 금융지원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인데, 시중은행과 폴란드 모두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중은행은 저리 대출로 인한 낮은 수익성과 생소한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존재하고, 폴란드는 시중은행이 아닌 국책은행의 지원만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은 국내 방산 업체들과 대규모 무기 계약을 체결한 폴란드에 약 10조원 규모의 추가대출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달 16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성일 국방부 국방전력자원관리실장은 폴란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시중·민간 은행들이 어떤 형태로든 자금을 모으기로 합의해 75억달러(약 10조원)를 추가로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5대 시중은행과 회의를 열어 폴란드에 대한 방산수출 지원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회의에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등 방산 업체의 수출대금을 5대 시중은행이 신디케이티드론(금융단 공동 중장기 대출) 방식으로 폴란드 정부에 지원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 수출 물량 672문 중 308문, 다연장로켓 천무 288대 중 70대가 폴란드 2차 계약 물량으로 남아있다. 폴란드와 1000여대의 K2전차 수출 계약을 맺은 현대로템은 820여대 수출 물량이 남아있다. 

      시중은행은 국방부의 폴란드 수출대금 지원 요청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중은행은 한 국가를 상대로 대규모 대출을 지원한 경험이 없는 데다, 폴란드가 원하는 수준의 금리를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은 조달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국책은행에 비견할 만한 금리 수준을 제공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폴란드의 재정 상황을 고려해 수조원에 달하는 대출 회수 방안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평가하는 폴란드의 국가신용등급은 'A-'로, 한국(AA)에 비해 4단계 낮다.

      정부와 시중은행과의 유착관계를 의심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새 정권이 들어서면 폴란드 수출 지원에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는지 조사받을까 우려하고 있다"면서 "현 정부와의 관계나 방산업 호황 국면 등 여러 상황으로 인해 마지못해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여신을 공격적으로 유치해야 하는 시중은행의 현 상황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시중은행은 2022년 말부터 금리인상과 부동산 폭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 영업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폴란드 대출로 큰 이익을 남길 수 없다 해도, 한화그룹이나 현대차그룹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폴란드도 시중은행의 지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은 지난해 1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3조4474억원 규모 공급계약 체결에 금융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지만 폴란드가 시중은행이 아닌 국책은행을 통한 지원을 원하면서 결국 금융계약은 체결되지 못했다. 공급계약은 금융지원을 전제로 한 '조건부 계약'으로, 본격적인 계약이 체결되기 위해선 금융지원이 확정돼야 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당시 폴란드에 시중은행의 신디케이티드론 방식 금융지원을 받으면 된다고 안내했지만 폴란드 측에서 시중은행보다는 국책은행(수출입은행)이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면서 금융계약 체결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무기 수출 지원 확대로 관심이 쏠리는 상황은 수은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은행의 신용 공여가 한 산업이나 국가에만 쏠릴 경우 재무건전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과거 그리스 재정위기나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 상환 유예)을 보면 안심할 수는 없다. 수은은 2016년 조선업에 선수금 환급보증(RG)을 무리하게 발급했다가 1조5000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보고 정부 재정을 투입해 겨우 정상화한 경험도 갖고 있다. 

      국책은행의 지원이 결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이라는 대기업을 위한 것 아니냐는 시장의 볼멘소리도 존재한다. 방산 수출이 국익에 기여하는 면이 많다 해도 결국 특정 대기업에만 수출 금융을 몰아주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가가 나서서 공격용 무기 수출을 지원해주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 일인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수은은 정부의 수출허가를 받은 거래에 한해 국제협약을 준수하며 금융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