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전망에도 출자 기근 여전…M&A 시장 반등 '반신반의'
입력 2024.04.04 07:00
    매물 쌓이는데 자금줄은 가뭄…거래 침체 장기화
    IFRS17에 묶인 금융사…회수 없인 신규 출자 불가
    대기업 구조조정 본격화?…올해도 PE만 매수자로
    회수 난항이 펀드 결성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선거 치르면 숨통 틀까…"경색 해소 쉽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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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수합병(M&A)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하는 분위기다. 각종 규제로 돈이 풀리지 않고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며 팔고 사려는 곳들도 움츠러 들었다. 회수 못한 자금이 쌓일수록 자금줄은 쪼그라들고, 자금 모집이 어려워진 만큼 거래 역동성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특정 병목을 콕 집어 해소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시중금리 인하가 기대되는 상황에서도 올해 M&A 시장 반등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분기 M&A 자문시장은 기근이 본격화한 모습이었다. 1년 전 조 단위 거래가 쏟아지며 불어온 훈풍이 착시였다는 점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이다. 6조원대 HMM 매각전이 좌초한 직후라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면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M&A 시장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조적, 추세적 불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우선 IFRS17 도입이 본격화하며 금융기관 출자 여력이 크게 줄었다. 지분 출자금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RW)가 오르며 같은 금액을 투자해도 위험자산이 불어나는 속도는 몇 배나 가팔라졌다. 가령 시중은행이 비상장사 지분 인수에 100억을 출자할 경우 과거엔 장부상 위험자산(RWA)이 150억원 늘던 게 IFRS17 아래선 400억원으로 반영된다는 것이다.

      은행지주를 중심으로 자기자본비율(BIS) 관리가 도마에 오른 때다. 지난 하반기 신한금융지주를 시작으로 올 들어 4대 은행지주 전반이 서둘러 회계기준을 변경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주 아래 은행·증권·캐피탈 등 계열 금융사 전반 북(book)이 묶이게 됐다. 그간 M&A 거래에 참여하며 쌓아둔 위험자산이 하루아침에 2~3배로 덩치를 불렸으니 기존 출자금 회수 없인 돈을 내어줄 수 없는 형편이다.

      금융사들이 불어난 RWA를 상쇄할 정도의 자산성장을 노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시중은행들이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여신 확대의 한 축인 개인 대출을 포기하고 기업 대출에 목을 매게 된 상황도 이 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동시에 기업 대출이 늘었다는 건 M&A 시장에서 매물을 받아줄 주체가 마땅치 않은 문제로 이어진다.

      이런 여파는 사모펀드(PEF) 시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펀드 결성을 '닫아주는' 데 기여하던 금융사들이 움직이기 어려워지니, 연기금·공제회 등 마중물을 대야 하는 큰손 출자자(LP)들도 시장을 더 신중하게 살피는 분위기다. 더 큰 문제는 LP들의 지갑이 얇아진 게 일시적 현상이 아니란 점이다. 프로젝트 펀드 결성 난이도는 작년보다 더 올라갔다.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는 "작년 블라인드 펀드 출자 사업에 선정된 운용사(GP)들이 자금 매칭에 애를 먹고 있는데 부족한 자금이 조단위로 추정되는 상황"이라며 "일부 GP는 위탁사 지위를 반납하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내 매각자만 늘어나는 미스매칭 문제가 극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비주력 자산 매각에 시동을 건 대기업들은 올 들어 주력 사업 구조조정을 통한 선택과 집중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재무 개선이 한창인 때 기업 인수 등 선택지는 뒤로 밀려난다. 대기 중인 조단위 잠재 매물들을 인수할 곳도 마땅치 않은데 유력 원매자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매물들이 얹어지는 구도다.

      자금 모집이 어려워지면 대형 거래를 소화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MBK파트너스나 한앤컴퍼니 등 몇몇 대형 PEF로 좁혀진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조단위 거래 전반을 주도했는데 올 들어서도 팔기보단 사는 쪽 역할에 집중할지 관심이 모인다.

      다만 쌓아둔 실탄이 넉넉해도 담을 만한 대상은 많지 않으니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실제로 SK그룹 2차전지 소재사 등 손바뀜·구조조정 거래가 테이블에 올랐다가 잠정 보류된 상황으로 전해진다. 자금 모집과 투자, 회수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형사 중에서도 올해 기존 포트폴리오 관리에만 집중하겠다는 곳이 나타나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PEF 간 손바뀜 거래에 손을 댔다가 대기업들이 알짜 자산을 내놨을 때 적기 대응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보니 대형 PEF들도 장고에 들어간 듯하다"라며 "지난해엔 대형 PEF들이 드라이파우더를 소진하기 위한 거래로 그나마 시장을 받쳐줬는데 올 1분기엔 이런 움직임마저 잠잠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제한된 원매자들이 보수적으로 움직이면, 다른 쪽에선 회수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는 다시 자금모집 난이도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돈이 돌지 않아 발생한 문제다 보니 투자은행(IB)이나 법무·회계법인 등 자문시장이 영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도 제한적이란 평이 많다. 일부 외국계 IB에선 그나마 성사 가능성이 높은 미드캡(Mid-cap) 시장에서 일감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이만한 경색을 해소하자면 결국 정부 정책 차원 대응이 필요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이달 치러질 총선거 이후 마땅한 방안이 나타날 것이란 기대는 많지 않다.

      한 출자시장 관계자는 "정부도 선거를 전후해 부동산 시장 부실 관리나 고용 문제 등에만 관심이 쏠려 있어 자본시장 유동성 공급 등 문제에선 세련된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라며 "실제로 현재 금융사들이 출자시장 문제에 적극 대응하기 어려워진 배경에는 정부 부동산, 지방 균형성장, 일자리 정책 등에 이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