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포트폴리오 조정중 新파이낸셜스토리 핵심 부상한 '바이오'
입력 2024.04.05 07:00
    SK그룹, 전통 산업·산업 모두 고전하며 새 화두 필요
    바이오·제약, 자금 조달 및 성장 비전에서 중요해져
    제약사업 매각은 철회…성장성 기대 재원 마련할 듯
    향후 사업 주도는 어디에서?…후계구도에서도 주목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SK그룹 계열사들은 정기 주주총회에서 진땀을 빼야 했다. 실적 저하와 주가 부진, 불투명한 미래 전략에 대한 주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유동성이 넘치던 2021년과 지금의 환경은 차이가 크다며 파이낸셜 스토리를 수정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파이낸셜 스토리의 요체는 단기 성과가 아닌 5~10년, 혹은 그 뒤를 바라보고 사업 모델을 꾸리자는 것이었다. 전통 제조업은 물론 신산업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며 SK그룹이 생각보다 빨리 실책을 자인하게 됐다. 기존 전략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화두를 시장에 제시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SK그룹에서 가장 주목받을 만한 영역 중 하나는 바이오·제약이다.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어느 그룹, 어떤 시기를 막론하고 중요하다. 그룹의 유동성을 확보하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든 바이오·제약을 빼놓고 청사진을 짜기는 쉽지 않다.

      SK그룹은 일찌감치 바이오·제약 사업에 공을 들였다. SK팜테코, SK바이오팜, SK케미칼, SK바이오사이언스, SK플라즈마 등 계열사가 신약 개발부터 의약품 제조까지 아우른다.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사이언스는 각각 2020년, 2021년 증시에 입성했다. 백신사업을 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는 팬데믹 기간 톡톡히 수혜를 입었다. SK그룹이 위기감 속 유동성 마련에 애를 먹을 때도 SK팜테코 지분을 활용한 투자 유치는 무리 없이 성사됐다.

      SK그룹의 바이오·제약 사업 전략을 둘러싼 변화 움직임이 점차 잦아지는 분위기다.

      SK케미칼은 작년 파마 사업(제약사업부)을 매각하기로 사모펀드(PEF)와 뜻을 모았다. 바이오 역량이 약한 사업부를 판 후 친환경 플라스틱 등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는데, 올해 2월 계약 체결 직전 거래를 거둬들였다. 회사의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캐시카우를 내놓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시각이 있었다.

      그보다는 SK그룹이 바이오·제약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작년 가을 기관출자자(LP)와 금융사들은 투자 승인을 내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자본시장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평판 위험을 감수하고 거래를 중단한 데는 그만큼 그룹 차원의 중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케미칼이 제약사업을 팔지 않기로 한 것은 현금창출력이 아까웠던 면도 있겠지만 결국 이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키우겠다는 SK그룹 차원의 결단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SK케미칼은 교환사채(EB) 발행 등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지분율 67.76%)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주가는 한때 30만원을 넘기도 했지만 최근엔 공모가(6만500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가가 낮지만 키우지 않을 수 없는 사업인 만큼 회사의 성장 전략을 믿고 투자해달라는 의견을 잠재 투자자에 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이를 통해 수천억원을 조달하면 남겨둔 제약사업에 힘을 더 실을 수 있다.

      SK㈜가 SK바이오팜 지분(지분율 64.0%)을 활용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SK㈜ 바이오 투자센터장을 거친 이동훈 사장이 이끌고 있다. 역시나 모회사의 지분율이 넉넉하기 때문에 쏠쏠한 자금 조달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SK㈜는 SK바이오팜 일부 지분 매각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궁극적으로 SK그룹 내 바이오·제약 사업의 무게 중심이 어느 곳으로 모아지느냐도 관심사다. 현재는 크게 SK㈜ 산하의 SK팜테코와 SK바이오팜, SK디스커버리 쪽의 SK케미칼과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각 축의 리더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그룹 경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손을 맞잡았다. 바이오·제약 사업을 효율화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결단을 내릴지 관심이 모인다.

      SK그룹 후계 구도에서도 바이오·제약 분야의 존재감이 작지 않다. SK바이오팜에는 최태원 회장의 장녀 최윤정 씨가 있다. 작년 그룹 정기인사를 통해 전략투자팀장에선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최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는 2019년 SK하이닉스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이후 미국 원격의료 기업에서 자문역을 맡았고, 최근엔 미국에서 인공지능(AI) 의료 스타트업(Integral Health)을 창업하기도 했다. SK그룹이 바이오·제약 사업에 공을 들이는 만큼 향후 사업 협력이 이뤄지지 않겠냐는 예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