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마린에 드리운 '전통산업 IPO의 저주'...AS사업 차별성 설득이 관건
입력 2024.04.05 07:00
    기대감 낮은 레거시 기업 IPO…공모규모 크고 성장성도 그닥
    '조선업' HD현대마린, 기록 깰 수 있나…"차별성 설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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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조선 관련기업인 HD현대마린솔루션이 기업공개(IPO)에 나서면서 '전통산업 IPO의 저주'가 재현될지에 관심이 모인다. 이른바 레거시(legacy) 산업이라 불리는, 2차 산업 중심 저성장 업종 기반 기업들이 상장에 나섰다가 줄줄히 고배를 마신 경험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매출 성장이 수년간 가능할 순 있지만, 이는 업황 싸이클에 따른 것으로 동종기업군 대비 차별성을 갖긴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극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IPO 시장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결국 HD현대마린솔루션이 영위하는 선박 사후관리(After Service) 산업이 일반 선박 공업사들과 다른 점을 강조하고 차별성을 설득해야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지난 25일 HD현대마린솔루션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희망 공모가 밴드(7만3300~8만3400원) 하단가 기준 6524억원 규모의 공모 절차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대표주관사는 KB증권, UBS증권, JP모간 등 3곳이고 공동주관사는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인다. 대신증권과 삼성증권이 인수단에 포함됐다. 

      해외 기관 수요예측은 이달 8일부터 22일까지, 국내 기관 대상 수요예측은 이보다 늦은 16일부터 5영업일간 진행된다. 운용업계에 따르면 해외 투자자들은 HD현대마린솔루션의 AS 사업이 희소성이 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HD현대마린솔루션 IPO 주관을 맡은 외사들은 이같은 시각을 바탕으로 세일즈에 나설 전망이다.

      다만 국내 투자자들의 시각은 다소 갈리는 분위기다. 조선업황 호조에 따라 수요예측에는 나서는 수요가 있긴 하겠지만 조선업 자체가 레거시 산업인 만큼 향후 주가 상승 폭이 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HD현대마린솔루션은 증권신고서 사업위험에 '산업의 성장성에 비례해 수익이 성장할 것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라고 기재했다.

      일반적으로 레거시 기업들은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은 탓에 상장 흥행 기록을 세우긴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그나마 IPO 시장 분위기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오일뱅크, SK루브리컨츠(현 SK엔무브) 상장이다. 두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이룬 글로벌 수준의 대기업에도 불구, 수 차례 IPO 시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상장에 실패했다. 특히 2018년 공모를 진행한 SK루브리컨츠의 경우 실적이 성장 추세에 있었음에도 '전기차 시대에 윤활유가 얼마나 팔리겠느냐'는 논리에 막혀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성과를 냈고, 결국 상장을 철회했다.

      지난 2019년 섬유 등 소매업을 영위하던 까스텔바쟉은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3대 1을 기록했다. 공모가 밴드 최하단가보다 낮은 수준의 공모가를 받아들여야 했다. 정보통신(ICT)부문의 성장성을 실적개선 가능성의 근거로 내세우던 한화시스템도 수요예측에서 경쟁률 16.84대 1을 기록하며 공모가 밴드 최하단가로 공모가를 결정했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며 앞단에 신사업을 내세워 투자매력을 끌어올리는 기업들이 나타났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롯데렌탈은 카셰어링 업체인 그린카를, 현대중공업도 친환경 미래 사업을 내세워 조(兆) 단위 몸값을 인정받으려 했다. 한화종합화학(現 한화임팩트)도 미국 수소트럭업체인 니콜라 투자를 계기로 수소사업을 상장 추진에 활용하려 했으나 계획을 철회했다.

      당시 주목받던 성장주 중에서도 레거시 사업 성격을 띈 발행사들은 외면받았다. 보유 플랫폼의 성장성을 설득시킨 하이브나 카카오그룹 금융사들과 달리, 컬리나 오아시스마켓 등 사실상 유통사 성격에 가까운 발행사들은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비교적 최근엔 보증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보증보험 또한 기관들의 미지근한 반응에 상장 계획을 한 차례 철회한 바 있다. 케이뱅크 역시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존 시중은행과 크게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며 상장 일정을 1년 이상 뒤로 미뤄야만 했다.

      한 증권사 IPO 부문 관계자는 "주로 레거시 사업은 오랫동안 영위한 사업이다보니 대기업 계열사들이 한다. 발행규모가 클 수밖에 없는데 이에 비해 성장성이 있어보이진 않다보니 상장을 하더라도 흥행이 잘 안 되는 편이었다"라고 말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상장 공모가 흥행하기 위해선 기관들을 대상으로 선박 AS 사업에 있어 차별성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현재 기관들을 대상으로 자사 만의 부품·기자재를 사용해 AS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등 배타성을 확보 중이라고 설명하는 등 차별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2016년 설립된 이후 2021년부터 매출 성장세를 보여준 만큼 향후 수익성이 지속될 수 있는지 확인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렇다보니 그룹 계열사로서의 한계로 거론되는 부분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HD현대마린솔루션에 'HD현대 그룹사 캡티브(Captive) 비중'이 크다는 지적이 이어진 바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 측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HD현대 캡티브 외 선박도 취급할 수 있으나 HD현대 캡티브 선박의 영업상 이점이 있다"라며 "HD현대 조선·해양 계열회사의 수주 및 이행 실적에 부정적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당사의 영업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라고 기재한 상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HD현대마린솔루션이 점유한 캡티브를 가지고 어떻게 성장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설득이 이뤄지는 작업이 필요하다"라며 "공모주 시장이 좋고 조선업황 기대감 덕에 흥행 가능성은 있어보이긴 하지만 밸류가 다소 높게 산정된 것 아니냐는 기관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HD현대마린솔루션의 AS 사업은 국내에선 사실상 경쟁사가 없다. 희소성이 있긴 하지만 레거시 사업과 연관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선박 수리업 아닌가'라는 의문은 계속 따라다닐 것"이라며 "일부 기관들은 해당 사업에 대해 어떻게 IR을 할지 여부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