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무성한 SK그룹 사업조정, 6월 확대경영회의가 분수령
입력 2024.04.24 07:00
    올해 SK그룹발 '큰장' 예상됐지만 아직 잠잠
    쫓겨서 매각하기보다 중장기 전략 고민 우선
    핵심은 배터리…계열사간 관계도 변수
    외부 컨설팅 거쳐 상반기 중 결론 도출할 듯
    6월 확대경영회의가 '새 시대' 계기될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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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이 '확장' 중심의 파이낸셜 스토리를 수정하기로 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어떤 사업을 줄이고 정리하느냐로 모아졌다. 연초부터 자문사들을 중심으로 예상 매물 리스트를 마련하고 거래 발굴에 힘쓰고 있는데 아직 그룹 차원의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간 벌인 사업이 많고 계열사간 사업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6월 확대경영회의 이후에야 사업조정을 비롯한 그룹의 전략 실행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말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되고 그룹 기조가 ‘긴축’으로 명확해지면서 SK그룹의 행보를 주시하는 눈이 많아졌다. 어느 계열사 할 것 없이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터라 거의 모든 자산과 사업이 잠재적으로 활용 가능한 카드로 여겨졌다.

      연초 예상과 달리 아직까지는 잠잠한 분위기다.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SK그룹은 급한 모습을 보일수록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잠재 매물 중에는 고용 직원이 많은 곳도 있다 보니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원매자를 찾거나 매각설을 진화하는 데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SK그룹이 그간 공격적으로 벌여 둔 사업을 제대로 살펴 볼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도 문제다. 비주력 사업이나 단순 투자 자산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매물로 내놨지만, 규모가 크고 그룹의 핵심을 이루는 사업에 대해선 간단히 의사를 결정할 수 없다.

      기존 사업들의 미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핵심이다. 최창원 의장 시대에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SK케미칼의 제약 사업부 매각 철회다. 당장 돈이 필요하다고 지금까지 공들여 키운 사업을 정리하는 게 맞냐는 그룹 차원의 의문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내 계열사 사이에서 바이오·제약 사업 주도권 조정이 이뤄질 것이란 시각도 있다. 최근 SK렌터카 매각은 수년 전부터 추진했던 터라 SK그룹발 큰장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긴 어렵다.

      SK그룹의 주축 사업은 여전히 반도체와 2차전지다. 이전까지 파이낸셜 스토리를 펼쳐가는 중에 각 계열사간 사업 연관성과 이해관계가 더 복잡해진 터라 SK그룹으로서도 신중한 모습이다. 계열사 CEO와 임원들 입장에선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성과일 수 있지만 반대로는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민스럽다.

      SK그룹은 가장 확실한 캐시카우인 반도체 사업에 더 힘을 실을 전망이다. 잠재 매물로 거론되던 SK㈜의 자회사 SK스페셜티는 매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반도체에 필요한 특수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필요성이 있고, 향후 현금창출력도 커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SK에코플랜트는 SK하이닉스, SK실트론 등 증설 효과로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각종 비주력 환경자산을 매각하라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컸지만, 이제는 SK오션플랜트 매각 가능성만 타진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상장(IPO)을 앞두고 ‘이익이 나면서도 투자 부담은 크지 않은’ 환경기업을 인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SK그룹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역시 2차전지다. 셀, 양·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전 영역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이 전기차 캐즘(수요 둔화)이 본격화하며 큰 부담으로 돌아오는 양상이다. SK온은 시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상장전투자유치, 모회사의 지원 등 기존에 쓴 카드도 다시 만지작거리는 분위기다.

      SK그룹의 배터리 사업을 두고 ‘그룹간 빅딜’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역시 현실화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SK온과 SK엔무브를 합치는 안도 내부적으로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KC는 동박사업을 팔기 위해 포스코를 찾았으나 시각차만 확인했다. 과거 SK 이름값과 성장성에 기대 투자했던 곳조차 ‘모두 다 내려놓을 각오’를 해야 사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지적하는 분위기다.

      최근 SK그룹이 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등에 맡긴 전략 컨설팅의 핵심도 배터리 사업 개선이다. 이런 저런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2차전지 사업 방향성에 따라 기존 화석연료 관련 사업 전반의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고민의 시간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이 컨설팅 받은 내용을 수펙스추구협의회에 보고하면서 사업 방향을 정리하고 있다”며 “그룹 덩치가 크고 의사 결정 과정도 더딜 수밖에 없는 만큼 상반기까지는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6월 열리는 확대경영회의가 올해 SK그룹의 사업 방향을 설정하는 마지막 자리가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그룹 미래가 걸린 만큼 시나리오를 짜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데, 그렇다고 그 작업이 하반기까지 늘어지면 실행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SK그룹은 2022년에도 BCG에 컨설팅을 의뢰해 주가 부양을 위한 전략을 마련했고, 확대경영회의에서 계열사 사장들을 독려한 바 있다.

      SK그룹을 이끌던 부회장들은 작년말 정기인사를 통해 후선으로 물러났다. 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끈 사업들이 정리 대상에 오르면 ‘부회장들의 시대’와는 완전한 단절이 이뤄지게 된다. 확대경영회의가 명목상 직을 갖고 있는 부회장들이 그룹을 완전히 떠나는 계기가 될지도 관심사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이 맡긴 컨설팅은 2차전지 밸류체인 내 사업 매각과 유동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계획대로 잘 되지 않으면 SK온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며 “6월 확대경영회의가 분수령이 될 것이란 시각이 있는데 부회장들도 이때에 맞춰 완전히 물러나게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