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어의 무리수? 하이브의 한계?…방시혁과 민희진의 '불편한 동거'
입력 2024.04.23 15:55|수정 2024.04.23 15:57
    하이브 "어도어의 회사 탈취 기도 명확"
    어도어 "문제 제기했으나 하이브는 침묵"
    결과 어떻든 그룹 뉴진스 미래는 불투명
    엔터사 인적 리스크·멀티레이블 허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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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 봄 또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국내 최대 엔터사인 하이브와 소속 레이블 ‘어도어’가 그 주인공이다. 걸그룹 ‘뉴진스’를 히트시킨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와 경영진들이 모회사인 하이브로부터 독립하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하이브 측과 대립하고 있다. 

      아직 양측이 본격적인 법적 조치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이라 이번 사건의 결말을 예단하긴 어렵다. 다만 다시금 엔터사의 고질적 '인적 리스크(위험)'와 더불어 멀티레이블 체제의 허점을 드러냈다는 평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이날 오후까지 민희진 대표 및 현 어도어 경영진에게 감사 질의서 답변을 요구했다. 민희진 대표 등이 하이브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하이브는 어도어 주주총회 소집 등 법적 조치에 본격 돌입할 계획이다. 

      엔터계를 떠들석하게 만든 ‘내분’의 배경은 대표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 등이 하이브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이에 하루 전인 22일 하이브는 민 대표를 비롯한 현 어도어 경영진에 감사 질의서를 보냈다. 또한 민 대표에 대한 사임을 요청했고, 주주총회 소집 등을 요구했다. 

      이번 하이브와 소속 레이블 간의 분쟁 배경에는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어도어 측은 공식입장을 밝히며 이번 분쟁의 배경이 ‘하이브의 무단 도용’이라고 밝혔는데, 업계에서는 하이브 측과 민희진 대표 간에 갈등은 오래 전부터 축적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SM엔터의 간판 프로듀서였던 민 대표가 하이브에 합류한 뒤 사실상 ‘시한폭탄’ 같은 관계였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이 이어진 바다. 

      22일 어도어 측은 이번 분쟁의 배경으로 “아일릿이 모든 영역에서 뉴진스를 카피하고 있다”며 “이는 하이브가 관여한 일이고, 어도어는 뉴진스의 성과를 카피하는 것을 허락하거나 양해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어 “하이브 및 빌리프랩에 이번 카피 사태는 물론, 이를 포함하여 하이브가 뉴진스에 대해 취해 온 일련의 행태에 관하여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했고, 하이브는 변명만 하다가 갑작스레 민희진 대표의 직무를 정지했다”고 밝혔다. 

      23일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사내 공지를 통해 “이번 사안은 회사 탈취 기도가 명확하게 드러난 사안이어서 이를 확인하고 바로잡고자 감사를 시작하게 됐다”며 “이미 일정 부분 회사 내외를 통해 확인된 내용들이 이번 감사를 통해 더 규명될 경우 회사는 책임있는 주체들에게 명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책임있는 주체들은 회사의 정당한 감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거나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며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근거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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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도어의 ‘무리수’의 끝은?…잘나가던 뉴진스는 ‘낙동강 오리’ 

      업계에서는 이번에도 ‘엔터업계다운 이슈’라는 평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민희진 대표를 비롯한 어도어 경영진의 ‘방법’이 법적으로 다소 불리한 상황이라는 평이 많다. 

      하이브 측의 감사질의서에 따르면 어도어 경영진들은 하이브로부터 독립해 경영권을 확보할 목적으로 취득한 핵심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고, 사업상·인사상 기밀을 외부에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이브 측은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외부 컨설팅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이브 측이 확인중이지만, 만약 사실로 밝혀진다면 배임 등 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  

      이번 어도어의 경영권 독립 시도의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어도어 부대표 A씨는 최근 하이브에서 어도어로 이직했으며, 하이브에서 IR팀장을 맡았던 인물로 확인됐다. 그는 현재 하이브 재직시절 확보한 핵심 영업 기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IR부서는 투자자들과 회사의 재무 상황에 대해 소통하는 부서인만큼 회사의 재무 및 계약 사항을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하이브 측은 어도어가 모회사인 하이브가 어도어에 부당한 요구를 한다는 점을 근거로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 80%를 현 어도어 경영진에 우호적인 투자자에게 매각하게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 대표를 비롯한 어도어 측이 사모펀드, VC(벤처캐피탈) 등 시장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외부 투자 유치를 추진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선 민 대표 등이 최대주주에 등극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낮다는 판단이다. 우군으로 포섭한 투자자에 신주를 발행해주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 하이브가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다. 

      뉴진스를 포함해 하이브에서 독립해 별도 법인을 세우는 방안도 있지만, 계약 위반 위약금 문제가 있다. 물론 하이브의 귀책으로 계약 해지가 가능하거나 투자자를 통해 위약금을 지불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 경우 독립 이후에도 ‘평판 리스크’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어도어는 공식 입장을 통해 “경영권 탈취 시도는 사실이 아니며, 어이없는 내용의 언론 플레이”라며 “오히려 하이브가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에 관여하며 뉴진스의 문화적 성과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향후 양측의 치열한 법적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하이브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포함한 대형 로펌들과 자문 계약이 맺어져있고, 민 대표 측은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했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어도어는 대주주인 하이브가 지분 80%를 보유한 회사라 경영권 확보 혹은 지분매각을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시도하는 것이 현실성이 낮다”며 “어도어 이사회야 민 대표 측근이지만, 하이브 이사회는 하이브 인사들인데 지분을 매각하게 만들 유인책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엔터업계와 팬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민희진 대표가 프로듀싱 하고 있는 어도어 소속 걸그룹 ‘뉴진스’의 행보에도 주목하고 있다. 뉴진스는 2022년 데뷔 이후 2년도 안 돼 1000억원 매출을 올린 인기 그룹이다. 2023년 사업보고서 기준 어도어의 직원은 38명에 불과하다. 뉴진스는 다음달 컴백을 앞두고 있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무기한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분쟁의 결과로 민 대표가 사임을 하고 뉴진스만 하이브에 남게 된다면 ‘이전의’ 뉴진스 정체성은 사라질 수 있다. 업계에서 ‘뉴진스=민희진’이라고 불릴 정도로 뉴진스는 민희진 대표가 데뷔 전부터 기획하고 키워왔다. 팬들 사이에서 민 대표는 ‘뉴진스 맘(엄마)’로 불릴 정도로 높은 애정도를 보여왔다.

      만약 민 대표가 하이브와 헤어지고 독립하는 데 뉴진스 측이 함께한다 해도 ‘뉴진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2022년 데뷔로 통상 아이돌 계약기간이 5~7년인 점을 고려하면 지금 계약을 해지하면 위약금을 물어내야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도어 측이 하이브가 ‘책임’이 있다는 증거를 모아온 것으로 해석된다.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의 한계…또 ‘인적 리스크’

      이번 사태만 봐도 국내 엔터업계에서 ‘레이블 체제’는 쉽지 않다는 증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무형 자산 및 개인의 아이디어가 핵심인 엔터업 특성상 ‘불편한 동거’의 결말은 대개 좋지 않았다. 과거 CJ ENM과 하이브 측이 공동 운영한 레이블 빌리프랩도 의사결정에 있어서 혼선이 이어졌고 결국 하이브 측이 CJ ENM 지분도 전부 인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내 엔터사에서 산하에 개인 프로듀서에게 자율성을 주고 독립 법인을 내주는 경우는 드물다. SM엔터와 YG엔터 등이 차용한 본부 체제를 적용하고 있다. YG엔터에서 빅뱅, 2NE1, 블랙핑크 등 YG엔터 핵심 아티스트를 프로듀싱한 테디가 ‘더블랙레이블’로 독립한 경우 정도다. 다만 YG엔터는 더블랙레이블 지분 21%를 보유 중이고, 경영이 독립돼 관계사지만 사실상 별개 회사다. 

      이번 사태로 하이브가 자랑스럽게(?) 내세워 온 ‘멀티 레이블 체제’의 허점도 확인됐다는 평이다. 국내 최대 엔터 상장사인 하이브가 멀티 레이블 체제를 꾸려온 데에는 기업가치를 확대하기 위한 포석도 있었다. 하이브는 국내외로 공격적인 M&A(인수합병)를 해왔고, 흡수보다는 산하 레이블로 두면 독립성을 제공하되 덩치는 키울 수 있었다. 

      만약 하이브 산하의 다른 레이블인 KOZ엔터테인먼트에서 ‘지코’가 이탈하게 된다면, 이번 ‘어도어 사태’가 재발되는 셈이다. KOZ엔터는 가수 지코의 1인기획사를 하이브가 2020년 인수하며 레이블로 편입했고, 이후 아이돌 '보이넥스트도어'를 데뷔시켰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위의 사내 공지에서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을 완성해 오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지만, 이번 사안을 통해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며 “이번 사안을 잘 마무리 짓고 멀티레이블의 고도화를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 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개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만약 어도어 측이 ‘제3자배정 유증’ 등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려고 했다면, 작년 SM엔터 매각 사건때랑 비슷한 꼴”이라며 “하이브도 내부 관리 미흡 부담이 생겼고, 민희진 대표도 하이브에 남아도 불편하고 독립해도 업계 내 평판이 훼손으로 추후 아이돌 육성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