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와 연결고리 강해지는 SK하이닉스…눈치 볼 필요 없어진 투자 결정
입력 2024.04.25 13:00
    청주 M15X는 D램용…美 패키징 생산기지까지 투자 결정
    경쟁사 공급 역량 관계 없이 고객사와 논의해 주도적 투자
    TSMC와 맞손 지속…엔비디아 외 美 팹리스 공략 늘어날 듯
    선순환 구조 안착 기대감에도 계열 캡티브 경계하는 시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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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하이닉스가 연초 계획을 수정해 투자 확대에 나선다. 매 분기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시장 색깔을 바꿔나가며 선점 효과를 누리는 SK하이닉스의 투자 결정 방식도 종전과 크게 변화하는 모습이다. 엔비디아 협력에서 맞손을 잡았던 대만 TSMC와의 연결고리도 더욱 강해지면서 SK하이닉스가 경쟁사 눈치 볼 필요 없이 주도적으로 투자 시점을 조율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서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25일 SK하이닉스는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12조4295억원, 영업이익이 2조886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계절적 비수기이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강세와 낸드 판가 인상 및 재고평가손실 충당금 환입 등 영향으로 1분기 최대 매출액, 역대 두 번째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시장 전망치를 훌쩍 뛰어넘는 실적을 기록했다. 

      이미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이번 분기 D램에 이어 낸드까지 완연한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 내다봤던 만큼 눈길은 올해 이후 투자 계획으로 집중된다. 연초만 해도 SK하이닉스는 작년처럼 올해도 보수적인 투자 계획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이달부터 국내 청주와 용인 외 미국 인디애나주까지 전방위 투자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청주 M15X 팹(Fab)은 HBM과 같은 선단공정 D램 생산기지로 결정됐다. 5조3000억원을 투입해 이달부터 공사를 시작해 내년 11월 준공, 연말께 양산에 돌입한다. 장비 입고 일정에 맞춰 장기적으로는 20조원을 순차 투입할 예정인데, 시장에선 SK하이닉스가 M15X 팹에 1c나노미터(nm) 공정을 도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TSMC와 협력 논의가 한창인 차세대 HBM 공급 대응을 위한 복안으로 풀이된다. 

      세부 내역에서 SK하이닉스의 뒤바뀐 투자 결정 구조가 엿보인다는 평이다. 원래 SK하이닉스는 경쟁사 마이크론과 마찬가지로 투자 결정에서 1위 삼성전자의 D램 공급 능력을 크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으나 자체 판단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얘기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서둘러 HBM 대응을 위한 선제 투자 계획을 밝힌 시점과 시차가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범용에서 HBM 시대 접어들면서 수요 가시성이 높아진 점이 공급사 전반 투자 결정 방식을 뒤바꾸고 있는데, 일단은 SK하이닉스가 선순환 구조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라며 "고객사랑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칩을 찍어낼지 미리 확인하고 적기 투자를 결정하는 구조라 경쟁사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애리조나에 38억7000만달러(원화 약 5조2000억원)를 들여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TSMC도 현지에 2개 선단공정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을 세우고 있다. 엔비디아 외 팹리스들이 주문형 AI 반도체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TSMC 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CoWoS) 공정과의 협력 구도가 전보다 강해지는 모습이다. 

      AI 산업의 무게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당분간 SK하이닉스의 HBM 선점으로 인한 선순환 구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부터 PC나 모바일 및 일반 서버와 같은 전통적인 범용 D램 수요처 역시 채용량 증가, 교체 수요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HBM 대응 과정에서 3사가 합심해도 공급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SK하이닉스는 올 연말쯤 D램 재고가 빠듯한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시장 수요가 예상보다 강할 경우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시사했다. 

      직접적인 AI 향 수혜로 보기는 어렵지만 낸드도 덕을 보는 분위기가 짙어진다. 증권가를 비롯한 투자 업계 전반이 SK하이닉스의 1분기 낸드 재고평가손 환입을 과소 추정했는데, AI 서비스 채용을 위한 일반 서버 고객사를 중심으로 고용량 eSSD 주문이 크게 늘어나며 9000억원 가까운 1회성 이익이 실적을 끌어올렸다. 지난 2년 업황이 바닥을 치며 쌓여 있는 구형 낸드 재고도 고객사 축적 수요가 본격화하며 가격 정상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시장 일각에선 SK하이닉스의 투자 확대가 그룹 계열사 사정과 맞닿아 있는 점 등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SK하이닉스 투자가 늘어날 경우 그룹 계열 내 소재·장비 및 건설사의 실적에도 힘이 실리는 구조인 탓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에 발표한 청주 M15X 팹 및 미국 어드밴스드패키징 공장 신설 외 120조원 규모 투자가 예정된 용인 클러스터 조성도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 밝혔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그룹 내에서 SK하이닉스의 시장 지위와 이익 체력이 중요하게 부상한 만큼 SK하이닉스의 투자 계획이 계열사 사업 재편, 투자 유치나 IPO 일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늘었다"라며 "종전과 달라진 메모리 투자 사이클에서 SK하이닉스의 선순환 구조가 안착할 때까지 이를 경계하는 시선 역시 이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